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백제 마지막 역사의 흔적과 이화우(梨花雨) 사랑 엮은 변산반도 능가산 개암사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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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사는 우리나라 8승지로 꼽히는 변산반도 능가산 기슭에 우금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포근하고 아늑한 천년고찰이다. 개암사와 우금바위 일원은 변산반도를 대표하는 변산팔경(邊山八景) 중 한 곳이다. 개암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82년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우(禹)와 진(陳)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 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妙巖), 서쪽을 개암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개암사는 백제 무왕 35년(634년)에 백제의 왕사(王師) 묘련(妙蓮)이 옛 변한의 왕궁이 있던 자리에 처음 창건하였으며, 676년(문무왕 16) 원효와 의상이 우금암(禹金巖) 밑의 굴 속에 머물면서 중수하였다. 이후 여러 번 소실되었던 것을 1636년(인조 14) 계호선사(戒浩禪師)가 다시 지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개암사와 우금바위에는 유구한 세월의 깊이 만큼 많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개암사 뒤 우금바위는일대는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항복한 후 도침과 복신이 의자왕의 네째 왕자 부여풍을 옹립하여 3년에 걸쳐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한 백제 역사 최후의 순간을 간직한 현장이며, 우금바위 깎아지른 절벽에 있는 원효굴은 원효대사가 삶의 터전을 잃은 백제 유민을 위로하며 참선했던 곳이다. 또한 개암사는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이매창의 매창집(梅窓集)을 간행한 곳이며, 뿐만아니라 1,300여년전 신라시대 진표율사가 제조방법을 전수한 이래 불가의 민간요법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개암죽염을 처음 전래한 곳으로 유명하다. #변산반도능가산개암사 #변산팔경 #개암사대웅보전 #우금바위 #백제부흥운동 #원효굴복신굴베틀굴 #이매창매창집 #개암죽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