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윤봉길 의사 수감터가 오사카성에 있다?!ㅣ가슴 아픈 강제징용의 현장ㅣ오사카성 공원ㅣ014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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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사카 옥수수 콘상입니다. “나는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 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영상을 굳이 이렇게 나누었던 것은, 내일 4월29일이 바로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가 있던 날이기 때문에 그에 맞춰 윤봉길 의사께서 수감되어 계셨던 위수형무소 터를 소개 해 드리려 했습니다. 오사카 사회운동 현창탑에 현창 된 두 분도 독립을 위해 힘썼던 분들이긴 했으나 오늘과 성격이 좀 다르다고 판단하여 나누게 되었습니다. 오늘 영상은 군부대였던 오사카성의 소개와 위수 형무소터에 대한 영상입니다. 우선 오사카 성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토요토미가(家)의 오사카성이 중심이었던 모모야마 시대에서 토쿠가와가(家)의 에도막부 시대로 넘어오면서 오사카 성은 바깥쪽 해자도 메워지며 쇠퇴의 길을 걷습니다. 그렇게 방치되었던 오사카성을 재정비한 것이 에도막부의 2대 쇼군 토쿠가와 히데타다였습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에 미치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 이시야마 혼간지 자리에서 잇키 세력을 몰아내고 오사카 성을 크게 지었다면 토쿠가와 히데타다는 그 토요토미 가를 완전히 제압했다는 의미로 이전보다도 크고 높게 오사카성을 재건시킵니다. 이를 통해 자연스레 지방 다이묘 등의 경제력을 소진시켜 가면서 충성도를 확인하고, 또한 아직도 토요토미를 지지하는 잔당들의 힘 역시도 소모시킴과 동시에 백성들에게는 원수를 끌어 앉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인물됨을 강조하며 민심을 수습했고 그렇게 에도막부는 서(西)일본에서의 영향력을 공고히 해 나았습니다. 오사카 성에 와 보셨던 분들은 기억하실 지 모르겠지만 이 엄청나게 큰 돌들이 바로 히데타다에 의해 재건 될 당시 전국 각지에서 바쳐온 것들입니다. 지금의 오사카 성은 엄밀히 말하면 토쿠가와 가문에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토쿠가와 가문에 의해 지금의 오사카 성의 최종 모습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에도 시대 중기를 지나면서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졌다가 1959년에 이르러서야 학술 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철저히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들었다고 믿고 있던 오사카 사람들이 충격 받을 것을 걱정해서 그 사실을 발표하길 주저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 오사카, 도쿠가와 = 도쿄 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도쿄사람이 오사카의 상징 건물을 재건해 지금 그 모습대로 있다고 하는 것이 오사카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겠죠. 그것도 몇 백 년 동안 믿고 있던 사실이 달라지는 것이니….) 이렇게 에도막부에 의해 흔적이 지워지던 토요토미가(家)가 다시 역사의 전면으로 나오게 된 것은 메이지 유신 때부터였습니다. 토쿠가와의 에도막부로부터 천황이 권력을 되찾아 오면서 막부시대를 끝냈고, 권력을 잡았으나 따로 막부를 세우지 않으며 천왕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토요토미가 충신 반열에 오르며 복권됩니다. 물론 왕권 강화를 위한 메이지 텐노의 정치적 행동이었겠죠. 아무튼 그 결과로 오사카 성은 관서지방에서 다시 중심이 되어가면서 군사시설이 세워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군부대가 형성되었던 것이 다이쇼 텐노시대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부대화가 되었고 쇼와 텐노 시대에는 그냥 군부대 그 자체였습니다. 오사카 공습으로 도시가 폐허가 되고 다음날 바로 패망을 맞이한 오사카는 군 시설이 싹 정리된 이 자리에 공원을 만들게 되었고 그게 지금의 오사카 성 공원 된 것입니다. 호코쿠 신사?! 토요쿠니 신사?! 쿄토에 있는 豊国神社는 토요쿠니진자 라고 읽고, 이곳의 豊国神社는 호코쿠진자 라고 읽습니다. 교토의 것은 오로지 토요토미만을 모시는 곳은 토요쿠니진자, 토요토미와 자식들도 모시는 것은 호코쿠진자라고 한다고도 하기는 하는데, 뭐 자기들 부르고 싶은 대로 맘대로 부르더라구요. 시비에 적혀있는 시에 대해..짧게.. 暁を抱いて闇にゐる蕾 아카츠키오 다이테, 야미니이루 츠보미 절묘하게 표현 되어있는데요. 비석에 쓰인 대로 보면 暁を 아카츠키오 (다섯글자) 새벽을 抱いて闇に 다이테 야미니 (여섯글자) 품에 안은 어둠 속 ゐる蕾 이루 츠보미 (다섯글자) 봉우리 우리 표현처럼 한다 해도 暁を抱いて 아카츠키오 다이테 (여덟글자) 새벽을 품에 안은 闇にゐる蕾 야미니 이루 츠보미 (여덟글자) 어둠속 꽃봉우리 짧은 시인만큼 운율 맞추기가 일품인 것 같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돌아가신 12월 19일에 맞춰 카나자와에 들러 볼 수 있길 바래보며 오늘은 이만 인사 드리겠습니다. #윤봉길의사 #홍커우공원 #오사카성 지도 출처 http://shinkokunippon.blog122.fc2.com... 일부 내용 참고 http://y294ma.livedoor.blog/ 어찌어찌 우익같은 사람 블로그 같은 데에서 자료를 찾았네요. 군사시설에 대한 자료는 그런 분들이 최고인듯 하네요. ^^;; 다른 내용 조금 보다가..흠... 정신 건강을 위해 접었습니다.. 나중에 한 번 큰 맘 먹고 다뤄보는 것도 좋을수도 있겠지만...지금은..무리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