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향유의 의미 & 용서? 헌신? 대관식? (막 14:1-11 & 병행본문) 마태-마가-누가 비교 57 ㅣ 바이블온에어 (조태연 교수 2024/9/12)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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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도입과 결말 마가와 마태는 기름부음의 이야기를 수난사화의 첫 레파토리로 삼고, 유대 지도자들의 흉계아 유다의 배반 이야기로 둘러싼다. 반면에 누가의 수난사화 초입에 유대 지도자들의 흉계아 유다의 배반 모티프가 등장하기 해도 기름부음의 이야기는 없다. 그대신 누가는 7장 말미, 즉 갈릴리 사역의 초기에 이 이야기를 소개한다. B. 마태, 마가, 요한 ▣마가복음 ➧14:3. ➀예수는 종말강화(13장) 후 베다니로 돌아왔다. ➁나병환자 시몬의 집: 가버나움에서 시몬의 집을 임시거처로 삼듯, 아마 또 다른 시몬의 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는 나병환자다. 예수는 그 부정한 자의 집에서 식사를 나눈다. ➂그때 이름 없는 한 여인이 나아와 옥합을 깬다. 그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붓는다. 이것은 ‘그리스도 대관식’이다. ➃옥합을 깼으므로 다시 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인은 향유를 다 소비할 수밖에 없다. ➧14:4-7. 사람들은 여인을 직접 질책하고, 예수는 여인을 보호한다. ➧14:8. ➀여인은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으나, 예수는 향유를 “몸에” 받는다. 마가는 빵의 상징, 몸의 신학을 완성하려 한다. ➁그 여인의 기름부음, 곧 그리스도 대관식은 예수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다. ➧14:9. ➀“이 여자가 행한 일”은 “내게 좋은 일”이다(6절). ➁복음과 기념 & 기념받을 여인: 기념의 대상이 그리스도(고전 11:24,25)에서 여인으로 바뀌는 것을 보라! ‘복음’엔 그녀에 대한 ‘기념’이 포함되어야 한다(*여성신학). ➂그 후 여인은 아마 곧바로 사라졌을 것이다. 갑자기 등장했듯이 갑자기.... ➧서사적 연결: ➀수난사화의 첫 이야기다. ➁예수는 여인의 그리스도 대관식을 받으신다.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을 거부하심(8:27-34)과 비교된다. ➂장차 베드로의 ‘그리스도 부인’과도 비교된다(14:53-72). ➃여인들이 예수의 임종(15:40-41), 장례(15:42-47), 빈무덤(16:1-18)을 직접 목격한 일과 연결된다(*빵의 상징, 몸의 신학; *여성신학). ▣마태복음 ➧26:7. 마가 14:3의 “식탁에 앉으셨을 때”(κατάκειμαι)를 다음 절 “식탁에 앉으셨을 때”(ἀνατάκειμαι)로 이동했다. ➧26:8-9. ➀마가의 “어떤 사람들”을 “제자들”로 바꾼다. 그 결과, ‘여인’의 행위에 대한 보도(6-7, 12-13절) 사이에 예수와 제자들(‘남자들’)의 논쟁적 대화가 삽입된다! ➁“분개하여”는 마가의 “화를 내어”(ἀγανακτέω)와 원어로 동일하다. 우리말 번역이 일관성을 어겼다. ➂제자들은 마가에서처럼 여인을 책망하지는 않는다(ἐμβριμάομαι). 그저 자기들끼리만 불평한 것이다. ➧26: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러나 예수는 제자들의 속마음에 대하여 전지(全知)하시다. ➧26:8-11. ➀수난사화에서 여인들은 예수를 정확히 알고, 이 점에서 제자들보다 우월하다. ➧전체적으로 마태는 마가의 본문을 유지하는 편이다. ▣요한복음 ➧12:1. ➀유월절 엿새 전: 토요일 저녁식사 시간이 된다. ➁베다니: 예루살렘과는 2km 거리로 예루살렘 입성 전이다. ➂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 11장의 연속이다. 사건의 장소는 베다니 시몬의 집이 아니라 베다니 나사로의 집이다. ➧12:2. ➀...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요한은 여러 사람을 실명으로 등장시킨다: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가룟 유다. ➁그 중 마르다가 음식을 장만한다. 베다니의 마르다는 요한복음의 세 여성 거인 중 하나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는 신앙고백과 함께 나사로를 살리게 한 이다. ➧12:3. ➀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예수께 향유를 부은 사람은 마리아다. 그는 마르다와 자매 사이로(요 11:1-2), 그도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요 20:6) 요한복음의 세 여성 거인 중 하나다. 눅 10:28-42와 동일한 구도다. ➁향유를 발에 붓고 머리털로 닦는다. 마리아의 머리가 예수의 발을 지극 정성으로 섬긴다. 누가복음과 같다(눅 7:38). ➂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나사로의 시체 썩는 냄새와 대조된다(요 11:39). 예수의 장례와 부활을 예고한다. ➧12:4-6. 마가의 “어떤 사람들” 및 마태의 “제자들”을 “가룟 유다”로 바꾼다. 마리아의 행위를 반대한 것은 탐욕 때문이다. ➧이 사건은 요 11:2에서 이미 예고된다. 요한의 본문은, 누가와 공통점도 있지만, 마가의 본문과 유사하다. 마리아는 이미 예수의 발 앞에 엎드린 적이 있다(11:32). 이 또한 향유를 발에 붓고 머리털로 닦을 행위를 예고한다(12:3). *요한복음의 ‘발’ ➧마르다는 음식으로 섬기며, 마리아는 헌신의 향기로 가득하다. 마르다는 신앙과 섬김을 대표하고, 마리아는 사랑과 헌신을 대표한다. 자매는 오라비 나사로와 더불어 고난 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의 소망과 영광을 대표한다. C. 누가 ➧마가, 마태와 다른 점: ➀수난사화의 첫 이야기➞ 갈릴리 사역이 한창일 때. ➁나병환자 시몬의 집➞ 바리새인 시몬의 집. ➂한 여자➞ 죄를 지은 한 여자. ➃머리에 부음➞ 발에 부음. ➄예수는 기름부음 받음(그리스도 대관식)➞ 예수는 죄를 사하는 선지자로 인정받음. ➅그 여인이 기념 받음➞ 그 여인이 탕감, 죄사함을 받음. ➧눅 7:36. ➀고난주간이 아니라(not 수난사화) 갈릴리 사역 초기에, ➁한 바리새인이 예수를 자기 집으로 식사에 초대하고 예수는 응한다. ➂그의 이름은 ‘시몬’이다(41, 43, 44절).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과 동일인? 신약엔 시몬이 8명 나온다. ➧7:37. “그런데 보라!”로써 독자의 주목을 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 하나가 갑자기 등장한다. 그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➀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자 소문이 두루 퍼짐(7:11-17). ➁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나아옴(7:18-35). ➂죄 많은 여자가 예수를 찾다가 나아옴(7:36-50). 그는 아마도 “죄를 지은 여자”로서, 창녀나 간부였을 것이다. ➧7:38. 그는 예수 뒤로 와서 발 곁에서 ❶울면서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으며, ❷입을 맞춘 후, ❸향유를 붓는다. 회개와 감사와 존경의 표현이다. 핵심 이슈는 예수와 여인 사이의 ‘신체적 접촉’이다. ➧7:39. 그 바리새인은 여인이 죄인이란 사실과 그 진한 신체적 접촉을 근거로 예수가 선지자가 아님을 확신한다. 참조, “큰 선지자”(7:16). ➧7:41-47. 예수는 긴 말씀으로 바리새인에게 답한다. ➀비유(41-43)를 통해 여인은 탐감(용서)을 많이 받은 자로서 바리새인보다 예수를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➁바리새인과 여인은 ❶눈물과 씻음, ❷입맞춤, ❸향유 부음으로 다시 한 번 비교된다(44-46절). ➂이로써 예수는 바리새인에게 그 여인의 많은 죄가 사해졌음을 확인시킨다. ➧7:48-50. 예수와 및 동석한 자들의 입을 통해 세 차례나 여인이 죄를 사함받고 믿음으로써 구원 받았음을 확인한다. ➧➀누가복음의 이야기는 마가, 마태보다는 요한복음에 가깝다. ➁누가는 ‘발’에 집중하여 여인의 겸손과 진정성을 드러낸다. ➂바리새인과 예수를 비교한다. 바리새인은 정결법에 보수적이며 접촉에 극히 예민하다. 반면에 예수는 개방적이며, 여인의 접촉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➃전체적으로 예수님이야말로 ‘죄인들의 친구’시며, 이로써 유대인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됨을 보여준다. ➄궁극적으로는 예수께서 죄인들을 영접하고 용서함으로써 신적 권위를 가진 ‘큰 선지자’이심을 보여준다(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