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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os #InnerMongolia #오르도스여행 #GenghisKhanTomb #칭기스칸릉 #오르도스청동기유물 #인컨타라사막 #쑤붜칸초원 #세계최대분수쇼 #IncontaraDesert #XuwenkanGrassland #InnerMongolianGrasslands #CamelRides #궁금한데가보자 [네이멍구자치구 內蒙古自治區] 중국의 행정단위는 섬서성(陝西省), 광동성(廣東省) 등의 23개 성(省)과 내몽골자치구(內蒙古自治區) 등 5개 자치구(自治區), 북경, 천진(天津), 상해(上海 2), 중경(重慶)의 4개 직할시(直轄市), 홍콩, 마카오의 2개 특별행정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중국 영토의 북쪽 국경지대에 위치하여 몽골,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는 네이멍구자치구는 면적 1,183,000km²로 콜롬비아 보다도 조금 큰 편이며 국경선은 무려 4,220㎞로 몽골과의 접경선이 3,192㎞, 러시아와는 약 1,000㎞입니다. 몽골 지역은 고비 사막을 기준으로 남몽골과 북몽골로 나뉘는데요, 17세기 부터 청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청나라 중기까지의 수도였던 베이징을 기준으로 고비사막보다 바깥에 있는 몽골은 '와이(外)멍구' 고비 사막보다 안쪽에 있는 몽골은 '네이(内)멍구'로 구분지었습니다. 이후 1911년 신해혁명을 계기로 중화민국이 건국되는 과정에서 이 지역도 홀로서기를 시도하지만,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반쪽 독립’에 그치고 맙니다. 우리가 흔히 '몽골'이라 부르는 외몽골에 들어선 '몽골인민공화국'은 1924년 당시에 세계에서 두번째로 건국된 사회주의 국가였습니다. 반면에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중국을 도와 항일투쟁에 참여했던 '내몽골(네이멍구)'은 그 공을 인정받아 1947년 5월 1일 자치구로 승격되면서 중국에 포함되었습니다. 네이멍구자치구는 또 다른 자치구인 신장위구르, 서장, 광서장족, 영하회족 자치구에 비해 석탄과 가스 등 자원이 풍부하고 농산물 생산도 많아 가장 국민소득이 높은 지역이기도 한데요, 인구의 80%는 한족으로, 몽골어 보다는 중국어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내몽골에 사는 몽골족은 중국 내 소수민족이므로 "몽골인"이 아닌 "몽골족"으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키릴문자를 쓰는 몽골국의 몽골인과는 달리 내몽골에서는 여전히 몽골문자를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몽골국 전체 인구수 300만 보다 내몽골의 몽골족 인구수(400만)가 훨씬 많은 상황입니다. 어얼둬쓰(몽골어: ᠣᠷᠳᠤᠰ ᠬᠣᠲᠠ, Ordos qota 오르도스, 중국어: 鄂尔多斯, 병음: È'ěrduōsī, 중국조선어: 오르도스)는 내몽골 자치구의 남서쪽에 위치한 지급시로 이 오르도스시는 2001년 2월 26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지급시는 한국의 시, 군 여러 개를 통합한 정도의 규모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곳은 몽골고원으로 통하는 교통상의 요충지로 고원과 사막, 구릉과 평원으로 이루어진 지형입니다. 오르도스 문화(Ordos culture)는 BC 6세기 ~ BC 2세기에 걸쳐 내몽골의 오르도스고원에서 번성한 고고학적 문화입니다. 청동기에서 초기 철기 시대에 해당하는 스키타이-시베리아 양식의 유물들이 다수 발견되었는데요, 이는 인도유럽계 혹은 다른 시베리아계의 유라시아 유목민족의 영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르도스 지역은 이후 흉노의 영향권에 들어갔으나 한ㆍ흉노 전쟁 이후 한나라에 점령되었습니다. 오르도스(Ordos)는 중국 북부 해발 1000~1600m에 위치한 산지 퇴적 분지로, 대부분의 땅이 북쪽으로 크게 구부러져 흐르는 황하(黃河)의 오르도스 만곡(Ordos Loop)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타림분지(Tarim Basin) 다음으로 두번째로 큰 분지입니다. Ordos는 튀르크어의 ordu(천막, 궁전 등)에서 유래한 것으로, 오르도스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몽골 부족의 이름이기도 하였기에 부족명에서 지명을 따온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오르도스 고원 서북부는 전통적으로 반농반목 지역이자 서역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의 역활을 하였습니다. 유목과 농경의 경계지이자 황하 문명과 인접했기 때문에 이 지역을 차지한 민족들이 고대 동아시아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원후 1, 2세기에 자리잡은 흉노인데요, 사카족이 흉노에게 전수해준 흔적으로 남았다는 오르도스 청동기 유물들이 유명합니다. 오랜 기간 동안 이 지역은 기마 유목민들의 터전이었으며, 동시에 한족들과는 잦은 다툼이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흉노 이후에는 서역 지방으로부터 돌궐과 위구르가 나타나면서 당나라 수도를 유린하여 당나라가 멸망 직전까지 수세에 몰리기도 하였으며, 송대에는 서하가 흥기하면서 이 지역에서부터 중국을 공략하고 심하게 압박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원, 명, 청을 거치면서 1862년~1877년에 이슬람교도인 둥간족(후이족)이 산시성과 간쑤성, 닝샤성, 신장성에서 일으킨 봉기였던 '둥간혁명'의 실패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러시아로 떠나가면서 한 때 비워진 공간으로 남겨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석탄과 가스 등 천연자원과 농산물, 축산물, 캐시미어 등이 풍부한데 비해 인구는 200만 밖에 되지않아 1인당 GNP가 중국에서 가장 상위에 있는 지역입니다. 평균 소유 아파트 크기도 100평이 넘는다고 하니 사막과 초원만으로 상상해 보던 오르도스와는 너무나 다른 신도시의 모습에 자못 놀라움이 컸습니다. 물론 도심을 벗어나면 보이는게 초원이요, 사막인 것은 맞습니다만 급격히 변화하는 내몽골의 현대화가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반면 예로부터 하투(河套) 또는 하남(河南)이라고 불렸다는 오르도스 사막은 급속히 더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그나마 사막에 꾸준히 나무심기운동을 실행하고 있음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특히 중국의 모든 대학생들에게는 10회의 자원봉사가 의무로 주어지는데 이를 대신하여 나무 열그루를 사막에 심을 수 있게 한 정책도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정작 황사의 근원지인 내몽골의 하늘은 푸르고 공기 또한 신선하기만 한데 봄날의 심각한 한국상황을 생각하니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올 봄에 처음 도입되었다는 크리스탈 사막호텔입니다. 이 호텔의 소유자는 이십년 넘게 이 지역에 나무를 꾸준히 심으며 관리한 후에야 허가를 받아 운영하게 되었다는데요, 현재는 한국인들만이 공식적으로 허용된 단체관광객입니다. 기후상 늦봄에서 초가을 까지 인천공항에서 오르도스시 2시간 반 직항으로 운행 중으로, 2년 시행 한 후에 지속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분수쇼입니다. 가운데쯤 자리를 잡았음에도 좌우를 다 담기가 쉽지 않음에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 유명한 두바이의 분수쇼도 대단한 규모이긴 했습니다만 크기로는 오르도스가 앞서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스펙타클 자체인 분수대를 인구 이백 만의 도시에 설치한 것도 참으로 놀라운 발상입니다. 고층 빌딩을 배경삼아 거대 공원과 함께 조성하니 마치 오르도스시가 천 만 도시 이상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외국인들을 많이 볼 수는 없었지만 중국 전역에서 방문한 내국인들의 인파가 대단하여 내몽골자치구가 천연자원과 함께 관광으로 비약적인 도약을 하고 있음을 실감 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