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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을 장악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개성을 함락하고 평양으로 갔다.(음력 6월 1일) 그러나 선조는 이미 달아나고 없는 상황... 평양성은 광해군이 지키고 있었다. 광해군은 백성들과 함께 평양성을 사수할 것을 다짐하였다. "나도 그대들과 똑같이 싸울 것이오... 우리가 힘을 합해 죽기로 싸운다면 왜적은 결코 이 평양성을 넘지 못할 것이오!" 평양 군사들도 결사항전을 다짐하였다. 병력은 3~4천여 명이었다. 좌의정 윤두수는 스스로 평양성 사수를 자원하였다. 거기에 도원수 김명원, 이조판서 이원익이 함께하였다. 역시 전투에는 경험이 없거나 능력이 좀 아쉬운 자들이었다. 하지만 평양성을 지키겠다는 의지는 대단하였다. 특히 세자가 그곳에 함께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었다. 6월 13일(음력) 고니시 부대는 드디어 대동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급조된 지휘부는 처음부터 손발이 맞지 않았다. 병사들은 훈련이 되어있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군의 숫자는 30,000여 명으로 열 배나 되었다. 화포를 쏘지만 번번이 빗나가 강물 위로 떨어졌다. 왜적은 이것을 조롱하듯 옷을 벗고 목욕까지 하는 쇼를 보였다. 이에 조선군의 사기는 참담하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윤두수, 김침, 이원익은 일본군 진영을 기습하여 수백 명을 죽이고 말 수십 필을 빼앗는 전공을 세웠다. 그렇게 승기를 잡는듯하였으나 일본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석회탄에 진을 친 일본군들이 공격하자 크게 패하였고 고언백이 600여 명의 병사과 함께 싸웠으나 역시 패하였다. 중과부적이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이에 윤두수와 김명원은 무기들을 모두 풍월루 연못에 버리고 성을 빠져나갔다.. 광해군은 안주목으로 퇴각하였다. 평양성은 그렇게 함락되고 말았다.(음력 6월 13일~14일) 한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제6군 지휘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에게 전라도 점령을 명하였다. 속전속결로 조선왕을 잡으려 했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바다에서는 이순신을 만나 옥포, 합포, 적진포 해전에서 모두 패하였다. 이에 바다를 통한 보급이 어려워졌고 조선왕은 어디에 짱박혀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순신이 나타나면서 모든 상황이 꼬이고 있었다. 하여 그의 전쟁계획에는 수정이 필요했다. 조선의 주요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장악하고 장기전을 대비해야 했다. 전라도를 장악한다면 군량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순신을 육군, 수군 양동작전으로 잡을 수 있을거라 여겼다. 전라도 장악을 명 받은 고바야카와는 우선 부장 안코쿠지 (에케이)로 하여금 창원에 주둔한 별군 2,000여 명 이끌고 전라도로 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