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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성공시킨 '17인의 결사대' [앵커] 지금으로부터 65년 전, 맥아더 장군이 이끈 인천상륙작전은 수세에 몰렸던 6ㆍ25 전쟁을 단숨에 공세로 전환시킨 쾌거로 남아있는데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17명 결사대원들의 목숨을 건 활약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정영빈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6ㆍ25 전쟁 발발과 함께 인민군에 밀려 국군이 후퇴를 거듭하던 1950년 8월 13일. 당시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은 정보국장이던 함명수 소령을 불러 은밀한 작전을 지시합니다. 일명 '엑스레이 작전'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임무였습니다. 모두 17명의 첩보대가 구성돼 목숨을 건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 / '엑스레이작전' 지휘] "암벽의 높이 같은 것이 상륙군에게는 중요한 정보거든요. 둘이 가서 암벽 밑에서 손을 올리면 얼마나 남았나 암벽 높이가 그렇게 추정을 하는 겁니다." 정보를 모두 맥아더 장군에게 넘겨준 첩보대는 철수 직전 인민군 1개 대대의 공격에 맞닥뜨렸습니다. 동료들을 탈출시키고 끝까지 맞서 싸우던 임병래 소위와 홍시욱 병조는 체포 위기에 몰리자 끝내 자결을 선택했습니다. 포로로 붙잡힐 경우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정보가 누설될까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 / '엑스레이작전' 지휘] "새카맣게 적은 쫓아오지 자기는 이제 더이상 후퇴할 수는 없지. 적이 쏘는데 다리에 총을 맞고 더이상 갈 수 없으니까 올라오는 적을 몇명 쏘고 이마에 대놓고 자결하고…" 맥아더 장군이 5천분의 1의 확률이라고 말했던 인천상륙작전은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임성채 / 해군역사기록관리단 군사편찬과장] "우리 해군 첩보부대가 수집한 정보가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최종 결심하는데 큰 요인으로 작용됐습니다." 영흥도에는 이들의 애국심을 기리기 위한 전적비가 세워져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6ㆍ25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뒤에는 해군 첩보대원들의 고귀한 헌신과 용기가 있었습니다. 연합뉴스TV 정영빈입니다. 연합뉴스TV 제보:02-398-4409, [email protected]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