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ASMR 1시간 동안 한자 글씨 쓰는 소리 중국 명문장 과진론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Если кнопки скачивания не
загрузились
НАЖМИТЕ ЗДЕСЬ или обновите страницу
Если возникают проблемы со скачиванием видео, пожалуйста напишите в поддержку по адресу внизу
страницы.
Спасибо з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ервиса ClipSaver.ru
#손글씨 #ASMR #한자 秦孝公이 據殽函1)之固하고 擁雍州2)之地하여 君臣이 固守而窺周室하니 有席捲天下하고 包擧宇內하며 囊括四海하고 幷呑八荒之心이라. 當是時也하여 商君이 佐之하여 內立法度하여 務耕織하고 修守戰之備하며 外連衡而鬪諸侯라. 於是에 秦人은 拱手而取西河3)之外라. 진(秦)나라 효공(孝公)은 효산(殽山)과 함곡관(函谷關)의 견고한 지형을 차지하고 옹주(雍州)의 땅을 소유하여, 임금과 신하가 굳게 지키면서 주(周)나라 왕실을 엿보았으니, 천하를 독차지하고 온 세상을 점유하며 사해(四海)를 망라하고 팔방(八方)을 아울러 삼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상앙(商鞅)이 보좌하여 안으로는 법도를 세워 밭 갈고 길쌈하는 것을 힘쓰고 수비와 공격 준비를 닦았으며, 밖으로는 연횡책을 써서 제후(諸侯)들을 싸우게 하였습니다. 이에 진(秦)나라 사람들은 팔짱을 끼고 서하(西河)의 밖을 차지하였습니다. 孝公이 旣沒에 惠文武昭襄이 蒙故業하고 因遺策하여 南取漢中하고 西擧巴蜀하며 東割膏腴之地하고 北收要害之郡하니 諸侯恐懼하여 會盟而謀弱秦이라. 不愛珍器重寶와 肥饒之地하여 以致天下之士하니 合從締交하여 相與爲一이라. 효공(孝公)이 죽은 뒤에 혜문왕(惠文王), 무왕(武王), 소양왕(昭襄王)이 옛 업적을 이어받고 물려준 계책을 따라서, 남쪽으로는 한중(漢中)을 취하고 서쪽으로 파촉(巴蜀)을 함락시켰으며, 동쪽으로는 기름진 땅을 베어가지고 북쪽으로는 요충지의 고을을 차지하니, 제후(諸侯)들이 두려워서 회맹(會盟)하여 진(秦)나라를 약화(弱化)시킬 것을 도모하였습니다. 진귀한 기물과 귀중한 보배와 비옥한 땅을 아끼지 않고 천하의 선비들을 초청하니 합종책(合從策)이 체결되어 함께 하나가 되었습니다. 當此之時하여 齊有孟嘗하고 趙有平原하고 楚有春申하고 魏有信陵이라.4) 此四君者는 皆明智而忠信하고 寬厚而愛人하며 尊賢重士하여 約從離衡하여 兼韓魏燕趙宋衛中山之衆이라. 이때에 제(齊)나라에는 맹상군(孟嘗君)이 있었고 조(趙)나라에는 평원군(平原君)이 있었으며, 초(楚)나라에는 춘신군(春申君)이 있었고 위(魏)나라에는 신릉군(信陵君)이 있었습니다. 이 네 사람은 모두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충성스럽고 믿음직스러웠으며, 관대하고 후덕하여 사람을 사랑하였으며, 어진이를 높이고 선비들을 중히 여겨 합종책(合從策)을 맺고 연횡책(連衡策)을 흩어 한(韓), 위(魏), 연(燕), 조(趙), 송(宋), 위(衛), 중산(中山)의 군사를 연합하였습니다. 於是에 六國之士에 有寗越 · 徐尙 · 蘇秦 · 杜赫之屬이 爲之謀하고 齊明 · 周最 · 陳軫 · 召滑 · 樓緩 · 翟景 · 蘇厲 · 樂毅之徒가 通其意하며 吳起 · 孫臏 · 帶佗 · 兒良 · 王廖 · 田忌 · 廉頗 · 趙奢之朋이 制其兵이라.5) 이에 여섯 나라의 선비 중에 영월(寗越), 서상(徐尙), 소진(蘇秦), 두혁(杜赫) 등이 그 계책을 만들고, 제명(齊明), 주최(周最), 진진(陳軫), 소활(召滑), 누완(樓緩), 적경(翟景), 소려(蘇厲), 악의(樂毅)의 무리가 그 뜻을 통하였으며, 오기(吳起), 손빈(孫臏), 대타(帶陀), 아량(兒良), 왕료(王廖), 전기(田忌), 염파(廉頗), 조사(趙奢)의 무리가 그 군대를 통솔하였습니다. 嘗以什倍之地와 百萬之軍으로 仰關而攻秦이라가 秦人이 開關延敵에 九國之師가 遁逃而不敢進하니 秦無亡矢遺鏃之費어늘 而天下諸侯는 已困矣라. 일찍이 열 배가 되는 땅과 백만의 군사로 함곡관(函谷關)을 올려다보며 진(秦)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진나라 사람들이 관문을 열고 적을 맞이하자 아홉 나라의 군대가 도망치면서 감히 전진하지 못하였으니, 진(秦)나라는 화살을 잃고 화살촉을 버리는 낭비도 없었는데 천하의 제후들은 벌써 곤궁하게 되었습니다. 於是에 從散約敗하여 爭割地而賂秦하니 秦有餘力而制其弊하여 追亡逐北하여 伏尸百萬이요 流血漂鹵라. 因利乘便하여 宰制天下하고 分裂河山하니 彊國은 請伏하고 弱國은 入朝하니라. 이에 합종책(合從策)은 무산되고 맹약은 무너져 다투어 땅을 갈라 진(秦)나라에 바치니, 진(秦)나라는 남는 힘을 가지고 그들의 피폐함을 제압하여 도망가는 자를 추격하고 퇴각하는 무리를 쫓아가 엎어져 죽은 시체가 백만이고 흐르는 피가 방패를 떠다니게 하였습니다. 유리함을 따르고 편리함을 타서 천하를 주관하고 산하(山河)를 가르니, 강한 나라는 항복하기를 청하고 약한 나라는 들어와 조회(朝會)하였습니다. 施及孝文王과 莊襄王하여 享國日淺이나 國家亡事라. 及至始皇하여 奮六世6)之餘烈하여 振長策而馭宇內하여 呑二周而亡諸侯하고 履至尊而制六合7)하여 執敲扑以鞭笞天下하니 威振四海라. 효문왕(孝文王)과 장양왕(莊襄王)에 이르러서는 나라를 다스린 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국가에 일이 없었습니다. 시황제(始皇帝)에 이르러 여섯 선대(先代)가 남겨준 공적을 떨쳐 긴 채찍을 휘둘러 천하를 제압하여 서주(西周)와 동주(東周)를 삼키고 제후들을 멸망시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온 세상을 제압하여 회초리와 매를 잡고 천하를 채찍질하니 위세가 사해(四海)를 진동하였습니다. 南取百粵8)之地하여 以爲桂林象郡9)하니 百粵之君이 俛首係頸하여 委命下吏라. 迺使蒙恬10)으로 北築長城而守藩籬하여 却匈奴七百餘里하니 胡人이 不敢南下而牧馬하고 士不敢彎弓而報怨이라. 남으로는 여러 월족(粵族)의 땅을 취하여 계림군(桂林郡)과 상군(象郡)으로 삼으니, 여러 월족(粵族)의 임금들이 머리를 숙이고 목을 묶은 채 목숨을 옥리(獄吏)에게 맡겼습니다. 이에 몽념(蒙恬)으로 하여금 북쪽에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 국경을 지키게 하여 흉노(匈奴)를 7백여 리나 퇴각시키니, 오랑캐들이 감히 남쪽으로 내려와 말을 기르지 못하고 군사들은 감히 활을 당겨 원한을 갚지 못하였습니다. 於是에 廢先王之道하고 焚百家之言하여 以愚黔首하며 墮名城하고 殺豪俊하며 收天下之兵하여 聚之咸陽하여 銷鋒鍉11)하여 鑄以爲金人十二하여 以弱天下之民이라. 然後에 踐華爲城하고 因河爲池하여 據億丈之城하고 臨不測之淵하여 以爲固하며 良將勁弩가 守要害之處하고 信臣精卒이 陳利兵而誰何라. 天下已定에 始皇之心은 自以爲關中之固가 金城千里니 子孫帝王萬世之業也라. 이에 선왕의 법도를 폐지하고 제자백가의 글을 불태워 백성들을 어리석게 하였으며, 유명한 성곽을 허물고 호걸(豪傑)과 준재(俊才)들을 죽였으며,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다 함양(咸陽)에 모아 놓고 칼날과 살촉을 녹여 ‘구리로 만든 사람[금인(金人)]’ 12개를 주조하여 천하의 백성들을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뒤에 화산(華山)을 따라 성(城)으로 삼고 황하(黃河)에 의지하여 못으로 삼아 억(億) 길의 높은 성을 점거하고 헤아릴 수 없는 깊은 계곡을 대함으로써 견고함을 삼았으며, 뛰어난 장수와 강한 쇠뇌가 요충지(要衝地)를 지키고 믿음직한 신하와 정예병들이 날카로운 병기를 벌려놓고 검문하였습니다. 천하가 평정되자 시황(始皇)의 마음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관중(關中)의 견고함이 철옹성 천리(千里)이니 자손들이 만대(萬代)를 제왕 노릇할 기업(基業)이라고 여겼습니다. 始皇旣沒에 餘威震于殊俗이라. 然而陳涉12)은 甕牖繩樞之子요 甿隸之人으로 而遷徙之徒也며 材能不及中庸하니 非有仲尼墨翟之賢과 陶朱13)猗頓14)之富라. 躡足行伍 之間하고 俛起阡陌之中하여 率疲散之卒하고 將數百之衆하여 轉而攻秦할새 斬木爲兵하고 揭竿爲旗로대 天下雲會而響應하고 嬴粮而景從하니 山東豪傑이 遂並起而亡秦族矣라. 시황(始皇)이 죽은 뒤에 남은 위엄이 풍속이 다른 곳에까지 떨쳤습니다. 그런데도 진섭(陳涉)은 깨진 옹기를 댄 창문과 노끈으로 문지도리를 한 집의 자식이요, 천한 사람으로 유배살이 하던 무리였으며 재능은 중간 정도에도 미치지 못하였으니, 공자와 묵적(墨翟)의 현명함이나 도주공(陶朱公)과 의돈(猗頓)의 부유함도 없었습니다. 병사의 행렬 사이에서 출발하고 밭두둑 사이에서 일어나 지치고 흩어진 병사들을 이끌고 수 백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옮겨 다니면서 진(秦)나라를 공격할 때에, 나무를 잘라 무기를 만들고 장대를 세워 깃발로 삼았으나 천하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메아리처럼 호응하였으며, 양식을 짊어지고 그림자처럼 따랐으니 효산(殽山) 동쪽의 호걸들이 마침내 함께 일어나 진(秦)나라 일족(一族)을 멸망시켰습니다. 且天下가 非小弱也요 雍州之地와 殽函之固가 自若也며 陳涉之位가 不尊於齊 · 楚 · 燕 · 趙 · 韓 · 魏 · 宋 · 衛 · 中山之君하고 鉏耰棘矜이 不敵於鉤戟長鎩하며 適戍之衆이 不亢於九國之師하고 深謀遠慮와 行軍用兵之道가 非及曩時之士也라. 然而成敗異變하여 功業이 相反은 何也오. 試使山東之國으로 與陳涉과 度長絜大하고 比權量力이면 則不可同年而語矣라. 또 천하가 작고 약한 것이 아니고 옹주(雍州)의 땅과 효산(殽山) · 함곡관(函谷關)의 견고함이 본래 그대로였으며, 진섭(陳涉)의 지위가 제(齊) · 초(楚) · 연(燕) · 조(趙) · 한(韓) · 위(魏) · 송(宋) · 위(衛) · 중산(中山)의 임금보다 높지 않았고 호미와 괭이, 나무자루로 만든 창이 갈고리창과 긴 창을 대적할 수가 없었으며, 유배되어 수자리 살던 무리가 아홉 나라의 군대를 대항할 수 없었고 깊은 계책과 원대한 생각과 행군하고 용병(用兵)하는 방법이 지난날의 인사들에 미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성패가 달라져 공적이 상반된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시험삼아 효산(殽山) 동쪽의 나라들을 진승(陳勝)과 길이와 크기를 재고 권세와 힘을 헤아려 보게 한다면 때를 같이하여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然이나 秦이 以區區之地로 致萬乘之權하여 招八州15)而朝同列이 百有餘年矣오, 然後에 以六合爲家하고 崤函爲宮이러니 一夫作難에 而七廟16)가 墮하고 身死人手하여 爲天下笑者는 何也오. 仁誼를 不施하고 而攻守之勢가 異也일새니라. 그러나 진(秦)나라는 조그마한 땅으로 천자의 권세를 이루어 8주의 제후국을 불러들여 동등한 나라들을 조회하게 한 것이 백여 년이나 되었고, 그런 뒤에 온 세상을 한 집안으로 삼고 효산과 함곡관을 궁궐(宮闕)로 삼았는데, 한 사나이가 난을 일으키자 일곱 신위를 모신 사당이 무너지고 자신은 남의 손에 죽어 천하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한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인의(仁義)를 베풀지 않았고, 공격과 수비의 형세가 달랐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