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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 전투는 1942년 8월부터 1943년 2월 2일까지 소련의 스탈린그라드 일대에서 벌어진 소련군과 독일 국방군 간의 대규모 혈전이었다. 독소전쟁에서 가장 거대했던 전투들 중 하나로, 쿠르스크 전투가 규모면에서 세계 최대의 전투였다면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상자를 낸 참혹하고 끔찍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추축국은 85만 명, 그 중 독일군은 40만 명 이상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는데, 이는 독일군이 유럽의 서부전선에서 잃은 모든 군인들의 수와 비슷했다. 반면 소련군 측 사상자는 100만 명이 넘었던 것으로 집계된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투들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본래 이 전투가 일어났던 스탈린그라드는 차리친이라고 불리는 지역이었으며, 러시아 내전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이 백군의 공세를 결정적으로 막아내고 집권 이후 산업화를 집중적으로 추진하며 자신의 이름까지 붙인 그야말로 스탈린에게는 매우 상징적인 도시였다. 한편 나치 독일은 모스크바 공방전에서의 패배로 바르바로사 작전이 중단되었으며 중부 집단군이 심각한 손실을 입고 말았다. 이로 인해 독일은 모스크바에 대한 재공격을 회의적으로 보게 되었고 모스크바로 진군한다는 본래 계획을 뒤엎는다. 그 대신에 캅카스의 유전지대를 점령하여 독일의 고질적인 연료 문제를 해결하고 소련의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청색 작전을 구상하였으며 겨울이 끝나고 1942년 여름이 되어 작전을 실행하였다. 아돌프 히틀러에게 스탈린그라드라는 도시의 중요성은 매우 컸다. 이 도시는 볼가강의 주된 산업 도시였고, 점령한다면 캅카스로 진군하는 독일군 좌익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 스탈린도 이 점을 알고 있었고, 총을 들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이곳으로 보내라고 명령했다. 청색작전이 실행되고 독일군이 캅카스로 진군하자 소련군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독일군의 측면 포위로 인해 제대로된 방어선의 구축은 실패하였다. 그나마 바르바로사 작전 때와는 달리 전력의 결정적인 손실을 입지는 않았다.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로 진입해 시가전을 벌이기 시작했으나, 소련군의 격렬한 저항에 무려 3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엄청난 피해를 내며 도시 점령에 골머리를 앓게 된다. 이렇게 벌어준 시간 동안 소련군은 점점 독일군에게 수적 우위를 점하게 되고 마침내 11월 19일, 천왕성 작전을 통해 독일군의 측면을 보호해주던 루마니아군을 분쇄하고 도시에 있던 독일군 33만여명을 포위하는데에 성공한다. 독일은 공중보급을 통해 포위된 병력을 살릴 방법을 구상했으나 곧 포기하고 최대한 소련군에게 저항해 그들을 묶어두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1943년 2월 2일 스탈린그라드의 독일군은 최종적으로 소련에게 항복하게 된다. 이 전투는 독일의 소련 침공 계획을 완전히 좌절시키고 전세를 뒤바꿨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된다. 독일군의 병력과 자원은 이미 스탈린그라드에서 지나치게 소모되었고 더는 소련군을 압도할 만한 힘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련군은 초기의 패배를 딛고 이 전투를 기점으로 독일군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전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전쟁사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