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칭기즈 칸의 정복 사업: 호라즘 정벌 - 인더스 강 전투 (The Mongol conquest of Khwarezmia: Battle of the Indus)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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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ttle of the Indus was fought at the Indus River, in 1221 between Jalal ad-Din Mingburnu, the sultan of the Khwarezmian Empire and his remaining forces of 30,000 men against the 200,000 strong Mongolian army of Genghis Khan. 징기스칸은 서기 1221년 가을에 호라즘에서 귀환한 주치, 차카타이 및 오고타이와 호라산에서 돌아온 투루이와 함께 가즈니(Ghazni)로 급히 진격했다. 모하메드의 아들 잘라 웃딘이 새로운 근거지를 찾아 이곳으로 갔기 때문이었다. 징기스칸은 가즈니에 도착하니 이미 자랄 웃딘은 그곳에 없었다. 자랄 웃딘은 대승이후 전리품을 서로 다툼으로 해서 아프가니스탄병과 터키병과의 불화로 병력들이 모두 흩어져 가즈니를 지킬 수 없었다. 그래서 인도 국경을 넘어 편지압 지방으로 달아나려 했다. 징기스칸은 자랄 웃딘군이 인더스(Indus)강을 건너 도주할 것이라는 정보를 접하고 급히 추격하여 밤중에 인더스강 가까이서 적의 후위를 만나 격파했다. 서기 1221년 11월 24일 인더스강을 배후로 몽골군과 자랄 웃딘의 호라즘군이 결전을 벌렸다. 자랄 웃딘은 우익에 정예 이슬람군을 배치하고 용장 아민 아르말릭이 지휘하에 인더스강을 따라 몽골군 우익을 공격하도록 했다. 징기스칸은 반월형(半月形)으로 진형을 갖추고 여러 겹으로 종대를 이루어 자랄 웃딘군을 포위했다. 달이 밝아 전투는 계속되어 몽골군은 자랄 웃딘군을 초생달 모양으로 겹겹이 쌓고 인더스강으로 조여들자 자랄 웃딘군은 본의 아니게 배수진이 되어 버렸다. 징기스칸은 적의 우익이 강함을 알고 먼저 적의 우익을 집중공격하자 아민 아르 말릭의 우익은 거의 전멸하고 아민 아르 말릭은 판지압지방으로 도주해 버렸다. 날이 밝자 몽골군이 포위망을 좁혀 오자 자랄 웃딘은 700명 정예부대로 중앙을 수비하도록 하면서 포위망을 뚫으려고 전후좌후를 돌격하면서 결사적으로 싸웠다. 화살이 다 떨어지자 육박전(肉薄戰)이 서서히 진행되었다. 정오가 되어 자랄 웃딘은 포위를 도저히 돌파할 수 없음을 알고, 등에 방패를 매고 손에 기를 들고 인더스강까지 말을 달려가서 20척(6미터)이나 되는 절벽에서 말과 함께 인더스강의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헤엄쳐서 인도 쪽으로 도망해 버렸다. 징기스칸은 도망하는 자랄 웃딘을 높은 언덕에서 바라보며 침묵하고 있다가 “저런 아들을 둔 아버지는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면서 자기 아들에게 배우라고 말했다. 그리고 추격을 중지했다. 징기스칸은 인더스강 우안으로 북상하여 서기 1222년 봄 힌두쿠시 산중에서 여름을 보냈다. 그러나 다음해에 발라 노얀(八刺)이 인더스강을 넘어 물탄(Multan)과 라흐레(Lahore)를 유린하면서 자랄 웃딘을 추격했으나 너무 더워 탐색을 포기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