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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여일은 부관 정인서를 이순신 장군에게 보내서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황여일에게로 달려갔고, 분통함을 토로하며 수군을 걱정했는데요, 그 날의 일을 “난중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7월 14일. 맑다. (……)오전에 종사관 황여일이 정인서를 보내 문안했다. (정인서가)김해 사람으로 왜놈에게 부역했던 김억(金億)의 편지를 보여줬는데, ‘초7일 왜선 오백 여 척이 부산에서 나오고, 초9일 왜선 1천여 척이 합세하여 우리 수군과 절영도(지금의 부산 영도) 앞바다에서 싸웠는데, 우리 전선 다섯 척이 표류하여 두모포에 닿았고, 또 일곱 척은 간 곳이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곧 종사관 황여일이 군사 점호하는 곳으로 달려가서 황 종사관과 상의했다. **** 1592년 7월 7일, 드디어 왜적이 정담의 군사를 공격해왔습니다. 정담은 왜적을 맞아 싸우며 붉은 기 아래에 백마를 타고 있던 적장을 화살로 쏴 죽이는 등 수많은 적을 쏘고 또 베었습니다. 그러나 이튿날까지 이어진 전투에서 계속 밀려오는 왜적과 싸우다 싸우다 지쳐 그만 적에게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부하들은 포위망을 뚫고 달아날 것을 권했지만 정담은, “내가 도망치면 적의 기세가 오를 것 아닌가.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라고 말한 후 끝까지 싸우다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했습니다. 종사관 이봉을 비롯하여 휘하의 군사들 또한 단 한 명도 도망치지 않고 정담과 함께 싸우다 전사했다고 합니다. 왜적은 뻔한 열세에도 도망치지 않은 정담과, 정담을 따라 장렬히 전사한 조선군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조선군 전사자 시신을 모아 무덤을 만들고 ‘조조선국충간의담(吊朝鮮國忠肝義膽: 조의를 표함, 조선국의 충성스러운 마음과 의로운 담력)’이라고 적은 표목을 세웠습니다. 전북 완주군(完州郡) 소양면(所陽面)에 있는 「웅치전적지(熊峙戰蹟地)」는 1976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됐고, 1979년 정부지원으로 「웅치전적비」가 세워졌습니다. 왜적은 정담의 군사만 상대하고서도 벌써 지쳐버렸고, 그래서 웅치 위쪽에 진을 친 황박, 이복남, 황진, 변응정 등의 군사와 싸워서 패했습니다. 결국 왜적은 웅치를 넘지 못하고 후퇴하여 이치(梨峙: 대둔산 남쪽의 일명 배티재)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습니다. 권율 장군은 자신의 명을 성실히 수행하다 전사한 정담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정담의 생질인 황여일을 자신의 종사관으로 삼았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______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은 없지만 자료조사를 하며 알게 된 역사인물들을 [배워서 남주자] 프로젝트의 하나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실수가 많고 오류도 있지만 최대한 기록을 충실히 반영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역사는 그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당사자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저의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주배TV 블로그: https://joobeatv.blogsp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