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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가 "요즘 개와 고양이는 옛날과 다릅니다." 최근 동물 행동학계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요즘 반려동물들은 유전적으로 사람에게 훨씬 더 친화적이고 온순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위 '개냥이'가 늘어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동물이 변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인간은 동물을 부리는 '주인'이나 '포식자'였지만, 지금은 그들을 침대에서 함께 잠드는 '가족'으로 대합니다.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완전한 안전감'을 느끼자, 동물들은 날카로운 발톱과 경계심을 스스로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이 본능을 바꾼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 안에도 웅크린 야생 동물이 있습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뾰족한 가시를 세우고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를 무장해제 시키는 힘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20장에는 아주 대조적인 두 장면이 겹쳐 있습니다. 한쪽에는 소바더, 아리스다고, 가이오 같은 당시 지중해 세계를 이끄는 위대한 교회 리더들의 명단이 화려하게 등장합니다. 소위 'VIP 명단'입니다. 그런데 시선을 돌리면, 3층 창가에 위태롭게 걸터앉아 꾸벅꾸벅 조는 한 청년, '유두고'가 있습니다. 고단한 삶에 지쳐 말씀을 듣다가 그만 3층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 그의 추락은 거룩한 예배를 망친 '사고'였고,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었습니다.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는 세상이라면 "중요한 날에 분위기를 망쳤다"며 혀를 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순간, 바울의 행동은 충격적입니다. 그는 설교를 멈추고 지체 없이 '내려갑니다'. 화려한 조명이 있는 3층 강단에서, 캄캄하고 차가운 흙바닥으로, 이미 숨이 끊어진 시체 위로 뛰어 내려갑니다. 그리고 그를 품에 안습니다. "괜찮다, 생명이 아직 그에게 있다." 이 장면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진실은 분명합니다. 교회의 위대함은 화려한 리더들의 명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가에서 떨어진 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태도에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보여준 이 '내려감'은 곧,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우리에게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이었습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에는 이런 명대사가 나옵니다. "당신은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person." 우리가 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질까요? 누군가 나를 정죄하지 않고, 나의 실패와 연약함까지 있는 그대로 안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징계 대신 당신의 체온으로 우리를 덮어주셨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곤두세웠던 가시를 내리고 "나도 주님처럼 살고 싶다"는 거룩한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삶의 무게에 지쳐 창가에 앉아 계십니까? 혹은 실수하여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느끼십니까? 두려워 마십시오. 주님은 그런 여러분을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이미 여러분이 있는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을 입은 우리가 내려갈 차례입니다. 화려한 3층에 머물지 말고, 누군가 울고 있는 바닥으로 내려가 그들을 안아주십시다. 그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다시 한번 생명의 온기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