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사순 제5주일 복음 특강] 성체조배를 해야 죄가 녹는다 I 전삼용 요셉 신부 (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성당 주임) 2025.4.6 천주교/가톨릭/신부님강의/가톨릭스튜디오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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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요셉신부 #가톨릭스튜디오 사순 제5주일 – 성체조배를 해야 죄가 녹는다 영화 ‘밀양’의 주인공은 신앙을 가지고 자신이 죄가 용서받았다고 믿지만, 나중에 평온한 마음이 된 유괴범을 보자 분노가 치밉니다. 그래서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더 큰 죄들을 짓습니다. 이는 용서 받았다는 것을 마음으로는 믿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왜 용서받았음을 마음으로 믿을 수 있어야 죄가 사해질까요?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는 명제로 유명합니다. 그가 타인은 지옥이라는 확신을 하게 된 것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을 ‘출구 없음’(No Exit)으로 보았습니다. 설정은 신비한 방으로, 주인공들이 죽음 이후 일종의 사후 세계 역할을 합니다. 이 방은 거울, 창문 또는 탈출 수단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 명의 캐릭터가 소개됩니다. ‘가르생’은 언론인이자 평화주의자입니다. 가장 먼저 방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처음에 자신을 영웅이자 순교자로 소개하지만, 실상은 겁쟁이요 배신자였습니다. 다음 ‘이네스’가 등장합니다. 레즈비언 우체국 직원인 그녀는 교활하고 잔인했습니다. 마지막 ‘에스텔’은 외모에 관심이 많은 상류층 여성으로 가장 늦게 도착합니다. 그녀는 연인과 자신이 낳은 아기를 죽인 사실이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전생과 저주받은 이유를 천천히 드러내면서 연극이 전개됩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얽히면서 드라마는 더욱 강렬해지고,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합니다. 가르생은 자신의 용기를 증명하기 위해 방을 떠나고 싶어 하고, 이네스에게 자신이 영웅처럼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레즈비언인 이네스는 에스텔을 유혹하려 합니다. 에스텔은 유일한 남성인 가르생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필사적으로 유혹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소용이 없었고 끊임없는 좌절과 괴로움으로 이어집니다. 나중에 문이 열려도 그 문에서 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욕망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극은 등장인물들이 영원히 심리적 지옥의 고통 속에 갇혀 서로나 자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어쨌건 욕망과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을 하려고 이 극본을 썼습니다. 그러나 죄에서 해방되는 출구가 있다면 어떨까요? 모든 죄의 시작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바로 뱀이요 자아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죄짓게 만들고는 ‘죄책감’을 일으킵니다. 행동으로 나오는 모든 죄는 다 자신 안의 죄책감을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의 발동입니다. 하와는 죄책감을 아담과 나누려고 선악과를 아담에게 주었습니다. 아담은 그 죄책감을 하와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따라서 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죄책감을 없애면 됩니다. 이 죄책감은 그 죄에 상관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분에 의해 사라집니다. 사람에게 학대당한 한 강아지가 좋은 주인을 만나서 결국엔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유튜브 동영상이 있습니다. 그 강아지에게 세상은, 특별히 인간은 자신을 심판하고 학대하는 대상이었습니다. 인간 한 명의 사랑만으로는 그 마음을 바꾸는 게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이 ‘주인’이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주인만 사랑해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일시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밥 한 번 주고, 한 번 쓰다듬어준다고 자신이 용서받는 존재라는 것을 마음으로 믿기 어렵습니다. ‘밀양’에서 주인공이 용서에 실패한 원인은 한 번의 체험으로 자기 아들을 죽인 이를 용서하러 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자를 앞에 놓고 돌을 들고 있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이는 “너희도 죄가 있으면서 단죄한다면, 너희 죗값도 반드시 치러야 한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판단을 받지 않고 그들의 판단을 할 수 있는 분으로 등장하십니다. 바닥에 그들의 죄를 쓰시는 것에서 나타납니다.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도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죄가 다 사해졌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도, 간음한 여인도 기다리게 만듭니다. 한 명 한 명 떠나가 결국 당신만 용서해 주면 되게 상황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간음한 여인의 믿음이 확고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돌을 들고 있는 바리사이들은 한 번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와 가장 가까운 모습은 우리가 성체 앞으로 나아오거나 성체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곧 성체조배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체이십니다. 분명 우리를 사랑하고 용서하신다는 확신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부족합니다. 저에게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나에게 붙어있어라.”라고 하셨습니다. 성체성사만으로는 저의 죄를 완전히 없애는데 충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체조배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 가지게 되는 똑같은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남편이 바람피워서 매우 미워했던 한 신자에게 성체조배를 하라고 했더니, 남편이 저절로 용서되었다고 합니다. 성체조배 안에서 자신이 용서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식을 주시는 분은 부모이자 창조자이십니다. 창조자께서 괜찮다면 괜찮은 것입니다. 우리 죗값을 대신 다 치러서 세상 모든 나에 관한 판단을 무력화 시킨 그분 품 안에서 우리는 결국 죄에서 벗어나게 되고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삶이 힘드신 분들에게 꾸준한 성체조배를 권해드립니다. 성체조배를 통해 성체의 힘이 나에게서 발휘됩니다. 바로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이고, 이 믿음이 죄를 없앱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