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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농옥(曺弄玉, 1920-1971) 김정문(金正文) 문하에서 소리를 배우다가 송만갑(宋萬甲)에게 흥보가·심청가·수궁가를 학습한 뒤 정정렬(丁貞烈)에게 춘향가를 공부했다. 1935년 16세 때 조선극장에서 열린 전국남녀명창대회 때 1등을 하여 콜럼비아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강상에 둥둥" 등을 취입하였다.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研究會) 창립발기 때 김초향·김여란·박녹주 등과 함께 동참했고, 1936년 조선성악연구회의 흥보전 공연 때 출연했다. 1937년 대동가극단(大東歌劇團) 시절 임방울·최옥산·박초월 등이 출연한 춘향전 공연 때 향단 역을 맡았다. 장기는 흥보가·춘향가였으며, 특히 어사또와 춘향모 월매(月梅)의 상봉 장면을 잘 불렀다. 1936년 2월 조선성악연구회의 직속단체로 창극좌(唱劇座)가 창단됐을 때 강태홍·김세준·김연수 등과 함께 창극활동을 전개하였다. 1935~1945년 정원섭·최수성·한갑득 등과 함께 "강상(江上)에 둥둥"·"개고리타령"·"개타령" 등 20여 곡의 민요와 판소리의 눈대목을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했다. 그녀가 취입한 "강상에 둥둥"·남도잡가(南道雜歌)·"남원산성"(南原山城)·단가·"동남풍"(東南風) 등의 여러 노래는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한다. 1936년 8월 28~29일 수해구제구악대회 때, 1938년 3월 12~13일 여류명창대회 때, 1938년 10월 16~17일 명창대회 때, 그리고 1940년 3월 16~17일 한해구제명창대회 때 출연하였다. 해방 직후 대한국악원(大韓國樂院)의 창극단에서 임방울·김연수·박녹주 등과 함께 활동했다. 1952년 창단한 햇님국극단에서 떨어져 나와 동생 조금앵(曺錦鶯)·조금례(曺錦禮)와 함께 신라여성국극단(新羅女性國劇團)을 창단하여 활약하였다. 1952년 김주전(金主傳)이 부산에서 햇님국극단을 재조직했을 때 그녀는 박보아·조금앵·박옥진 등과 함께 "쌍동왕자"·"바보온달"·"마의태자"(麻衣太子) 등의 창작 사극을 공연하였다. 1954년 햇님국극단의 대표 김주전이 사망하자 조농옥·조금앵·조금례 세 자매는 햇님국극단에서 분리하여 신라여성국극단 창단하고, "보름달" 등의 창작품을 공연하였다. 이연하(李蓮下)는 이영민(李榮珉, 1881-1962)의 『벽소시고(碧笑詩稿)』에서 조농옥의 소리에 대해 "갑자기 쟁그랑대는 〈봉래곡〉 한 소리(忽然玉碎蓬萊曲) 귀신이 아니라면 신선이 부르는 솜씨로다(若是非神定是仙)"라고 평한 바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농옥 [曺弄玉] (한겨레음악대사전, 2012. 11. 2., 송방송) [네이버 지식백과] 조농옥 [曺弄玉] (한국전통연희사전, 2014. 12. 15., 전경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