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중국 숭산, 구련산, 왕망령,만선산,곽량촌, 운대산3. 2011. 8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Если кнопки скачивания не
загрузились
НАЖМИТЕ ЗДЕСЬ или обновите страницу
Если возникают проблемы со скачиванием видео, пожалуйста напишите в поддержку по адресу внизу
страницы.
Спасибо з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ервиса ClipSaver.ru
8월13일(토 ) 왕망령- 만선산(단분구, 백룡담폭포, 흑룡담폭포, 일월성석) -곽량촌 - 신향 8시 호텔을 나와 버스로 이동하여 왕망령에 도착하니 8시 30분이었다. 아직 운무가 많아 봉우리들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제 보았던 귀봉, 낙타봉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오늘은 왕망령 정상의 산책로를 따라 석고천서(石庫天書), 무운애(抚云崖), 방지정(方知亭), 관일대(观日台), 소태항(小太行) 등을 구경하고 하산 길로 접어들어 무금대(抚琴台)와 봉림(峰林)을 지나 왕망령 북대문 매표소를 통과하여 남마암(南马庵) 마을까지 하산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단분구(丹分沟) 일대를 구경하고 곽량촌(郭亮村)을 찾는 일정이다. 왕망령 표시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산책로처럼 생긴 능선 길로 접어들자 먼저 석고천서가 보이더니 바로 천수병서(天授兵書)라 적힌 안내문이 보인다. 수평으로 발달한 석회암의 절리가 마치 책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기에 이름 붙여진 것이다. 기대보다는 초라했지만 발길을 돌려 신선이 우산을 들고 있는 형상을 한 바위인 선옹장산(仙翁扙傘)에 도착하여 뒤로 보이는 구련산의 신비로운 봉우리들을 감상하였다. 잠시 숨을 고르고 발길을 옮겨 구름을 어루만지는 언덕이라는 무운애(抚云崖) 표지석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협곡 사이로 돌출한 능선 위로 좁은 통로가 보이고 끝부분에는 마치 신선이 바둑이라도 두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까지 달려가고 싶었지만 계곡 밑으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하는 부담 때문에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모퉁이를 돌자 유수도(劉秀跳)를 소개하는 팻말이 보였다. 맞은편에는 두 봉우리 사이로 긴 협곡이 있었는데 이곳이 유수가 왕망에게 쫒길 때 정신력으로 이 협곡을 뛰어 넘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유수가 만약 이 협곡을 넘지 못하였다면 역사가 어떻게 되었을까. 유수의 발 한걸음이 역사를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9시 10분경 무운애 전망대에 도착하여 무운애를 배경으로 하여 펼쳐진 멋진 광경들은 카메라에 담고서 바로 부근에 있는 방지정(方知亭)을 찾았다. 왕망령에 와서야 비로소 세상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到了王莽嶺 方知世上美)는 의미를 가진 이곳은 2004년 4월 조훈현 9단과 중국의 진조덕이 바둑을 둔 곳으로도 유명하며 정자 안에 있는 돌 탁자에는 기보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당시의 기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서자 돌계단이 넓게 나타나더니 그 아래로 산화대(散花台) 표지석이 눈에 띤다. 봉우리가 꽃이 활짝 핀 형상을 하였기에 이름 붙어진 것 같은데 엷은 구름이 그 형상을 숨기고 앙탈을 부리고 있었다. 옆에 있는 태항운정(太行雲頂)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도, 바로 위에 위치한 관일대(观日台)에서도 신비로운 봉우리들을 숨기고 내보이지 않고 있었다. 관일대를 지나자 소태항(小太行)이라는 표지석이 보이고 그 뒤로는 조그마한 석회암 바위들이 마치 태항산의 축소판이라도 되는 듯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옆에는 조그마한 휴게소가 있었는데 한글로 커피 한 잔에 천원이라고 쓴 안내문이 있었기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숨을 고른다. 9시 25분 휴게소를 출발하자 갈림길이 나오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려 무금대(抚琴台) 전망대로 향했다. 잠시 발길을 옮겼는데 경관이 뛰어난 곳이 나타났다. 현지 가이드가 옆에 없어 처음에는 어디인지 몰랐지만 나중에야 경치가 뛰어난 이곳이 무금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행들이 바삐 발길을 옮기기에 전망대까지 가서 구경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완만한 경사 길을 내려오다 잠시 언덕길을 오르자 멋진 봉우리들이 그 위용을 자랑하는 봉림(峰林)에 도착할 수 있었다. 9시 50분이었다. 이른 아침이지만 옅은 구름들로 덮여진 신비로운 봉우리들은 마치 장가계의 풍경을 축소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쉬었다가 약 10분쯤 걸어 내려오니 왕망령 북대문 매표소가 나왔다. 북대문을 빠져나오면서 산서성에서 다시 하남성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제부터 2700여개의 돌계단을 내려가는 만선산 코스에 접어들게 된다. 옛날에 선녀가 이곳에 놀려왔다가 효심이 깊은 농부에게 반해 결혼하여 아들까지 두었으나 옥황상제는 하늘의 법도를 지키지 않은 선녀를 지하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 후 아들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무술을 연마하여 하늘나라로 쳐들어가자 옥황상제는 아들을 물리치라고 일 만 명의 병사들을 보냈으나 아들의 효심을 이해한 병사들은 그의 어머니를 같이 구출해 이승으로 내려와 함께 살다가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 만개의 봉우리가 되었기에 만선산(萬仙山)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계단을 내려와 10시 40분 남마암(南马庵) 마을에 도착하여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11시 30분 버스를 타고 차량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시멘트 포장길을 약 20분을 달려 단분(丹分)에 도착 하였다. 약 10분 정도 걸어 단분구(丹分沟) 골짜기 아래로 들어서자 아담하고도 우아한 계곡 사이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은 속세의 모든 고민을 씻어줄 것만 같았다. 계곡을 따라 10분 걸어가니 물소리가 들리면서 백룡담(白龍潭 )폭포를 소개하는 팻말이 보이더니 그 아래로 떨어지는 백룡 폭포의 우아한 모습이 보인다. 미끄러워 아주 조심스럽게 폭포를 카메라에 담고 바로 옆에 뚫여 있는 인공 동굴을 지나자 절벽 아래로 웅장한 흑룡담(黑龍潭) 폭포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협곡 중간 높이에서 철제 계단을 따라 한참 내려와 계곡 아래로 들어서서 먼저 백룡담 폭포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협곡 중간쯤에서 떨어지는 백룡담 폭포의 뒷모습과 달리 앞에서 바라본 백룡담 폭포는 이단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조금 더 규모가 큰 흑룡담 폭포가 많은 물을 내뱉고 있었다. 폭포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서로 찍어주면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발길을 돌려 약 20분을 협곡을 따라 완만한 길을 내려오니 용담구(龙潭沟)가 있었고 그 옆 가게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마치 주말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찾은 것이다. 차량이 너무 많아 남평(南坪) 마을까지 약 10분쯤 걸어서 가니 주차장이 나왔고 옆 정자 밑에는 일월성석(日月星石)이 보였다. 해와 달, 별모양의 형태를 가진 바위 주변에는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좁은 길에 차량이 너무 많아 주차장에서 버스가 후진하여 식당까지 가는 진풍경을 구경하였다. 1시 20분 경 남평 마을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2시 20분 만선산 전용 승합 버스를 타고 곽량촌(郭亮村)으로 출발하였다. 넓은 돌로 만들어진 도로를 따라 갈지자로 급경사를 오르는가 싶더니 좁은 주차장이 나오고 그 다음부터는 절벽을 깎아 만든 터널 도로가 나타났다. 버스를 타고 오르는 절벽장랑(絶壁長廊)의 괘벽공로(掛壁公路)는 생각보다는 넓고 길었다. 이 곽량 터널은 1972년부터 마을 주민 13명이 5년간 망치와 정으로 쪼아 만든 동굴 길로 높이 5m, 폭 4m 정도이고 길이가 1.25km나 되는 도로인 것이다. 2시 40분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 받고 있는 곽량촌에 도착하였다. 넓은 주차장에는 수많은 차량들과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곽량촌은 하남(河南)성 신향(新鄕)시 휘(輝)현에 속하는 만선산 절벽 위에 형성된 자연 부락이다. 현재 300여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왕망과 전투를 벌이던 곽량이 지략으로 이곳에서 산서성으로 무사히 빠져나갔기에 후세 사람들이 곽량의 용기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마을 이름에 붙인 것이다. 먼저 홍석교(紅石橋)를 지나 계곡 건너편으로 건너와 잠시 걸어가니 계곡 아래로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어 쳐다보니 천지(天池)였다. 아마 협곡 높은 곳에 있어 이름 붙여진 것 같았지만 규모는 조그마한 인공 저수지였다. 곧장 걸어가니 왼쪽으로 계곡 맞은편에 괘벽공로가 눈에 들어온다.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일 정도로 아득하게 보인다. 협곡 절벽 위 해발 1300m 지점에 위치한 가옥들을 가르키는 애상인가(崖上人家)에 도착하니 오후 3시 정도였다. 명말청초(明末淸初)부터 살기 시작했다는 이곳의 가옥들은 흙벽돌 담과 조그마한 기와를 가진 가옥으로 대문 앞에서는 각종 물건들을 파는 노인네들과 카드놀이 하면서 한가롭게 지내는 사람들이 여유 있어 보였다. 애상인가를 지나자 왼쪽에 홍암절벽 대협곡을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든 전망대인 관경대(觀景臺)가 보인다. 맞은편 절벽 중간쯤에 수평으로 관통한 곽량 괘벽공로를 세계 8대 불가사의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중간 중간에 창문처럼 뚫린 곳에 지나가는 차량의 모습이 순간순간 나타나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계곡 가장 안쪽에는 곽량촌에서 천지를 거쳐 흘러온 물들이 만들어 내는 폭포가 있었는데 물이 떨어지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다시 발길을 돌려 애상인가를 거쳐 천지를 만든 제방을 통과하여 절벽장랑을 따라 만들어진 괘벽공로를 걸어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거칠게 만들어진 도로는 버스를 타고 올라올 때보다 훨씬 실감이 났다. 옛날에는 곽량촌에서 외부와 통하는 길은 오직 협곡과 절벽 위를 이어주는 '천제(天梯)' 뿐이었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오르내리는 것도 너무 위험했다. 그래서 5년 동안 사람의 힘으로만 만든 이 곽량 터널은 통풍과 채광 역할을 하는 '천창(天窓)'이라 불리는 크고 작은 구멍이 35개가 된다고 하는데, 지금 걸어가면서 이곳을 통해 협곡 반대편 정상에 있는 애상인가를 볼 수 있는 좋은 전망대 역할도 해주고 있었다. 또한 공사 중에 캐낸 돌을 밖으로 내놓는 배출구 역할까지 해주었기에 절벽 밑으로는 많은 돌들이 보였다. 약 20분 정도 걸어 곽량 터널을 지나면서 바라본 협곡 주변의 경치를 3일 동안 계속된 운무로 카메라에 선명하게 담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갈지자의 도로를 따라 걷지 않고 완사면을 가로질러 버스가 기다리는 삼거리 갈림길에 도착하니 3시 50분이었다. 옥수수 밭이 한없이 펼쳐진 평야를 달려 신향의 호텔에 도착하니 6시 10분이었다. 저녁을 먹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 야시장 구경에 나셨다. 습도가 높아 굉장히 더운 날씨라 걷기가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