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조선 망국의 길에 선 순조_인릉에서 만나보다.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Если кнопки скачивания не
загрузились
НАЖМИТЕ ЗДЕСЬ или обновите страницу
Если возникают проблемы со скачиванием видео, пожалуйста напишите в поддержку по адресу внизу
страницы.
Спасибо з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ервиса ClipSaver.ru
인릉 정조 24년(1800년) 정조는 수빈박씨 로 부터 얻은 아들이 10세가 되자 세자로 책봉하고 연이어 세자빈 간택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자신의 지지파인 노론 시파 의 수장 #김조순 의 딸로 낙점하였습니다. 갑작스런 병으로 세자 가례를 치루기 전에 정조가 사망하였습니다. (1800년 8월) 이어서 세자가 11살에 왕위에 오르게 되니 바로 #순조 입니다. 왕실 최고의 어른인 영조 계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게되고 경주김씨 가문의 정순왕후는 그들과 정적이 되고 있는 노론의 시파와 남인들이 신앙으로 섬기던 천주교를 사학으로 몰아 신자 모두를 처형과 형벌로 다스려 대대적으로 숙청하였습니다. 1802년 10월 미뤄두었던 순조의 가례를 열고 #순원왕후_김씨 가 왕비로 책봉됩니다. 1804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순조가 친정을 시작하면서 장인인 안동김씨 김조순이 국정 운영에 깊이 관여하게 되고 후세 역사가들이 말하는 안동김씨 #세도정치 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정부패로 가문의 이익만을 도모하자 국가 재정은 파탄나고 백성들의 어려움이 커지게되고 따라서 백성들이 국가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급기야 #홍경래란 같은 굵직한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홍경래란은 5개월만에 정부군에 의해 패퇴하였지만 훗날 발발하는 #민중봉기 의 시작으로 큰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세도정치의 병폐를 다스리고자 순조는 아들 효명세자의 세자빈을 #풍양조씨 가문에서 맞이하고 19세가 되는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까지 시켰으나 조선의 역사적 운명이 다했는지 얄궂게도 효명세자가 그 역량과 힘을 다하지 못한 채 22살 어린나이에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순조도 4년 뒤 1834년 이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순원왕후 김씨는 손자가 왕위(헌종)에 오르자 7년간의 수렴청정으로 #안동김씨 세력을 이어가게하고 손자마저 23세에 후사없이 승하하자 실권없는 철종을 앉히고 다시 3년간의 두번째 수렴청정으로 안동김씨 세도를 확고히 해놓았습니다. 순원왕후는 철종 8년(1857년)에 승하하여 순조의 인릉에 합장 안치되었습니다. 인릉은 순조 임금과 순원왕후의 #합장릉 을 말합니다. 1834년(순조 34)에 순조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835년(헌종 1)에 파주 교하의 인조 장릉(長陵) 근처에 능을 조성하였으나 풍수지리상 불길론이 제기되면서 1856년(철종 7)에 헌릉 서쪽 언덕인 현재의 자리로 천장하였습니다. 1857년(철종 8)에 순원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인릉에 합장으로 안장하였습니다. 인릉에는 병풍석이 없이 난간석만 둘러 있습니다. 비각안에는 두 기의 능표석이 있는데 1기는 순조와 순원왕후의 인릉 표지석이고 1기는 대한제국시대에 세운 황제국 표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