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안록산의 난 그리고 상경천도 |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 발해편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скачивания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Если кнопки скачивания не
загрузились
НАЖМИТЕ ЗДЕСЬ или обновите страницу
Если возникают проблемы со скачиванием, пожалуйста напишите в поддержку по адресу внизу
страницы.
Спасибо з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ервиса ClipSaver.ru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 발해편 #0055] 안록산의 난 그리고 상경천도 | KBS 라디오 20051106 방송 방송일자 2005-11-06 진행자 김연갑 연출자 이미희 작가 이상락 출연자 곽윤상,박영재,이은정,방우호,김대중,이광수,장원간,심승한,손정성,이지환,차진욱,최창석,서지연 음악 박복규 효과 강성범 신현파 장찬희 기술 김남희 초록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도성을 옮긴다는 것, 천도를 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발해는 229년의 역사에서 다섯 번씩이나 수도를 옮긴다. 발해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가졌던 고구려 백제 신라는 물론이고 고려나 조선까지를 통틀어 비교해 보더라도 다섯 번에 걸친 발해의 천도는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그 다섯 번의 천도 중 세 번의 천도가 바로 발해의 제3대 임금이었던 문왕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 천도에 따른 문제점은 없었는지 의도는 무엇인지 간략하게 알아본다. 인서트 리스트 1 고왕 대조영이 건국기틀을 다졌던 동모산을 진국이라 선포를 했던 것도 사실 진국의 기본적인 세력이 동모산을 중심으로 어느정도 형성돼 있으리라......김은국 고구려연구재단 발해연구팀 연구위원 02:13 02:53 2 중경 현덕부라고 하는 지역이 발해시대 때부터 굉장히 특산물이 풍부하게 나오고 있다, 중경 현덕부에 천도를 하게 되는 계기는 무왕 때에 대외 팽창정책을 추구하면서 중경으로 옮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김은국 고구려연구재단 발해연구팀 연구위원 05:26 06:07 3 무왕 때 못 했던 말갈 통제를 문왕때 할 수 있었다. 741년에 철리말갈이 발해에 합병이 되고 발해가 그곳을 통치를 한다. 문왕등극 4년뒤인 741년부터 한 5년 정도 사이에 말갈의 복속을 완성하고 여기다 부를 설치한다....김은국 고구려연구재단 발해연구팀 연구위원 08:19 09:04 4 일본으로 가는 발해사신에게 권한을 주어 철리의 산물같은 건 일본에 팔기도 하고 일본의 물품을 받아오기도 해서 철리말갈 철리부족 내에서도 자체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그 지역의 말갈민을 최대한 활용했다....김은국 고구려연구재단 발해연구팀 연구위원 11:41 12:20 5 발해사신들은 무역만을 위해 일본열도에 갔는데 발해사신을 비롯하여, 수령,746년 같은 경우는 민간상인만 1100명이 간적이 있는데 무역품목들은 초피 호피 웅피 그 외에도 여러 가죽과 꿀 인삼 철 이런 것들을 배에 실어서 일본열도로 수출했다....윤명철 동국대 교수 14:44 15:35 6 겨울 동해바다의 파도는 보통 3~4m로 높고 원양항해를 해야되고 천문항법을 해야 되니까 항해술이 상당히 어렵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발해는 동해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넘나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윤명철 동국대 교수 17:01 17:51 7 발해인들의 무역은 대규모의 선단과 사람들이 일본열도에 도착하여, 일부는 일본정부가 지어준 객관, 편소라 불리는 건물에 머무르면서 장사를 하거나 일부는 일본의 수도인 평성교까지 와서 무역을 하여 엄청난 흑자를 냈다.....윤명철 동국대 교수 19:33 20:15 8 발해인들은 객관에 머물면서 발해귀족 및 일본사람과 교류를 한다. 나가야라는 유명한 왕족의 문서, 나무판자가 있는데 여기에 적혀있는 내용이 "교역, 발해"로 나가야 왕족들과 발해사신들이 교역을 했던걸 보여준다......김은국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21:07 21:51 9 발해 문왕은 안록산이 일어났을 때 필요한 물자, 송화강지역 설빈부의 명마가 아주 뛰어난데 그 말을 수입한다. 그러나 당나라에서 군대를 달라 같이 안록산을 진압하자 그런데 거기까지는 안한다. 실리를 추구하는 거죠...김은국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29:47 30:28 10 당나라 안산의 난이 755년 11월달 쯤이라고 그러는데 그로부터 10여년 가까이 난리로 인한 정세불안이 발해의 천도를 야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발해는 안사의 난을 계기로 상경으로 천도를 했다고 보는 것이 요즘 견해다...김은국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34:04 34:51 11 상경지역은 주변에 산악지역이 많아서 안록산의 난을 비롯한 외침을 막을수있는 지형적인 위치에 해당한다. 서쪽으로부터의 침공에 대비한 방어에 유리하며 비옥한 평야의 발달로 농업이 발달하게 되는 연유도 현무암 지대이기 때문이다....김은국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36:52 37:41 12 8세기 중반 이후에 송화강 하류를 중심으로 한 말갈부족들을 복속시켜 주변 배후의 위협적인 요소들을 배제시켰다. 여기서 발해는 상경 천도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김은국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38:09 38:45 13 민간사회에서 쭉 퍼져나오는 설화문학, 설화도 거기서 의미하는게 무엇인가를 솎아낸다면 지금처럼 사료가 있다 없다 고민하는데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김은국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45:06 45:46 14 발해는 산성과 평지성을 오가면서 입지에 맞도록 활용했다. 우리가 너무 도성 중심으로 보니까 산성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있는데 평지성 못지않게 산 지형에 맞게 다양한 산성을 만들었다.....김은국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46:28 47:16 15 57년 재임기간 중 연호를 한번 고친 것은 혁신정치를 취하는 그런 과정이었지 않나, 여기서 보력이라는 걸로 봐가지곤 불교적인 종교적 색깔을 강하게 띠는 어떤 변화의 시기가 아니었나 생각이 된다....한규철 경성대교수 49:55 50:33 16 문왕 대흠무가 연호를 보력으로 고치게 된 배경은 상경성 천도를 위한 대규모 토목공사로 인한 민심이반을 추스리기 위한 방편이자 강력한 황제개념을 통한 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함이다...김은국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52:03 5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