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207편) 왜 예수님인가? 왜 복음인가? 왜 믿어야 하는가? 왜 전도해야 하는가? 생명을 살리는 일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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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명성교회 청년부 전도사입니다. 이 영상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꼭 예수님 믿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 예배하기를 희망하는 분은 언제든 연락주세요 임정훈 전도사 010 6686 1154 수원명성교회 주소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덕영대로 1292 1. 아이의 성장과 신앙의 성장 태어난 지 첫돌이 된 아이가 스스로 걸어보려 합니다. 넘어지고, 코가 까지고, 멍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를 버티게 해 주고, 두 손을 잡아주며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수백 번 넘어지는 과정을 지나 아이는 결국 걷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모는 아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됩니다.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거듭남의 자리는 잘난 자리도, 못난 자리도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늘 안 되는 것 같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것—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다시 무릎 꿇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은 우리가 신실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어느 날 우리는 깨닫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그것이 은혜입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경험하게 되는 은혜입니다. 2. 예배 앞에 다시 서는 이유 십자가를 외면하면 편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다시 예배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예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나를 보게 됩니다. 부족하고 허물투성이인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사야 43:7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거듭남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 권사님과의 일화 — ‘거짓말’인가, ‘사랑’인가 어느 날 권사님이 “오늘 뭐했어?”라고 물으셨을 때 “권사님 생각했죠”라고 농담을 했습니다. 모두가 웃었고, 권사님도 기뻐하셨습니다. 율법적으로 보면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행위보다 마음과 목적을 보시는 하나님을 증언합니다. 악의가 없고, 속이려는 목적도 없고, 단지 상대를 기쁘게 하고 관계를 따뜻하게 하는 말이었다면 그것은 사랑에서 나온 인간적인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랑을 율법보다 높게 두셨습니다. 배고픈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랐을 때, 그들의 필요를 먼저 보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보호하셨습니다. 다섯 번 이혼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정죄 대신 위로를 주셨습니다. 나병 환자를 만지면 부정해지는 율법 아래서도, 주님은 그를 만지며 고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부정’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셨습니다. 사랑이 율법보다 크며, 그 사랑의 근원이 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4.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의 오해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로 시작합니다. 창조하신 분이 곧 세상의 주인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합니다. “하나님을 못 믿겠어.” 이 말은 사실 하나님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기준에 맞는 하나님만 믿고 싶다는 말입니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인간이 크신 하나님을 마음대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왜 악인이 더 잘되냐?”라 묻지만 하나님께서 악인을 그때그때 쓸어버리신다면 살아남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 있는 것도 하나님의 참아주심 때문입니다. 5. 노아의 방주 — 심판보다 더 큰 메시지 노아 시대에 하나님은 방주가 지어지는 100년 동안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벧전 3:20). 방주의 핵심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방주가 지어지는 동안 기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도 세상 끝을 말씀하시며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지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마 24:14). 구약은 신약의 예수님을 향하고, 신약은 구약의 성취를 보여줍니다. 창세기 1:1의 창조주 하나님을 신약은 이렇게 완성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요 1:1–3)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 바로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