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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봉의 낭만에 대하여 # 2. 고향역 1 안녕하십니까? 한 주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내일부터 추석연휴가 시작됩니다. 벌써 고향 가는 길 위에 계신 분들도 있겠네요. 최대봉의 두 번째 이야기 고향역을 시작하겠습니다. 아주 오래 전, 동해로 가는 영동선 열차 안이었습니다. 담배 연기 자욱한 열차 안에서 마른 오징어와 함께 소주를 팔던 담대한 낭만의 시절이었습니다. 남루한 행색을 한 중년의 사내가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따금 힐끗힐끗 차창 밖을 내다보며 맞은편에 앉은 내게 소주가 가득 담겨 찰랑이는 종이컵을 내밀기도 했습니다. 필터 근처까지 타들어간 '아리랑' 담배를 낀 투박한 손가락 끝이 노랬습니다. 취기가 오른 탓인지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도회에 가서 고생한 이야기. 삼십 년 동안이나 고향을 찾을 수 없었던 사연, 굽이굽이 애옥살이 같았던 인생사를 늘어놓나 했더니 차창 밖으로 펼쳐지기 시작하는 바다를 보며 갑자기 쿨쩍쿨쩍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내는 말했습니다. "삼십 년 만에 고향 바다를 보니 슬픔이 납니다." '눈물이 난다'도 아니고 '슬픔이 난다'라는 비문(非文)과 함께 '고향'이라는 말은 그때 내게 찡한 울림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추석이나 설이면 고향으로 향하는 자동차들의 물결을 보노라면 행인지 불행인지 젊은 시절의 몇 해를 제외하고는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저는 오래 전 열차에서 만났던 그 사내를 떠올리며 고향이라는 말의 찡한 느낌을 아득하게나마 짐작해볼 뿐입니다. 그의 고향역에는 누가 마중을 나와 있었을까요?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 이쁜이 꽃분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나훈아의 노래 고향역이지요. 2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팝송 중에 '고향의 푸른 잔디 존스의 노래로 들으시겠습니다. Green, Green Grass of Home. 한 젊은이가 고향 역에서 기차를 내립니다. 고향의 푸른 잔디는 옛 모습 그대로이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반갑게 달려 나오고 체리 빛깔 입술의 메리도 금발을 찰랑이며 달려 나옵니다. 그러나 달콤한 상상은 여기까지지요. 꿈에서 깨어난 젊은이의 눈에 보이는 것은 네 개의 회색 벽과 교도소 간수와 슬픈 얼굴을 한 신부님의 모습입니다. 이제 곧 새벽이 오면 이 젊은이는 신부님의 기도 소리를 뒤로 하고 간수에게 팔을 잡힌 채로 형장으로 끌려 나가게 될 것입니다. 한 사형수의 슬픈 사연이 담긴 고향 노랩니다. 3 올덕츄리, 즉 오래된 참나무는 서양사람들에게는 우리의 느티나무와 같이 고향마을 들머리에 서 있는 나무, 추억의 나무지요. 사실 참나무는 한 종류의 나무를 지칭하는 게 아니지요. 갈참나무, 굴참, 졸참,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 고토리가 달리는 모든 나무를 참나무라고 하는 거지요. 올덕츄리가 나오는 노래는 또 있습니다. Tie a Yellow Ribbon round Old Oak Tree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세요. 토니 올랜도 앤 돈의 노랩니다.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한 남자가 교도소에서 나오면서 아내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집 앞 참나무 가지애 노란 리본을 달아주오” 15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젊은 여인 혼자 남편을 기다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리본이 달려 있지 않다면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지나갈 생각이었습니다. 드디어 아내와 살던 집이 차창밖으로 다가옵니다. 자, 보십시오, 원래 노란 리본은 미국의 남북전쟁 때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나 연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여인들이 가슴에 달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도 5년 전 차가운 물속에서 생사를 알지 못하는 아이들 돌아오라고 노란 리본을 달았던 아픈 기억이 있었습니다. 4 지금은 실향의 시대인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이들의 노래에서는 고향이라는 말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지난 시절 우리의 유행가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말이 고향일 것입니다. 수난의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일제의 수탈을 피해 만주로, 간도로 떠돌면서, 전쟁통에 이고 지고 피난길에 오르면서.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도시로 떠나면서도 언젠가는 돌아갈 고향을 가슴에 품고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절절한 그리움이 노래들로 남았습니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의 고복수의 '타향살이'부터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의 오기택의 '고향 무정', 나훈아의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 역'에 이르기까지 고향은 마치 어머니처럼 지울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5 '호마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서고 월나라 새는 남쪽으로 난 가지를 가려서 앉는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라는 고시(古詩)에서도 이르듯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가운 것이 우리의 정서이고 고향은 언젠가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그 곳입니다. 추석이 가까워오면서 거리마다, 동네 들머리마다 고향에 오심을 환영한다는 현수막들이 내걸리고 있습니다. 고향을 찾으시는 분들은 부디 차례를 지내기가 바쁘게 떠날 채비하지 마시고 이틀쯤 더 고향집에 머무십시오. 어머니와 함께 누워 밤 새워 옛날 얘기도 도란도란 나눠보시고 어릴 적 뛰놀던 동산에도 오르시고 변함없이 뒤뜰을 지키고 서 있는 감나무에도 따뜻한 눈길 한 번 주십시오. 아이 손잡고 옛날 다니던 학교에도 가보시고 메뚜기 잡으러 논길로도 들어서보십시오. 시멘트집에서 태어나 시멘트를 밟고 사는 아이에게도 언제나 그리운 고향 하나 정도는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6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빌어봅니다. 비둘기호 영동선 완행열차 차창에 기대 울던 그 사내에게 고향이 어머니 품속처럼 따뜻했었기를. 추석명절 잘 보내십시오. 추석 쇠고 만나십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