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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일상수행의 요법 1∼3조의 첫 구절인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와 ‘심지는 원래 어리석음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심지는 원래 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몰아서 ‘심지는 원래 요란함·어리석음·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심지는 마음 心, 바탕 地로 마음바탕을 뜻합니다. 이러한 마음바탕에 요란함·어리석음·그름이 원래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일원상의 진리’로 살펴보면, 마음바탕인 心地는 하나로 두렷한 일원상으로 공적영지의 광명이요 진공묘유의 조화입니다. 즉 대소유무에 분별이 드러나는 당처가 바로 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이며, 생멸거래를 알아차리고 있는 자리가 바로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마음바탕이며, 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는 당처가 곧바로 선악업보가 끊어진 자리이며, 언어명상이 완연한 자리가 곧 언어명상이 돈공한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심지는 일원상으로, 살아있는 생생한 공적영지의 땅이요 약동하는 진공묘유의 땅입니다. 즉 요란함을 환히 드러내면서도 요란함에 물들지 않는 자리이며 어리석음과 그른 줄 역력히 알아차리면서 어리석음과 그름에 물들지 않는 자리입니다. 요란함·어리석음·그름에 물든 줄 알아차리는 그 자리가 곧바로 원래 요란함·어리석음·그름에 물들지 않는 자리입니다. 경계를 따라 분별이 있어지는 당처가 곧 경계에 물들지 않는 일념미생전인 분별이 없는 자리로, 분별이 있어지는 줄 알아차리면 그 당처가 곧바로 분별이 없는 자리와 둘이 아닌 것입니다. 분별을 내려놓으면 분별 있는 자리가 분별이 없는 자리와 하나로 원융한 자리입니다. 다만 분별이 있어지는 경계에 끌려가면 분별에 빠지는 것입니다. 요란함은 ‘정신수양’에 있어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이 일어나고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는 것이라면, 어리석음은 ‘사리연구’에 있어 대소유무의 理와 시비이해의 事에 어두운 것이며 그름은 ‘작업취사’에 있어 정의는 버리고 불의를 취하는 것입니다. 일원상인 심지는 본래부터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없는 청정한 자리이며, 영명한 자리이며, 공변된 자리입니다. 요란함이 눈앞에 펼쳐진다 해도 그 요란함을 요란함으로 자각하는 자리는 본래 요란하다할 것이 없는 청정한 자리이며, 어리석다는 마음에 함몰되었을 때도 그 어리석다 여기는 그 마음을 직시하여 자각하면 원래 어리석다할 것이 없는 청명한 자리이며, ‘나는 해 봤자 글렸어’ ‘나는 애초에 글렸어’라고 자학할 때도 글렸다고 여기는 그 마음에 직면하여 비추어보면 그 자리는 원래 그름으로 오염될 수 없는 자리입니다. 마치 하늘에 먹구름 뭉개구름이 떠 다녀도 허공을 근본적으로 훼손시킬 수 없듯이, 허공은 아무리 어찌한다 하더라도 텅 비어 걸림이 없는 자리입니다. 또한 허공처럼 청정하기에 먹구름도 뭉개구름도 선명한 것입니다. 이처럼 심지는 본래 요란함·어리석음·그름에 걸림이 없는 자리이므로, 요란함이 명백하며 어리석음이 선명하며 그름이 확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경계를 쫒아 요람함·어리석음·그름이 발생합니다. 심지에는 원래 요란함·어리석음·그름이 없는데 경계를 따라가기에 있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지를 놓치고 경계에 매몰되기 때문입니다. 일상수행의 일상은 경계를 따라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이 있어지는 때로 이때 수행하자는 것입니다. 境界는 분별심에 따라 드러나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분별심이 심지에 바탕하면 대상을 그 심지로 드러내나 심지를 여의면 분별망심으로 드러내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햇빛이 본래 어둠이 없으나, 가림에 따라 밝음과 어둠이 생기는 격입니다. 햇빛이 본래 있기에 햇빛이 비치면 밝음이요 햇빛을 가리면 어둠입니다. 이처럼 경계를 심지로 비추면 경계가 훤히 드러나지만 경계에 끌려서 심지를 외면하면 심지가 어둡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지가 가릴 때 요란함도 발행하고 어리석음과 그름도 발생하는 것입니다. 즉, 경계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경계에 끌려 심지가 이에 가리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경계란 안이비설신의 육근의 대상인 색성향미촉법 육경(六境)을 말합니다. 경계란 이곳과 저곳을 나누는 분계선입니다. 경계선은 사실 내부이면서 외부이고 외부이면서 내부입니다. 이 말은 경계는 내부와 외부가 관통된 인연으로 내부가 투영된 외부로 내부의 외부화라는 말입니다. 경계는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마음이 투영된 대상입니다. 이러한 경계를 따라 요란해 질 때 그 요란한 마음을 돌이켜 보십시오. 경계를 따라 어리석어 질 때 어리석은 줄 아는 마음을 돌이켜 보십시오. 경계를 따라 글러질 때 그른 줄 아는 마음을 돌이켜 보십시오. 경계를 따라 요란해 질 때 요란한 줄 아는 자리에는 요란하다 할 것이 원래 없습니다. 경계를 따라 어리석어지고 글러지는 줄 아는 자리에는 어리석음과 그름이 본래 없습니다. 이 자리는 요란함도 어리석음도 그름도 공적한 자리이면서도 요란한 줄 알고 어리석고 그른 줄 아는 영지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를 마음바탕 심지라 합니다. 이 심지를 ‘정산종사법설’에서 ‘우리의 진정한 고향’이요 ‘心源’이라 하며, 이 심지로 마음공부하는 것입니다. 즉 심지는 경계이전 자리와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자리를 관통하는 일원상 자리입니다. 오늘은 일상수행의 요법 1∼3조의 ‘심지는 원래 요란함·어리석음·그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구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원불교의 가장 핵심 경전인 정전을 강의합니다. 원불교를 신앙하고 수행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강의가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원불교 공식 홈페이지 http://www.wo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