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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를 위한 성령론 세미나 주님과의 동행하는 삶은 영적 삶의 최고봉으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끊임없이 따르는 삶이다. 주님을 매사에 바라볼 수 있도록 훈련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 속에 어떤 시련을 허락하실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사실은 이 같은 시련 역시 우리들의 미숙함이 만들어 낸 수치일 경우가 많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한분만을 고요히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고귀한 지혜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연단을 받아 주님 한분만을 신뢰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참으로 고귀한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사람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낫다고 하는 말씀의 의미를 알고 있겠지만, 그러나 매사에 있어서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행한다고 하는 것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지요. 마침내 이러한 시련과 연단을 통해서, 고요히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즐겨 따르기를 훈련받게 되는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그러므로 무엇이 성령과의 영적인 교제를 가로막을 정도로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성령의 임재 의식을 흐리게 할 정도로 우리의 영혼을 끌어 다니고 있는가? 그 이유를 점검하기 위해 우리의 일상생활 중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는 말씀 그대로 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간 성령의 임재하심과 그 분의 인도하심만을 따르는 삶을 방해하고 있는 그 무엇이 있는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성령의 임재하심과 행하심을 바라보고 있는가? 모든 대화중에 내 입술을 사용하기 원하시는 성령을 의식하고 있는가? 모든 크고 작은 일을 만날 때마다 먼저 이 모든 일을 허락하시고 또한 이 일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이런 자문을 통해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인식을 새롭고 강하게 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는 것이 갑자기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을 겁니다. 또 때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이 무척이나 지겹거나 따분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겁니다. 어떨 때는 나의 욕구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찾으려 하기는커녕 오히려 성령께 어처구니없는 흥정을 벌릴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간에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분의 임재하심을 환영하며 숨 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의 무능력과 자신의 죄성(罪性) 많음을 철저히 깨닫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순간이라도 성령의 임재 밖에서는 숨쉬기조차 싫어하는 그런 간절함이 내 속에서 지속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수시로 기도와 찬양 중에 나 자신의 무능함과 무력함을 주님께 아뢰고, 그분의 긍휼히 여기심을 간구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께 붙잡혀 있기만 하다면, 그리고 오늘 우리의 삶의 동기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이것 한가지로 충분하다고 확신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임재 의식을 통해 주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워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오늘도 오직 우리 안에 성령께서 살아 나를 다스리고 계신다는 의식을 지니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임재가 의식되는 모든 순간에, 곧바로 믿음을 통해 그분의 임재를 인정하고 또 실제적으로 이 믿음을 모든 일에 적용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성령께 전적으로 헌신되어져,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만을 최상의 낙(樂)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분에게는 하루 동안 끊임없이 양심을 통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 행하는 일이 습관 됩니다. 성령의 임재가 의식되는 모든 순간에, 우리 안의 성령으로 하여금 우리의 모든 생각과 의지와 감정과 계획 등을 다스리시도록 우리의 마음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힌(Benny Hinn)도 성령과 그 분의 임재하심을 어떻게 체험하는지에 대해 소개하였습니다. 즉,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를 하나님의 능력과 충만으로 매일 인도하시는지를 알려주고 있으며,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성령을 민감하고 느끼고 그분의 능력이 넘치기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자의 삶에 있어서 물세례 받는 것보다도, 성령으로 충만한 것보다도, 삼위일체 하나님 중 제 3위의 인격께서 우리를 개인적으로 만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어떤 능력으로서 아는 것과 인격으로서 아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구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 만일 성령님이 어떤 능력이라면 우리는 그 능력을 붙잡으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하나님의 성품(신성)을 가지신 인격이라면 우리는 오히려 그분이 우리를 붙잡아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2) 만일 성령님이 어떤 능력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뜻과 우리의 일시적인 생각을 이루는데 그 능력을 사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신성을 가지신 인격이라면 우리는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더욱 그분께 항복하길 원할 것입니다. (3) 만일 성령님이 어떤 능력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받았다고 교만해 하며 받지 못한 사람들보다 낫다고 우쭐해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님이 신성을 가지신 인격이라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번째 인격이신 성령님께서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로 작정하신 그분의 놀라운 사랑 앞에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신학자 하퍼(Steven Harper)도 말하기를, 영적 발전의 목표는 우리 삶을 갈수록 더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갈수록 많이 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신자의 영혼이 온전히 그리스도께 헌신하여 중단 없는 성령의 임재 의식 속에서 살아갈 때, 주님께 붙들려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곧 성령의 뜻과 인도하심이 나타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