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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파(中觀派) 법맥의 역사 1. 중관 공부의 목적 왜 우리가 난해한 중관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궁극적 목표: 일체 만법의 자성(自性)인 심오한 '공성(空性)'의 뜻을 깨닫고, 그 지혜를 마음에 일으켜 윤회의 원인(아집, 실유에 대한 집착)을 끊고 해탈과 성불에 이르기 위함입니다. 당면한 목표 (현실적 효용): 마음 비우기: 현재 우리의 마음은 분별망상, 견해, 감정으로 가득 차 있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합니다. 중관의 견해는 이 마음을 비우는 데 도움을 줍니다. 치우치지 않는 삶: 완전히 마음을 비우지 못하더라도, 공(空)의 이치를 배우면 대상을 볼 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됩니다. 실상(實相)에 맞게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어 현생의 삶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2. 중관의 기원과 전거(典據) '중도(中道)'라는 용어는 초기 경전에도 등장하지만, 학파로서의 '중관학' 체계는 용수(나가르주나) 논사로부터 시작됩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의도: 용수 논사의 논서들은 독창적인 창작이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 의도를 논리적으로 해설한 것입니다. -* 근본 경전: 반야경(般若經): 중관의 핵심 주제인 심오한 공성을 설하는 경전입니다. 분량에 따른 3종 분류 광본(廣本): 『10만송 반야경』 중본(中本): 『2만 5천송 반야경』 (강의에서는 2만송으로 언급되기도 함) 약본(略本): 『8천송 반야경』 (반야신경, 금강경 등도 넓은 의미의 반야부 경전에 속함) 참고: 반야경에 숨겨진 수행 단계(道)의 체계를 드러낸 논서로는 『현관장엄론』이 대표적입니다. 3. 개창자: 용수(龍樹, Nāgārjuna)의 생애와 전설 시기: 현대 학계는 서기 2세기경 인물로 보지만, 불교 전통에서는 부처님 열반 400년 후(기원전 1세기경) 출현했다는 예언에 따라 더 이른 시기로 봅니다. 출신: 남인도 바라문(브라만) 가문. 탄생과 수명 연장: 태어났을 때 점성술사로부터 7일밖에 살지 못한다는 단명을 예언받았습니다. 부모가 바라문 500명, 비구 스님 500명에게 공양을 올려 수명을 7년까지 연장했으나 그 이상은 어렵다는 말을 듣습니다. 출가와 날란다: 부모는 아들의 죽음을 볼 수 없어 그를 먼 곳으로 보냈고, 용수는 날란다 대학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스승(라훌라 바드라 등으로 추정)을 만나 '무량수불 진언' 또는 특정 본존 수행(마하카라 계통 등 이설 있음)을 통해 수명의 장애를 극복하고 장수하게 됩니다. 기근 구제와 연금술: 날란다의 원주 소임을 맡았을 때 큰 기근이 들었습니다. 용수는 연금술로 금을 만들어 대중을 공양했지만, 스승은 출가자가 상행위를 했다고 질책하며 참회의 의미로 수많은 불탑과 절을 지으라고 명했습니다. (보드가야 대탑 주변의 돌울타리도 용수가 조성했다는 전설이 있음) 용궁(龍宮) 방문과 반야경 회복: 용수의 법회에 좋은 향기를 풍기는 두 동자가 나타났는데, 그들은 인간 세상의 탁한 기운을 막기 위해 전단향을 바른 용(Nāga)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초청으로 용궁에 간 용수는 그곳에 지상에서는 사라진 방대한 『반야경』이 보존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용수는 용들에게 법을 설하고, 『반야경(화엄경 등도 포함)』을 다시 인간 세상으로 모셔와 대승불교를 중흥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용수'라는 이름을 얻게 됨) 4. 용수의 주요 저술: 6종 정리어(六種 正理聚) 용수존자의 수많은 저술 중 핵심적인 6가지 논서(중관이치육론)를 소개합니다. *『중론송(근본중송)』: 총 27품(강의엔 26장으로 언급)으로 구성. 유아론, 실유론 등 외도와 불교 내의 잘못된 견해를 귀류논법으로 논파하는 핵심 논서. *『육십송여리론(六十頌如理論)』: 부정적인 논파 위주의 『중론』과 달리, 연기를 통해 긍정적인 방식으로 법을 세우는 측면을 설함. *『칠십공성론(七十空性論)』: 승의제(궁극)에서는 생주멸이 없으나, 세속제(현상)에서는 생주멸이 있음을 밝히는 논서. *『회쟁론(廻諍論)』: "모든 것이 공하다면 당신의 논리도 공하여 타당성이 없지 않은가?"라는 비판에 대해, 논리 자체도 실체가 없음을 역설하며 공의 논리를 방어하는 논서. *『세마론(細摩論, Vaidalyaprakaraṇa)』: (강의에서 '미세하게 간다'는 뜻으로 설명) 외도의 범주론적 견해들을 미세하게 분석하여 논파하는 논서. *『보행왕정론(寶行王正論)』: 친구인 낙행왕에게 보낸 서신 형식. 앞의 5가지가 견해(見) 중심이라면, 이는 통치술, 자비, 이타행 등 행위(行)를 중심으로 설한 논서. (※ 『친우서』와는 다른 논서임) 5. 인도 중관학파의 분열과 전개 성천(聖天, Āryadeva, 3세기경) 논사: 용수(나가르주나) 논사의 뒤를 이은 인물 대략 3세기경의 인물이며, 싱갈라국(현재의 스리랑카) 출신. 용수 논사의 직제자(直弟子). 주요 일화 (마명 논사 조복): 당시 논쟁을 매우 잘하기로 유명했던 외도(外道)의 '마명(아슈바고샤)' 논사가 용수 논사와 논쟁을 하러 날란다에 왔습니다. 용수께서는 당신 대신 제자인 성천 논사(아리아데와)를 보내 논쟁하게 했습니다. 성천 논사가 마명을 논파하여 불교로 개종시켰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대표 저술: 대표적인 저술로 『중관사백론(中觀四百論)』이 있습니다. 그 후, 용수보살이 지은 근본 논서인 『중론(중관 근본 논석)』을 주석하는 과정에서, 논증을 펼치는 방식의 차이로 인해 파가 갈리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① 귀류논증파 (Prāsaṅgika)의 등장 선구자: 불호(佛護, Buddhapālita) 논사 : 용수의 『중론』을 주석하면서 '귀류논증'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귀류논증 중간파가 생겨났습니다. 방법론 (귀류논증): 자기 자신의 독자적인 주장(자종)은 내세우지 않고, 오직 상대방의 주장이 가진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여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방식(오류를 귀결시킴)을 사용했습니다. ② 자립논증파 (Svātantrika)의 반박과 확립 개창자: 청변(淸辨, Bhāvaviveka, 6세기경) 논사 청변의 주장 (자립논증의 필요성): "나 자신이 아무런 주장도 없다면 상대방의 잘못된 견해를 논파(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먼저 나 자신이 삼상(三相, 올바른 논리적 근거)을 통한 주장, 즉 논증을 세워서 내 스스로 인정하고 있어야 다른 사람의 잘못된 주장도 논파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바로 '자립논증 중간파'가 된 것입니다. 주요 저술: 『반야등론(般若燈論)』 (불호의 주석을 비판한 중론 주석서), 『중관심론(中觀心論)』 (자립논증의 독자적 체계 확립). ③ 귀류논증파의 재확립 및 우위 점유 확립자: 월칭(月稱, Candrakīrti, 7세기경) 논사 청변 비판 및 불호 옹호: 월칭 논사는 자신의 저술인『명구론(明句論)』에서, 앞선 불호 논사가 용수보살의 의도를 잘 드러냈다고 평가했습니다. 오히려 청변 논사가 용수보살의 의도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불호의 전통을 계승하여 귀류논증파의 입장을 확고히 했습니다. 주요 저술: 『명구론(明句論)』: 용수의 『중론』 주석서 중 가장 저명함. 『입중론(入中論)』: 중관의 공성 논리와 『화엄경 십지품』의 수행 단계(道와 地)를 통합하여 설한 핵심 교재. 티베트 강원의 필수 교재. ④ 유가행 자립논증 중관파의 등장 (8세기 이후) 특징: 승의제에서는 중관을 따르되, 세속제(현상 세계)를 설명할 때는 유식학파(유가행파)의 체계를 차용한 절충적 학파입니다. (청변 논사는 세속제에서 경량부의 입장을 취해 '경량행 자립논증파'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주요 인물: 지장(Jñānagarbha), 적호(Śāntarakṣita), 연화계(Kamalaśīla) 논사. 업적: 적호 논사는 티베트에 최초로 비구 승단을 세우고 쌈예사를 건립했습니다. 그의 제자 연화계 논사는 쌈예사에서 중국 선종의 마하연 화상과 논쟁(돈점논쟁)을 벌여 승리했습니다. (다음 강의 주제) 6. 티베트로의 전래와 정착 인도 중관학이 티베트에 전래되어 정착하는 과정을 시기별로 요약합니다. 전기 전파기 (초기): 적호(Śāntarakṣita) 논사에 의해 유가행 자립논증파가 먼저 전래되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암흑기: 랑다르마 왕의 불교 탄압으로 불교 전통이 쇠퇴했습니다. 후기 전파기 (초기): 서부 티베트의 예셰외 왕 등이 아띠샤 존자를 초빙하며 불교가 부흥합니다. 이 시기 활동한 응옥 로짜와 로댄 쉐럽 등의 역경사들은 여전히 자립논증파의 학통을 주로 계승하고 전파했습니다. 후기 전파기 (전환점): 핵심 인물: 카슈미르 유학승 출신의 빠첩 로짜와 니마닥(1055~?). 업적: 월칭의 『입중론』 등을 번역하고, 인도 현지에서 귀류논증이 우위를 점한 상황을 파악하여 티베트에 월칭의 순수한 귀류논증 중관학을 본격적으로 홍포했습니다. 결과 및 현황: 빠첩 로짜와의 노력과 그를 이은 까담파(샤라와 스님 등)의 연구를 통해, 이후 티베트의 모든 주요 종파(겔룩, 사캬, 까귀 등)는 귀류논증파를 가장 올바르고 청정한 정통 견해로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티베트 강원에서는 『입중론』을 통해 중관을 심도 있게 연구합니다. 지도법사 : 아왕상뽀( མཁན་པོ་ NGAWANG SANGPO) 스님(금강승 수행센터 캄따시링 센터장, 북인도 둑 다르마까라 승가대학 학장) 통역 : 자홍스님(동국대) 금강승 수행센터 캄따시링 (주소 - 서울 성북구 동소문로 13길 33, 복전빌딩 2층. - 성신여대입구역 4번출구에서 도보 7분 / 돈암초등학교 맞은편 카센터 옆 복전빌딩 2층) 전화 - 010-9013-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