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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HD역사스페셜 – 대각국사 의천은 왜 송나라 밀항했나 / KBS 20060127 방송

고려 왕의 동생이 몰래 송나라로 빠져나가다 초파일을 맞아 화려한 연등회 행사로 불야성을 이룬 1085년의 개경. 이날 의천 일행은 개경을 몰래 빠져나와 송나라 상인의 배에 몸을 싣는다. ‘밀항’이었다!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11세에 출가하여 불과 13세에 불교계 최고위직 ‘승통’의 자리에 오른 의천. 고려의 왕자이자, 오늘날 가톨릭으로 치면 추기경에 해당하는 신분의 의천이 밀항까지 감행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중국 항주의 혜인사, ‘고려사’로 불린 까닭은? 밀항으로 들어온 의천을 송나라 조정에서는 각별하게 관리했다. 중국 항주의 혜인원은 당시 무명의 절이었으나, 의천이 머물면서 고려와 송의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사찰로 부상한다. 당시 항주 시민들은 혜인원을 고려사로 불렀다는데.. 고려왕자인 의천이 금으로 쓰인 170권의 불경 3부를 기증하고 막대한 시주를 하면서 혜인원이 대대적인 중건을 하게 된 까닭이다. 2만 리 넘는 의천의 송나라 여정을 중국 현지 취재를 통해 따라가 봤다. 10년에 걸친 동아시아 불교연구서의 집대성, ‘교장’ 간행 송에서 3천 권의 서적을 갖고 귀국한 의천은 이후에도 국내는 물론 송과 거란, 일본에서 교장(불교 경전을 해석하거나 분석한 불교경전연구서)을 수집해 총 4,700여 권의 총록을 만들고 간행했다. 무려 10년에 걸친 대사업으로 동아시아 각국의 대장경 연구서를 모두 모은 방대한 규모였다. 그동안 의천의 교장은 석가모니의 설교를 기록한 대장경의 속편인 ‘속장경’으로 잘못 불려져 왔다. 의천이 간행한 ‘교장’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본다. 천태종 개창에 숨은 뜻은 무엇인가? 당시 고려 불교계는 왕실 중심의 화엄종과 문벌귀족이 후원하는 법상종으로 크게 양분되었고, 제3의 종단인 ‘선종’이 있어 갈등과 대립이 심각했다. 인주이씨를 중심으로 세력이 커져가던 법상종에 대응해, 화엄종 승려였던 의천은 불교계 개편을 시도한다. 선종 승려 1,000여 명을 끌어들여 법상종의 세력 축소를 도모한 의천, 그의 불교계 개편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가? 화폐주조를 주도한 승려? 문벌귀족에 맞선 숙종의 개혁정치 파트너 [대각국사문집]의 ‘주전건의상소문’에는 중국 화폐의 역사를 비롯한 의천의 해박한 화폐이론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 이것이 숙종에게 받아들여져 비로소 고려에 화폐가 널리 활용된다. 승려인 의천이 왜 화폐주조에 적극 나선 것일까? 인주이씨를 중심으로 하는 문벌귀족이 세력을 떨치고 있는 상황에서 숙종은 취약해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남경천도’와 ‘군사개혁’, ‘화폐주조’ 등의 개혁정치를 꾀한다. 그 중에서도 주전론은 국가가 경제권을 장악하도록 만든 핵심적인 개혁안이었다. 불교사상가 뿐만이 아니라, 문벌귀족에 맞서 사회변화를 모색했던 의천의 활약을 살펴본다. HD역사스페셜 34회 – 대각국사 의천은 왜 송나라 밀항했나 (2006.1.27.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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