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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성지답사 대흥사 일지암 초의선사 다산초당 백련사 동백림 #차문화답사 #일지암 #다산초당 #초의선사 #천다우회 일시 : 2025.3.29 천다우회 차문화답사 대흥사(大興寺)는 우리 국토의 최남단, 아름다운 두륜산(頭崙山) 자락에 자리한 사찰이다. 두륜산은 예로부터 대둔산(大芚山)이라 불렸으며, 그에 따라 대흥사도 원래 대둔사(大芚寺)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와 지금의 '대흥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고승이었던 서산대사가 '삼재가 미치지 않는 곳(三災不入之處)이자 만년 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라 칭하며, 자신의 의발(衣鉢)을 보관한 도량이다. 이러한 연유로 대흥사는 한국 불교의 종통이 이어지는 중요한 성지가 되었으며, 근대 승보사찰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대흥사는 오랜 세월 동안 불교의 큰 가르침을 이어온 도량으로, 풍담(風潭)의심 스님을 시작으로 초의(草衣)의순 스님에 이르기까지 13분의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고, 또한 만화(萬化) 스님에서 범해(梵海) 스님까지 13분의 대강사(大講師)가 이곳에서 법맥을 이어왔다. 특히, 13대 대종사 중 한 분인 초의선사 덕분에 대흥사는 한국 차문화(茶文化)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대흥사는 웅장한 산간분지에 자리하여 향로봉, 고계봉, 노승봉, 가련봉, 도솔봉, 혈망봉, 연화봉 등 여덟 개의 봉우리가 감싸고 있다. 사찰의 영역은 남원, 북원, 그리고 별원(표충사, 대광명전, 박물관)으로 나뉘어 있어 그 규모 또한 웅장하다.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대향각, 청운당, 선열당 등이 자리하고 있고,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봉향각, 가허루, 세심당, 적묵당, 정진당, 만월당, 심검당 등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남원의 뒤쪽 멀리에는 서산대사의 사당인 표충사와 동국선원 내 대광명전이 자리하고 있다. 대략 일주문에서 일지암까지는 1km 거리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약간의 경사로 오르막을 올라가야 한다 수백 년의 세월을 넘어 불법(佛法)의 향기를 간직한 대흥사. 이곳은 그저 오래된 사찰이 아니라, 한국 불교의 역사와 정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바람이 머물고, 산이 품어주는 이 고즈넉한 곳에서 우리는 서산대사의 가르침을 되새겨볼 수 있다. “삼재가 미치지 않는 곳(三災不入之處), 만년 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 지금도 그 말씀 그대로 대흥사는 우리 곁에 남아, 고요한 법향을 전하고 있다. 초의선사(草衣禪師)는 조선 후기, 차(茶)와 선(禪)이 하나라는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철학을 펼친 인물이다. 불문에 몸담았지만 유학과 도교를 비롯해 당대의 학문을 두루 익혔으며,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와도 교류하며 학문과 예술을 나누었다. 그는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수행의 일부로 보았다. 차 한잔에도 법희선열(法喜禪悅)의 기쁨이 깃들어 있으며, 차의 본성은 때 묻지 않은 ‘무착바라밀(無着波羅蜜)’이라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초의선사는 『동다송(東茶頌)』을 지어 우리나라 차의 우수성과 차문화의 깊이를 알렸다. 『동다송』에서는 차를 마시는 것이 곧 수행이며, "차는 산중에서 자라 맑고 깨끗하여 선(禪)과 통한다"고 하였다. 또한, "차는 성품을 맑게 하고 번뇌를 씻으며(茶能滌煩惱),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心和氣亦平)"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차가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정신을 맑히고 깨달음을 돕는 도구임을 강조한 것이다. 초의선사가 차와 선을 실천한 공간이 바로 대흥사 일지암(一枝庵)이다. 일지암은 두륜산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작은 암자로, 초의선사가 수행하며 차를 연구하고 스스로 차를 덖던 곳이다. 사방을 둘러싼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흐르는 이곳은 고요하고 평온한 수행처였다. 초의선사는 이곳에서 "일지라도 깨끗한 수행을 잊지 않는다(一枝不忘淸修)"는 뜻을 품고, 오로지 수행과 차에 몰두하였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의 쇠퇴와 함께 다도도 잊혀져가고 있었다. 이에 초의선사는 차문화를 다시 일으키고, 차의 이론을 정리하며 직접 차를 만들어 널리 알렸다. 그는 세상의 번거로움을 떠나 일지암에서 40여 년간 은거하며 차와 함께 수행하다가 81세로 입적하였다. 초의선사가 보낸 차를 받고 추사 김정희가 써 보낸 글씨 ‘명선(茗禪)’이 지금도 대흥사에 전해지고 있다. 그의 사상과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차 한잔 속에 깊이 스며 있다. 한적한 일지암을 내려 가는데 오늘 날씨가 매우 쌀쌀하다 차의 성지로 일지암을 보았다면 다음은 다산초당을 둘러 볼 차례다 주차장에서 다산초당까지 800m라고 한다 여러 종류의 꽃이 한꺼번에 피었다 귀한 백동백꽃을 보았다 귤송당 (橘頌堂) 다산(茶山)이 47세 이던 1808년 봄에 강진 보은산 공성사에서 윤단이 귤동의 윤씨산정(다산초당)으로 다산을 모시고 왔다고 한다 추사김정희선생이 쓴 편액이 글려있다고 한다 남도의 끝자락 강진은 탐진강 푸른물과 월출산 깊은 골짜기마다 다산의 실학정신과 영랑의 시혼이 빛나는 고장이다 다산정약용의 유배길 4코스 65.7km가 만들어져 있다 황사영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18년간 유배생활을 하게 되는데 사의재 와 고성사 보은산방에서 머물다가 1808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산초당은 11년간 이곳에서 제자를 가르치며 글읽기와 집필에 몰두하여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등 500여권의 저서를 남기며 실학을 집대성한 곳이다 이곳 다산초당은 원래는 윤단의 산정 이었으나 서로 교분을 나누면서 다산에게 거처로 제공되었다 서암은 다성각(茶星閣)이라고하였는데 차와 벗하면서 밤늦도록 학문을 탐구한다는 뜻이 담겨있고 18인의 제자가 기거했던 곳이라고 하고 다산이 떠난 후 허물어져 있던것을 1975년 강진군에서 다시 세웠다고 한다 다산초당에는 4경이 있는데 1경은 바위에 직접 세긴 정석이고 , 2경 약천은 가뭄에도 좀처럼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약천의 물을 마시면 담을 삭이고 묵은 병을 낫게 한다고 기록하였다 마당에 놓인 넓은 돌위에서 차를 끓였는데 다조 가 3경이다 4경은 강진만에서 돌을 주워와 인공연못을 만들었는데 연지석가산이라고 한다 본채에 답사객들이 마루에 앉아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동암은 송풍루(松風樓)라고도 하고 다산은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머물며 집필활동을 한 곳이라고 한다 동암모퉁이를 돌아 조금만 가면 천일각이 나온다 하늘 끝 한 모퉁이라는 뜻의 천애일각(天涯一閣)을 줄인 말이다 흑산도에서 유배중인 형 정약전이 그리울 때면 이 언덕에 서서 강진만을 바라보며 스산한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천일각 왼편으로는 백련사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을 통하여 유배생활동안 함께 학문을 나누며 유배생활의 고단함을 잊게 해준 혜장선사와 다산의 만남의 통로를 따라 우리도 넘어가 보기로 한다 약 800m 길에는 야생차와 동백숲이 울창하여 빨간 동백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백련사 찾아가는 오솔길 혜장스님은 백련사 부근의 질 좋은 찻잎으로 차를 만들어 다산에게 보내기도 하였으며, 다산은 혜장스님에게 차를보내 달라는시를 지어보내기도 하였다. 다성으로 추앙받는 초의 선사를 다산에게 소개시켜 준 이도 혜장이었다. 다산에게 혜장은 귀양살이들 잠시나마 잊게 해준 귀한 벗이었고, 혜장에게 다산은 오랫동안 갈망해 온 배움의 잘증을 해갈해 준 스승과도 같았다. 혜장의 호인 아암(兒菴)도 거침없고 직선적인 혜장의 성격을 아이처럼 고분고분해지라는 뜻으로 다산이 지어주었다. 1811년 혜장은 40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게 되자 다산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비명을 쓰고 시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