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영상한국사 I 105 신여성, 봉건적 인습을 타파하다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скачивания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Если кнопки скачивания не
загрузились
НАЖМИТЕ ЗДЕСЬ или обновите страницу
Если возникают проблемы со скачиванием, пожалуйста напишите в поддержку по адресу внизу
страницы.
Спасибо з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ервиса ClipSaver.ru
1908년 4월, 정부는 칙령 22호 고등여학교령을 통해 여성에게 고등보통교육을 할 것을 공표한다. 이에 따라 관립한성고등여학교가 설립됐다. 1931년, 보통학교에 다니는 여학생 수는 9만 명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박사 김활란은 당시 대표적인 신여성이었다. 최초의 여성 미국유학생 박에스더는 고국에 돌아와 최초의 여의사가 됐다. 1924년 10월, 최은희는 당시 부인기자 등용이라는 파문을 일으키며 조선일보 기자가 됐고, 1926년에는 일본의 비행학교를 졸업한 최초의 여자 비행사 박경원도 등장했다. 신여성들은 과감히 집안에서 나와 당시 남성들만의 영역이었던 사회 속에 뛰어들었다. 1920년대 자유연애의 표상이었던 윤심덕은 일본 유학 도중 유부남 김우진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결국 이들의 사랑은 사회적 인습의 벽을 넘지 못하고, 동반자살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던 여류화가 나혜석도 파리에서의 불륜으로 남편에게 이혼당했다. 『삼천리』에 「이혼고백서」를 발표할 정도로 당당했던 그는 이후 사회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최초의 여박사 김활란#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최초의 여비행사 박경원#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화가 나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