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순교의 피를 흘렸던 원주의 강원 감영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Если кнопки скачивания не
загрузились
НАЖМИТЕ ЗДЕСЬ или обновите страницу
Если возникают проблемы со скачиванием видео, пожалуйста напишите в поддержку по адресу внизу
страницы.
Спасибо з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ервиса ClipSaver.ru
감영의 규모는 선화당(정청)을 비롯하여 재은당(내아), 포정루(정문), 4대문, 객사 및 부속건물 등 31동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선화당, 포정루, 청운당 등의 건물만이 남아 있다. 선화당(宣化堂)은 조선시대 강원감영의 본관 건물로 관찰사가 직무를 보던 곳이다. 선화당이라는 편액(扁額)의 의미는 임금의 덕을 선양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건물이라는 뜻이며, 관찰사는 이곳에서 행정·농정·조세·재판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감영의 첫 번째 출입문인 ‘포정루(관동포정아문)’는 ‘관찰사가 시행하는 정사가 두루 잘 시행되는지 살펴보는 누각’이란 뜻을 지님과 동시에, 위험이 생길 때 이를 알리는 역할을 겸했습니다. 실제로 포정루를 따라 빙 둘러싸인 벽이 강원감영을 단단히 지키고 있다.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 등 많은 순교자가 강원 감영으로 끌려와 혹독한 옥살이를 하고 참수 치명했다. 김강이 시몬은 충청도 서산 출신으로 입교 뒤 전라도 고산땅에 살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피신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1815년 을해박해 때 강원도 울진에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고문으로 생긴 상처와 이질로 옥사하였다. 강원도에서는 1815년 초에 많은 교인들이 체포되어 원주감영에 갇혔는데, 대개는 배교하여 석방되거나 유배되었고, 김강이(金鋼伊) 혼자만이 끝까지 신앙을 지켜 12월 5일 옥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