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성철스님의 백일법문 179] 보조스님 비판 : 보조스님도 입적전 돈오점수가 선종아니라고 선언 1968년 1월 22일 법문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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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오점수(頓悟漸修)사상은 교가(敎家)에서는 혹 방편적으로 용납이 되지만 조계선종 정맥에서는 절대로 용납 될 수 없는 사상이라는 것으로 대중들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해동(海東)으로 와서 보조스님은 그런 사상을 이어받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돈오점수사상은 보조스님 저술에 있어서「수심결(修心訣)」과「결사문(結社文」의 두 저술에서 근본이 되고 있습니다. 「결사문」은 보조스님 서른세살에 팔공산 거조암(居祖庵)에 계실 때 지은 글입니다. 「수심결」은 지은 연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상적으로 봐서「결사문」이후에 된 저술은 사상의 전환이 많은데 그 전환점을 기준하여 보면「수심결」이「결사문」지을 때와 같은 보조스님 초기의 저술이라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보조스님이 서른세살에 거조암(居祖庵)에 계시면서 「결사문」을 짓고 약 십년 후인 마흔 한 살 상무주암(上無住庵)에서 「대혜어록」을 보고 '얻은 바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전에는 돈오해서 점수한다는 그 사상의 범위 안에 있었는데 상무주암으로 가서 '얻은 바가 있고' 부터는 정해(精解) 즉 지해분별을 원수와 같이 여기고 번뇌망상을 벗어나서 바로 안락하여 지해가 조금 높아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무주암에 몇 해 계시다가 송광사로 가서 한 십년 계시다 오십세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반년 전 오십두살 되시던 겨울에 완성한 책이 「절요(節要)」인데, 여기에서는 「수심결」이나 「결사문」과는 달리 사상적 전환이 있습니다. 즉 「절요(節要)」에 있어서는 돈오점수(頓悟漸修)는 교종(敎宗)에 해당하는 것이지 선종(禪宗)은 아니라고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성철스님 #백일법문 #보조스님비판 [성철스님의 백일법문 179] 보조스님 비판 : 보조스님도 입적전 돈오점수가 선종아니라고 선언 1968년 1월 22일 법문 백련불교문화재단 http://sungchol.org/ 성철선사상연구원 http://www.songchol.com/?skipintr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