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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eel@hanmail.net 010-2382-2351 02 석가모니 BC 6~4세기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석가모니(BC 6~4세기)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인간 고통의 본질과 이를 초월하는 방법을 탐구했다. 그는 고통의 원인과 해결책을 명확히 제시하며, 이를 통해 인간이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가르쳤다. 고대 인도는 바라문교(베다 전통), 제의 중심의 브라마니즘, 다양한 수행 전통(요가, 금욕주의) 등이 혼재하던 시대로, 불평등한 계급제도와 영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석가모니는 당대 여러 스승의 가르침을 탐구했으나 만족스럽지 못했고, 스스로 깨달음의 길을 찾아내어 ‘고통의 소멸’을 핵심 주제로 삼았다. 석가모니 불교는 제의·계급·신의 권위에 의존하는 기존 전통과 달리, 개인의 ‘내적 통찰’과 ‘수행’을 중시하는 독자적 사상체계를 마련한다. 석가모니의 핵심 가르침은 ‘사성제’, ‘팔정도’, ‘중도’라는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고통의 시작과 끝: 사성제 석가모니는 인간 삶의 본질을 ‘고통’으로 규정하며, 이 고통의 원인과 해결책을 가르쳤다. 그는 고통을 피하지 말고 직면하며, 그 원인을 이해하고 이를 초월하는 실천적 방법을 따를 것을 강조했다. 석가모니는 고통을 ‘사성제’를 통해 설명했다. ‘사성제’는 삶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체계적 접근법으로, ‘고집멸도’로 표현된다. “출생은 고통이며, 노화도 고통이다. 병도 고통이고 죽음도 고통이다”-‘고제’는 고통이 피할 수 없는 삶의 본질임을 의미한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로병사,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좌절 등의 고통을 경험한다. 석가모니는 고통이 인간 삶의 필연적 부분임을 직시하도록 가르쳤다. “갈망이 고통의 원인이다. 존재를 지속하려는 갈망, 쾌락을 추구하려는 갈망, 존재를 소멸시키려는 갈망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 ‘집제’는 집착과 갈망이다. 인간의 고통은 욕망과 집착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물질적 풍요에 대한 집착은 채워지지 않을 때 고통을 초래한다. 또한, 무지는 욕망을 부추기며 인간을 고통에 빠뜨린다. 고통은 단지 운명이 아니라, 욕망(갈망)에 뿌리를 둔 인간 존재에서부터 원인을 갖는 필연이다. “갈망이 소멸되면, 고통도 함께 사라진다. 남김없이 버림, 놓아버림, 집착 없음이 바로 열반이다”— ‘멸제’는 고통은 소멸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고통은 열반에 도달함으로써 사라질 수 있다. 열반은 집착과 욕망을 끊어버린 상태로, 마음의 완전한 평화와 자유를 의미한다. “여덟 가지의 올바른 길, 즉 팔정도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도제’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실천적 길을 말한다. 석가모니는 ‘팔정도’라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실천법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가르쳤다. 실천으로서의 팔정도, 그리고 중도 ‘팔정도’는 해탈로 이끌고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도덕적, 지혜적, 명상적 실천법으로 구성된다. 팔정도는 모든 고통의 근원인 집착을 제거하기 위해, 삶의 전 영역에서 ‘바른 방식’을 지향하는 실천 윤리이다. 석가모니는 팔정도를 통해 지혜와 자비를 기르고, 깨달음(해탈)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팔정도는 해탈을 향한 여덟 갈래의 길이지만, 이 여덟 가지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통합된 삶의 방식이다. • 정견: 삶의 진리와 고통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 • 정사유: 해탈을 향한 올바른 결심과 생각을 가지는 것. • 정어: 진실되고 해를 끼치지 않는 말을 하는 것. • 정업: 올바른 행동으로, 타인과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사는 것. • 정명: 윤리적이고 올바른 생계를 유지하는 것. • 정정진: 깨달음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 정념: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며 명확히 인식하는 것. • 정정: 명상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고 내적 성찰을 깊게 하는 것. 팔정도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삶의 방식이며, 존재의 근원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삶 전체의 전환을 요구한다. 팔정도 중 정견(올바르게 봄)과 정사유(바른 생각)는 지혜에 해당하며, 정어(바른 말), 정업(바른 행위), 정명(바른 생계)는 도덕에, 정정진(선한 노력을 기울임), 정념(마음챙김), 정정(바른 선정)은 수행에 해당한다. 팔정도의 각 단계는 서로를 지탱하며, 전체적으로는 마음의 자유와 궁극적인 해탈로 이끄는 하나의 길이다. 석가모니는 그 길을 걸어 깨달음을 이루었고, 그 길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고통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본질에 깃들어 있지만, 그 고통을 넘어서는 노력 또한 우리의 본성 안에 있다. 팔정도는 그 노력에 대한 가장 치밀하고 자비로운 안내서이다. “쾌락에 탐닉하는 삶도 아니고, 고통에 집착하는 삶도 아닌, 이 두 가지 사이의 중도를 따라 지혜와 해탈의 길을 걷는다’ — 팔정도의 핵심 원리는 ‘중도’에 있다.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기 전 극단적 수행을 실천했으나, 고행으로는 해탈을 얻을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그는 육현금을 너무 조이면 끊어지고, 너무 풀면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는 것처럼, 과도함과 결핍의 극단을 벗어난 균형 잡힌 길(중도)을 강조했다. 이 원리는 수행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태도를 함축한다. ‘중도’는 삶의 균형을 유지하며, 지나친 욕망이나 지나친 자제의 극단에 빠지지 않게 해준다. 현대적으로 보면, 과도한 스트레스나 나태함을 피하고 균형 잡힌 삶을 지향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승불교: 개인 해탈의 길 소승불교, 즉 테라와다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의 원래 가르침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불교 전통 중 하나이다. 이 전통은 부처의 열반 이후 약 100년경에 있었던 교단 내 분열로부터 시작되어, 보수적이고 엄격한 수행 원칙을 고수한 상좌부에서 기원하였다. 소승이라는 명칭은 ‘작은 수레’라는 뜻을 가지지만, 이는 대승불교 쪽에서 붙인 명칭으로, 테라와다 전통에서는 스스로를 ‘부처의 원전을 따르는 전통’이라 여긴다. 소승불교의 중심 교리는 사성제와 팔정도이다. 인간 삶의 본질을 고통으로 보고, 그 원인을 탐욕과 집착에서 찾으며, 이를 제거함으로써 열반에 도달하는 것이 수행의 목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해탈’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수행자는 번뇌를 끊고 윤회에서 벗어나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 이러한 관점은 대승불교의 보살행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소승불교 전통에서는 아라한을 수행자의 최종 이상으로 설정한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열매로 여겨지며, 부처의 제자 중 다수도 아라한에 도달한 인물로 묘사된다. 아라한은 번뇌가 없는 상태일 뿐 아니라, 마음의 평온과 지혜, 윤리적 완성까지 겸비한 존재로 이해된다. 이러한 아라한의 길은 출가 수행자뿐 아니라 재가 신자에게도 열려 있으며, 각자의 업에 따라 길고 긴 생사윤회의 흐름 속에서 점진적으로 이 목표에 접근해 간다. 아라한과 붓다는 모두 해탈에 이른 존재라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붓다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자, 즉 스승 없이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중생에게 설한 존재이다. 반면 아라한은 부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여 열반에 이른 자이다. 다시 말해, 붓다는 길을 개척한 자이고, 아라한은 그 길을 걸어가 끝에 도달한 자라고 비유할 수 있다. 이 차이는 불교 사상 내에서 붓다에 대한 특별한 존경의 근거이기도 하다. 소승불교는 경전을 팔리어로 기록한 팔리 삼장에 의존하며, 이를 정통 교리로 간주한다. 이 경전 체계는 경, 율, 논의 세 가지 범주로 나뉘며, 오랜 시간 구술 전승을 거쳐 체계화되었다. 그만큼 이 전통은 문자적 보존성과 교리의 순수성을 중시한다. 부처가 실제로 설법했던 방식, 그리고 초기 승가의 윤리와 규범을 고스란히 계승하고자 하는 것이 이 전통의 본질이다. 오늘날 소승불교는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신봉되고 있으며, 남방불교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이들 지역에서는 출가 수행자뿐 아니라 재가 신자들도 활발히 불교 의례에 참여하며, 수행을 통해 업을 정화하고 내세에 유리한 조건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이는 세속과 출가의 조화를 추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대승불교: 모든 중생을 위한 깨달음 불교는 시대의 흐름과 수행자의 욕구,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고 확장되었다. 가장 큰 전환점은 대승불교의 등장이다. 대승불교는 기원 후 1세기 경 인도 북부에서 출현하여, 기존의 출가자 중심 수행 전통을 넘어서 모든 중생의 해탈과 자비를 중시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였다. 대승이라는 말은 ‘큰 수레’라는 뜻을 가진다. 이는 더 많은 이들을 깨달음의 길에 태우겠다는 은유이다. 대승불교는 스스로를 더 넓은 자비와 지혜의 이상을 구현하는 불교라고 규정하면서, 기존의 수행 중심 전통, 즉 상좌부 계열의 불교를 ‘소승’, 작은 수레로 부르며 차별화하였다. 대승불교의 중심에는 ‘보살’이라는 이상적 존재가 있다. ‘보살’은 스스로 열반에 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중생이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해탈을 미루며 중생을 돕는 존재이다. 이들의 핵심 서원은 중생이 다 구제되기 전까지는 나 또한 열반에 들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는 ‘자비’와 ‘지혜’의 완전한 조화를 상징한다. 대승불교에서 자비는 단순히 연민의 감정에 그치지 않고, 지혜와 결합된다. 반야의 지혜는 모든 존재가 ‘공’하다는 실상을 깨닫게 하며, 자비는 이를 바탕으로 중생을 돕는 적극적인 실천으로 이어진다. 결합은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중생과 함께 깨달음에 이르겠다는 대승불교의 핵심 정신을 반영한다. 대승불교는 방대한 경전 문헌을 통해 자신들의 교의를 정당화하고 체계화하였다. 대표적인 경전으로는 법화경, 화엄경, 유마경, 반아경등이 있으며, 이들 경전은 가르침의 수단을 넘어, 문학적, 철학적 깊이를 가진 거대한 사상 체계를 형성한다. 특히 ‘공’의 사상은 모든 존재가 독적 실체 없이 연기적으로 존재한다는 불교의 근본 철학을 한층 심화시켰으며, 중관학파(나가르주나)와 유식학파(세친, 무착)와 같은 뛰어난 철학자들에 의해 체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