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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lks] 순천 송광사 / Suncheon Songgwangsa Temple / 4K 주소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이다. 사적 제506호. 법보사찰 합천 해인사, 불보사찰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한국 불교의 '삼보사찰' 중 하나인 승보사찰의 순천 송광사로 손꼽힐 정도로 크고 유명한 절이다. 남북국시대 신라말의 승려인 혜린선사(慧璘仙師)가 송광산에 길상사라는 명칭으로 창건한 것이 시초이다. 그 뒤 후삼국시대의 혼란기에 폐사가 되었는지 고려 인종 대의 승려 석조대사(釋照大師)가 중창하려는 뜻을 품고 자재와 인력을 모아 공사를 진행했으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를 이을 사람이 없었는지 당분간 길상사는 거의 폐사화되었다가 50여 년 뒤인 고려 신종대에 조계종의 창시자인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로 이름으로 고치고 중창하여 가르침을 베풀기 시작하면서 발전하였다. 덤으로 이때 송광산은 조계산(曹溪山)으로 개칭되었다 한다. 이후 보조국사 지눌의 제자이자 조계종의 제2조(第二祖)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이 중창한 뒤부터 조선 초기까지 많은 국사를 배출하였는데 이 절에서 배출한 국사는 지눌을 비롯해 16명이나 되며 한국 불교의 전통을 이은 중요한 승보종찰이 되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성철 스님 등이 있었던 해인사 위주로 중심이 이동하면서 약간 밀리게 되었다. 송광사라는 이름으로 언제부터 불리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보조국사 지눌이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를 산에 날렸고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지자 그 뒷등을 솔개가 내려앉은 곳이라 하여 치락대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근대의 문학가 최남선은 이 전설에 따라 송광을 솔개의 사투리인 '솔갱이'라 하여 송광사는 '솔갱이절'을 한자화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다른 유래로는 예로부터 조계산에 소나무가 가득했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이 이 산을 솔메라고 부른 것에서 '송광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산 이름을 따서 사찰 이름도 송광사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송광사 북쪽에는 광원암(廣遠庵)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진각국사 혜심이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삼국시대인 516년(백제 무령왕 14년) 6월 승려 가규(可規)가 창건했다는 내용의 상량기(上樑記)가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암자를 절의 기원으로 볼 시에는 연대가 삼국시대까지 올라가게 된다. 이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치르면서 폐사에 이르렀으나 승려 응선과 부휴가 천자암, 보조암, 임경당을 차례로 중건하고 동행랑, 천왕문 등을 세웠었다. 1842년에는 큰 화재가 일어나 거의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져 또 다시 세웠다. 일제강점기 직전에는 항일 의병을 돕는 근거지 역할을 했던 사찰이었는데, 이후 일제는 사찰 건물을 파괴하는등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1922년부터 1928년까지 승려 설월과 율암이 용화당, 명성각 등을 보수하고 장원문, 사감고를 새로 지었다. 이후 현대에 들어 여수·순천 10.19 사건과 6.25 전쟁으로 사찰의 중심 전각들이 불탔는데, 그 뒤 승려 취봉과 금당이 건물들을 복구하였다. 대웅보전은 1988년에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2017년에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던 18세기 조선시대의 고승 묵암당 최눌(1717∼1790)의 것으로 추정되는 진영이 송광사로 반환되었다. [출처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