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32세에 떠난 천재 화가 제리코의 절규 / 충격 실화! 메두사호의 뗏목 Théodore Géricault (1791-1824), Le Radeau de la Méduse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скачивания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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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éodore Géricault (1791-1824), Le Radeau de la Méduse 1816년 6월 17일, 선장 쇼마레이(Chaumareys)는 메두사호에 400명을 태우고 프랑스 엑스 섬에서 세네갈을 향해 떠났다. 25년 넘게 항해 경험이 없었던 그는 연이은 항해 오류를 범한다. 결국 7월 2일 메두사호는 모리타니(Mauritanie)에서 좌초된다. 그는 귀족들과 관료들 250명은 구명보트에 탑승시켰다. 하류층 147명은 뗏목에 대피시켰다. 선장은 구명보트와 뗏목을 밧줄로 연결했고 뗏목에 탄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147명을 태운 뗏목이 너무 무거웠다. 쇼마레이는 뗏목과 연결된 밧줄을 자르라고 명령했다. 뗏목은 거친 바다 위에 홀로 남겨졌다. 내리쬐는 태양빛 아래 물도 식량도 없이 버려진 사람들. 굶주림, 탈수, 분노, 정신착란으로 인해 절망에 빠진 사람들. 공포에 떨다 스스로 바다에 뛰어든 사람들. 광기 어린 발작으로 폭동이 일어났고 학살하는 사람들. 배고픔을 견딜 수 없어 인육을 먹기 시작한 사람들. 너무나 끔찍한 일들이 13일 동안 그 뗏목 위에서 벌어졌다. 7월 17일 범선 아르구스(Argus)호가 구할 수 있는 사람은 15명뿐이었다. 생존자 15명 중에서 5명은 구조된 후에 사망했다. 생존자 외과의사 앙리 사비니(Henri Savigny)는 프랑스 당국이 조용히 덮으려 했던 이 사건을 증언했다. 그는 뗏목에 자원하여 탑승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다른 생존자 코레아르(Alexandre Corréard)와 함께 끔찍했던 난파선의 비극을 1817년에 책으로 출간했다. 27세의 젊은 화가 제리코는 이 비극을 그림으로 남기기로 결정한다. 그는 생존자 코레아르와 사비니를 직접 만나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영안실을 찾아가 죽은 사람의 경직된 육체를 스케치했다. 의사를 설득해 시체의 일부를 얻어 썩어가는 인체의 피부색을 관찰했다. 1818년에 제작된 이 그림은 화가가 제작한 수많은 습작 중에 하나다. 현재 SULLY관 Salle 950에서 감상할 수 있다. DENON관 Salle 700에 전시된 4,91 m x 7,16 m의 거대한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다. 그리고 흑인이 영웅이 되는 첫 번째 작품이었다. 프랑스 낭만주의 대가 제리코는 걸작 ”메두사호의 뗏목“을 28살에 완성했다. 불행하게도 그는 32세에 사망했다. #여행 #루브르박물관 #루브르가이드 #예술사 #제리코 #미술사 #파리산책 #파리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