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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십자가인가 2025년 3월 31일 온유하우스 매일묵상 (십자가 10번째 묵상) 오늘의 말씀 : 고린도전서 1장 22-24절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오늘의 묵상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라는, 복음서에 의거한 우리의 주장은 특별히 많은 사람을 당혹케 한다. 그들은 “왜 우리의 사죄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지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왜 하나님은 십자가 없이, 우리를 그냥 용서하시지 않는가?” 프랑스의 한 냉소자는 이 말을 이렇게 표현했다. “선한 하나님은 나를 용서할 것이다. 그것이 그분의 일이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함에서 공연히 소동을 일으키며, 심지어 그 아들의 ‘죄를 위한 희생’이 없이는 사죄가 불가능하다고까지 선언하시는가? 그것은 마치 현대인들이 이미 오래 전에 폐기한 원시적인 미신처럼 들린다. (P 161-2) 이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11세기 말의 안셀무스가 그의 위대한 책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에서 제공하였다. 그 책에서 그는 만약 우리가 서로 용서하듯이 하나님도 그렇게 단순하게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죄의 심각성을 심사 숙고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두 번째 대답도 유사하게 표현할 수 있다. 곧 “당신이 하나님과 인간 혹은 거룩과 죄에 대한 이해가 비뚤어져 있을 때 속죄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당연히 비뚤어지게 된다.” (P 162) 그러므로 우리가 제기해야 할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즉, 왜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가가 아니라, 도대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은 그것을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가 하는 것이다… 애당초 잘못된 질문을 제시하는 이유는, 그들이 죄의 심각성이나 하나님의 위엄을 세심하게 심사숙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P 163-5) 성경이 강조하는 바는 죄의 사악한 자기 중심성이다. 모든 죄는 예수님이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부르신 그것을 어기는 것인데, 이는 단지 우리의 전 존재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창조주요 주님으로 인정하고 순종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거부함으로 그 계명을 범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피조성 속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의존적 위치를 거절하고 도리어 독립을 얻고자 노력하였다. 더욱 악한 것은 우리가 감히 우리의 자존(self-dependence), 우리의 자율성을 선언했다는 사실인데,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점유하신 위치를 주장하는 일이다. (P 166-7) 죄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적대감으로(롬8:7), 하나님께 대한 적극적인 반항에서 생겨난다. 죄는 ‘하나님의 전능’을 자기의 것으로 주장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올려 놓기 위하여 ‘주 하나님을 쫓아 내는 것’이다. 오늘의 적용과 기도 내가 지금 십자가 앞에서 나의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무뎌진 마음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과 나를 사랑한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다시 한 번 고백하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