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2026년 2월 22일 사순절 첫 번쨰 주일 - 숨으로 드리는 기도 — 아람어로 다시 만나는 주기도문 (마태복음 6:9-13)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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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마태복음 6:9–1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I. 들어가는 말 —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잃어버린 기도 우리는 주기도문을 너무 잘 압니다. 외우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이 기도의 깊이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헬라어로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 언어로 기도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일상의 언어, 눈물의 언어, 식탁의 언어는 아람어였습니다. 마태복음의 주기도문 원문은 예수님의 아람어를 헬라어로 번역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번역된 문장이 아니라 예수님의 숨결에 가장 가까운 언어로 이 기도를 다시 들어보면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본 의미를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분명한 것은 주기도문은 요청하는 기도의 목록이 아닙니다. 이 기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삶의 구조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II.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관계로 시작되는 기도 ܐܒܘܢ ܕܒܫܡܝܐ Abwoon d’bashmaya (아부운 드바쉬마야)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아람어에서 하늘은 ‘쉬마야(ܫܡܝܐ)’입니다. 그러나 이 하늘은 우리가 상상하는 저 먼 우주의 공간이 아닙니다. 아람어에서 하늘은 장소가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하나님의 차원, 하나님의 현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멀리 위에 계신 분이라고 말하려 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우리가 숨 쉬는 순간마다 함께하시는 분임을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강조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종종 문제를 해결해 줄 하나님을 먼 하늘 어딘가에서 불러내듯 기도하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방향을 바꿉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깨닫지 못한 삶의 깊이 속에 계신 분입니다. 이어지는 “우리 아버지”는 아람어로 ‘아부운(ܐܒܘܢ)’입니다. ‘Ab’는 단순한 가족 호칭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 존재의 시작을 뜻하며, ‘woon’은 ‘우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라고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며 우리를 하나로 묶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르는 순간 우리는 경쟁자가 아니라 같은 생명 안에 있는 형제와 자매가 됩니다. 기도는 개인의 소원을 말하는 시간이 아니라 관계가 회복되는 자리입니다. 또한 ‘아부운’이라는 발음에는 숨을 내쉬는 호흡의 울림이 담겨 있어, 하나님이 멀리 계신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숨결 가까이에 계신 분임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의 시작은 요청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며, 이 첫 고백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동시에 서로에게로 다시 연결되는 복음의 시작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영광장로교회는 고민하고 질문하며 성찰하는 깊은 신앙,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는 열린 신앙, 예수님을 닮아 살아가는 삶의 신앙을 추구합니다. go.missionfund.org/glorypc0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