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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만해공원에는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으로 어르신의 동상이 의자에 앉아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한용운 선생의 동상이다. 선생의 옆에 나란히 앉아 차들이 지나는 풍경과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선생이 그리던 독립 국가 대한민국의 한가로운 거리 풍경이다. 한동안 정신적 자유를 흐트러뜨려 놓았던 AI 시대의 계엄과 국가수반의 탄핵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자유가 변형될 위기를 시민의 힘으로 타개한 사건이다. 이렇듯 자유를 위한 외침은 한용운 선생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에게 물려받은 정신이 아닐 수 없다. 정류장에서 이어진 언덕을 오르면 한적한 산자락에 한용운 선생의 생가 심우장이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선생의 집을 향해 올랐다. 이 마을은 북장골이라 불리었던 고요한 산골이다. 서울의 풍경이라 믿기 힘든 폐가의 골목길, 빈집 뒤편으로 심우장이라 쓰여있는 문패가 보인다. 심우(尋牛)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하여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단계 중 하나다. 기와지붕의 한옥이지만 그리 넉넉한 공간은 아니다. 두 칸의 방과 한 칸의 부엌으로 지어졌다. 부엌은 아궁이 위로 만든 부뚜막과 가마솥 그리고 방으로 통하는 마루로 단정한 차림이다. 토방에 신발을 벗고 방안에 들었다. 가운데 너른 방에는 선생님의 친필 원고와 저서들이 전시되어있다. 선생은 이곳에서 흑풍, 후회, 박명 등의 소설을 집필하였다. 시집 님의 침묵은 1925년 백담사 오세암에서 탈고한 것이다. 왼쪽 방 중앙 벽에는 선생의 초상화가 있고, 측면 벽에는 한시 선방 뒤뜰에 올라, 향로암 야경이 걸려있다. 심우장에는 또 한 분의 독립투사의 이야기가 있다. 한용운 선생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후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독립운동가 김동삼 선생의 유해를 거두어 이곳에서 5일장으로 장례를 치러준 것이다. 한용운 선생은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묘비를 건립하기도 하였다. 비문을 새기려 했지만 일제 탄압이 거세어 비석만 세웠다고 한다. 지은 지 90년이 흘렀는데 집벽을 지탱하는 나무에서 아직도 송진이 흘러 맺힌다. 선생은 1944년 6월 29일 독립을 맞이하지 못한 채 이곳에서 입적하셨다. 아픔의 눈물인지 기쁨의 눈물인지 심우장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나 보다. 선생은 마당 끝에 향나무 한 그루를 심어 남겨두었다. 이렇게 곧게 자란 향나무는 여태 본 적이 없다. 심우장에는 선생님의 넋이 곳곳에 서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