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박카스_동아제약그룹]국민피로회복제 박카스를 빅히트 제품으로 만들어 박카스 신화를 만든 동아그룹의 후계구도 막전막후를 살펴보자!!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скачивания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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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제약그룹 후계구도 막전막후 1, 박카스를 출시한 의사출신 2세 강신호 회장의 성공 스토리 2, 차남과 치열한 경영권 다툼으로 재벌가의 이면사 노출 3, 황혼 이혼 등 복잡한 가정사로 이미지 먹칠 4, 교도소 생활하고 나온 강정석 회장이 그리는 동아제약의 미래는? #박카스 #강신호 #재벌 안녕하세요 홍성추입니다. 지난번에 얘기했듯이 우리나라 제약회사의 역사는 깊고 넓어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동아제약 그룹 역시 올해로 창립 91년이나 되는 오래된 회사입니다. 지금은 3세 경영인이 총수로 있으나 얼마 전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와 회사의 공식 직함은 없는 상태입니다. 동아제약은 우리나라 재벌의 온갖 행태를 다 갖춘 기업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한동안 제약업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가졌지만 식구들끼리 골육상쟁을 벌였으며 전임 회장은 부인과 황혼 이혼을 하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동아제약 그룹은 재벌가의 이면을 고스란히 노출했다고 하겠습니다. 동아제약의 탄생은 1932년으로 올라갑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창업주인 강중희 회장이 서울 종로구 중화동에 의약품 및 위생재료 도매업인 ‘강중희 상점’을 세운 것이 효시입니다. 동아제약이라는 이름은 해방 후인 1949년 만들어집니다. 강 창업 회장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현대식 공장과 사무실을 짓고 페니실린 등의 항생제를 생산하며 본격적인 제약회사의 틀을 갖추게 됩니다. 6·25전쟁으로 제약시설이 모두 파괴됐으나 동아제약은 오히려 기회가 찾아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이는 2세 경영인인 강신호 현 명예 회장입니다. 강신호 회장은 서울대 의대를 나온 의사 출신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제약회사 재건을 위해 건네준 자금을 들고 독일로 가서 제약시설을 둘러보다가 그대로 눌러앉아 공부를 더 하고 돌아옵니다. 1959년 귀국한 그는 아버지 밑에서 동아제약 상무로 입사해 신제품 개발에 나섭니다. 1961년 그 유명한 박카스는 강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나옵니다. 이 박카스가 나중에 불멸의 히트작으로 남게 되고 동아제약을 명실상부한 제약업계 1위로 등극시키는 효자 상품이 됩니다. ---ㅁ 강 회장은 동아제약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판피린’이나 ‘오란씨’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전설 같은 얘기입니다. 강 회장은 한 때 전국경제인연합회장직을 맡아 우리나라 경제계를 대표하는 인사로 자리메김하기도 합니다. 동아제약과 강 회장이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집안의 분위기는 평온하지 못했습니다. 강 회장은 2명의 부인 사이에 4남 4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남과 차남은 첫째 부인 소생이고 3남과 4남은 둘째 부인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강 회장은 2006년 첫 부인과 이혼하고 사실혼 관계인 두 번째 부인과 재혼하게 됩니다. 강 회장의 이혼 소식이 알려지자 재계에선 모두 의아해했습니다. 비슷한 연배의 재벌 총수들은 사실혼 관계에 있어도 본부인과 이혼은 하지 않는데 나이 80이 다 돼 이혼했으니 그런 얘기가 나온 것입니다. 이때는 동아제약 후계 자리를 놓고 2남인 강문석 당시 동아제약 사장과 부친인 강신호 회장과 치열한 내부 투쟁을 벌일 때였습니다. 강신호 회장은 일찍부터 둘째 아들인 강문석 전 대표를 후계자로 점지해 경영수업을 시켰습니다. 첫 부인한테서 난 둘째 강문석 씨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나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MBA를 나올 정도로 공부도 잘했습니다. 첫째인 강의석 씨는 건강 문제로 처음부터 기업 경영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1990년 동아제약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부사장 2003년엔 대표이사 사장에 오를 정도로 부친의 신임이 두터웠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아제약의 다음 후계자로 강문석 대표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강문석 대표는 대표이사를 맡자마자 회사의 부실 부문을 정리하고 전문 의약품 영업을 강화하는 등 회사의 체질 바꾸기에 전념했습니다. 당연히 부친인 강신호 회장 사람들로부터 볼멘소리가 나왔습니다. 엎친 데 덥친격으로 주력 상품인 박카스의 판매마저 부진했습니다. 비슷한 강장제인 ‘비타500’이 돌풍을 일으키며 박카스의 아성을 위협한 것입니다. 강신호 회장이 가만있을 리 없었습니다. 강 회장은 강문석 대표를 동아제약 대표이사에서 전격적으로 해임합니다. 그러면서 주류 수입 판매회사인 수석 무역만 맡으라고 했습니다. 강문석 대표는 눈물을 흘리며 동아제약의 대표이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이후 강 대표는 부친의 마음을 돌리려 전국의 영업장을 돌아다니며 절치부심했지만 한번 멀어진 부친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강신호 회장은 둘째 아들 대신 4남인 강정석 전무를 동아제약 영업본부장으로 발탁해 후계 수업을 시킵니다. 강정석 씨는 둘째 부인한테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둘째 부인한테 그 형도 있으나 건강에 문제가 있어 기업 경영에는 막내인 강정석 씨만 참여했습니다. 영업본부에서 주로 활동했던 강정석 씨는 그 후 부사장과 부회장 회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동아제약 3대 후계자로 낙점됩니다. 이 과정을 지켜본 강문석 대표가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강문석 대표는 동아제약 지분을 매입하며 반격에 나섭니다. 한때 15%를 넘는 지분을 소유해 이복동생인 강정석 대표를 압박합니다. 주총 대결을 앞두고 각자 의견문을 내며 마치 총선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도는 부친의 강력한 만류와 회사 임직원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합니다. 이후 강정석 대표는 이사회를 장악하고 의결권을 갖는 주식을 발행하는 등 차분히 경영권 승계 작업을 하게 됩니다. 회사 이름도 동아제약을 동아쏘시오로 바꾸고 동아쏘시오홀딩스라는 지주 회사를 만들어 분리합니다. 2013년엔 강신호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주식 전략을 4남인 강정석 대표에게 물려 줍니다. 이로써 10여 년에 걸친 자식 간 형제간 골육상쟁은 마무리됩니다. 이후 강문석 대표는 수석 무역을 통해 재기를 노렸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 제약을 인수해 다시 제약업계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불발되고 오히려 자신이 갖고 있던 수석 무역과 디지털오션이 자본 장식상태에 빠지는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 회사자금 배임 및 횡령 혐의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는 등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살던 한남동 자택도 압류돼 공매에 넘어가고 말았고 그야말로 몰락한 재벌가 후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그는 현재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한국에 오가며 무역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 친했던 재벌가 친구들에게 손을 벌리며 사업을 같이하자고 제안했지만 대부분 거절하고 말았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재벌가 3세로 태어나 좋은 학벌과 미국 유학 등으로 엘리트 코스만 걷던 그가 부친과 소원해지면서 몰락한 재벌가 황태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반면 중앙대 철학과와 성균관대 약학 대학원을 나온 강정석 사장은 부친의 후광을 업고 동아제약 그룹의 회장직을 맡으며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이 닥쳤습니다. 한번은 서울 청담동의 한 병원 주차관리실에서 노트북을 부수며 난동을 부려 구설에 오른 적도 있습니다. 재벌가의 갑질 논란으로 이어지며 한동안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래도 부친으로부터의 신임이 워낙 두터워 회장으로 승진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2017년엔 드디어 동아쏘시오그룹 회장직에 올라 명실상부한 황제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그해 회사자금 횡령과 의약품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전격 구속되고 맙니다. 만약 대표이사 회장에 오르지 않았다면 자신의 구속은 면했을 것이라고 주변에선 평가하고 있습니다. 강정석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업무상 횡령 약사법 위반 조세 포탈 등입니다. 후일담이지만 회장직에 오르지 않고 있었으면 부친인 강신호 회장이 짊어졌을 죄입니다. 이후 그는 꼬박 2년 6개월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출소합니다. 출소한 뒤에는 회사의 공식 직함을 갖지 않고 대주주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제약회사인 동아제약의 성장 과정과 골육상쟁을 살펴봤습니다. 3세인 강정석 회장이 왕좌를 차지하게 된 배경에는 이복형제간 치열한 충성 경쟁과 부자간 갈등도 많았습니다. 90을 넘긴 강신호 명예회장은 얼마전 까지 해도 왕성한 활동을 하다 최근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강장제인 박카스를 만들어 국내 제약업계를 평정했던 강신호 회장도 가정 문제만은 순탄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름까지 바꾸면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동아제약의 향후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현재 아무 직책도 맡고 있지 않은 강정석 회장의 경영 복귀 시점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강 회장이 경영 복귀를 하게 되면 다시 한번 조명해 보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