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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신앙과 무속에 스며든 한국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통회와 회복의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우리가 주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나아옵니다. “슬프다, 나의 머리가 물이 되고 내 눈이 눈물의 근원이 된다면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라고 탄식하며 울었던 예레미야의 탄식이 오늘 우리의 탄식이 되게 하옵소서. (렘 9:1) 하나님,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버지 앞에 통회하는 심정으로 나아갑니다. 오늘 들려오는 통계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상처처럼 가슴에 박힙니다. 기독교인 다섯 중 하나가 점과 사주와 타로와 무속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가 더 많이 무속을 찾고 있다는 사실은 뼈를 아프게 합니다. 더욱 마음이 아픈 것은 수많은 성도들이 “점을 보는 것은 괜찮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입니다. 주여! 통곡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이 문제는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문제입니다. 세상의 타락이 아니라 주의 백성들의 타락입니다. 주여, 우리의 믿음이 얇아졌습니다. 예배당 안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은 다른 문을 두드렸습니다. 우리가 “평안하다, 평안하다” 말하였으나 평안이 없었습니다. (예레미야 6:14).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라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대 가운데 분명히 말씀하셨건만 우리는 ‘두려움’을 또 하나의 신으로 세웠습니다. (출애굽기 20:3). 안전을 또 하나의 신으로 세웠습니다. 주님, 우리가 두 마음을 품었습니다. (야고보서 1:8). 조금만 흔들려도 다른 문을 두드렸습니다. 하늘의 아버지가 계심에도 다른 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책망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우리는 지금 영적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하신 그 말씀이 지금 우리를 향한 탄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호세아 4:6) 하나님께서는 “너희 중에 점치는 자나 박수나 무당을 용납하지 말라” 하셨건만 우리는 그 말씀을 구약의 오래된 이야기처럼 흘려 들었습니다. (신명기 18:10-12) 미래를 알고 싶다는 이유로 무지한 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통제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주의 자녀들이 말씀에는 귀를 닫아 버렸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으나 우리는 말씀보다 더 확실해 보이는 답을 붙들었습니다.(마태복음 4:4) 주님, 이것이 우상숭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마귀는 주의 자녀들의 생각 속에 무속이 단순한 문화로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주님, 우리가 분별을 잃었습니다. ‘빛을 어둠이라’ 하고 ‘어둠을 빛이라’ 하였습니다. (이사야 5:20) 거룩을 가볍게 여기고, 마귀의 미혹을 문화로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주권을 밀어내고 미래를 스스로 통제하라는 사탄의 교묘한 함정이 있었음을 주의 백성들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못하고 점괘를 통해 답을 얻으려는 태도속에 불신앙을 깔아놓았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통과하지 않고 결과만 얻으려는 욕망을 숨겨 놓았습니다. 아버지께 기도로 묻지 않고 즉시 답을 요구하는 조급함을 갖게 했습니다. 하나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면서도 속으로는 “나의 뜻대로 되게 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속삭였습니다. 기도는 했지만 불안을 내려놓지는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하셨지만 우리는 인생을 주님께 맡기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전서 5:7)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셨지만 우리는 결과로 살았습니다.(로마서 1:17) 주님, 우리가 믿지 아니함을 도와 주옵소서. (마가복음 9:24). 하나님의 침묵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기다림을 훈련하지 않았습니다. 고난 속에서 역사하시는 섭리를 붙들지 못했습니다. 십자가 없는 해결을 원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부재하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했습니다. 기다림을 시험이라 불렀습니다. 주님의 침묵을 불신앙으로 응답했습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먼저 목회자들이 죄를 깨닫게 하옵소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성공이 곧 복음인 양 전하고 약속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말하면서도 세상의 형통을 더 강조했습니다. 헌금과 축복을 연결하는 언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돕기보다 감정을 자극하는 집회를 더 선호했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을 하나님과의 거래의 수단으로 삼게 만든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이 땅에 세우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이름을 입에 담았으나 주님의 마음을 잃어버린 자들이 없게 하옵소서. 발락의 집에서 상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입술을 열었던 발람처럼 (민수기 22–24장), 은밀한 탐욕이 설교의 배후에 서 있지 않게 하옵소서. 저주하지 못하니 유혹으로 넘어뜨리라 속삭였던 그 교훈이 (요한계시록 2:14) 오늘 우리의 강단에 스며들지 않게 하옵소서.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며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라는 주님의 책망을 듣지 않게 하옵소서. (예레미야 6:14) 주님, 말씀을 거래하지 않게 하시고 기름부음을 명예로 삼지 않게 하시고 양 떼를 수단으로 삼지 않게 하옵소서. 발람의 길로 가지 않게 하시고 (베드로후서 2:15) 끝까지 십자가의 길로만 걸어가는 주의 종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한국교회의 성도들을 일깨워 주옵소서.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마태복음 16:26) 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탄식을 알면서도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성공을 더 붙들었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마태복음 7:21) 라고 분명한 경고를 주셨건만 우리는 입술로는 주를 부르면서도 하나님의 뜻 앞에서는 물러섰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는 불안에 지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결과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기도보다 빠른 답을 원했습니다. 묵상보다 확실한 점괘를 원했습니다. 십자가보다 안전한 길을 원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믿음 위에 서지 못했습니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침묵을 시험으로 여겼습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싸우지 않고 편리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주님,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 아버지 앞에 우리가 결코 변명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사회 탓을 하지 않겠습니다. 청년 세대를 탓하지 않겠습니다. 문화 탓을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무너졌습니다. 교회가 먼저 혼합되었습니다. 거룩과 세속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성전 안에 다른 제단을 허락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편 51:10)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하옵소서. 점집 문이 아니라 골방의 문을 두드리는 세대로 일으켜 주옵소서. 하나님,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새롭고 산 길을 열어 주옵소서. 거래를 버리고 신뢰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자극을 버리고 임재를 사모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보다 앞서지 않게 하시고, 말씀 앞에서 기도함으로 기다림을 배우게 하옵소서. 목회자들이 프로그램 운영자가 아니라 영혼의 동반자로 서게 하옵소서. 교회가 판단의 공간이 아니라, 눈물 흘릴 수 있는 공간이 되게 하옵소서. 성도들이 점집 문을 두드리기 전에 기도의 자리에 엎드리게 하옵소서. 주님,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고 약속하신 말씀을 붙듭니다. (역대하 7:14) 주님 이 땅 가운데 남은 자가 있음을 주께서 아십니다. 아직 꺼지지 않은 심지가 있음을 아십니다. 꺼지지 않게 붙들어 주옵소서. 여전히 눈물로 기도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땅 가운데 세우신 주님의 교회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심을 믿습니다. 심판이 아니라 정결케 하심으로 다루어 주옵소서. 우리가 다시 십자가 앞으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한국교회를 다시 세워 주옵소서.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찢으시나 다시 싸매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호세아 6:1). 다시 오실 그날까지 우리를 붙들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복신앙 #무당 #무속 #우상숭배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