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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love)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사랑은 인간이 오래전부터 가장 많이 이야기해 온 주제이면서도, 막상 그 본질을 깊이 파고들면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중세 시인의 연가부터 낭만주의의 이상화,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뇌 과학과 사회학의 해석까지, 사랑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시대를 관통해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런데 이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란 정확히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속 시원히 답변하기 어렵다. 때로는 숭고하고 열정적인 감정으로 간주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단순히 뇌의 호르몬 작용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의 사회학 이론과, 옥시토신 호르몬 등으로 대표되는 뇌 과학적 연구를 함께 살펴보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복합적 개념을 조금은 다층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우선 1960년대 말 독일의 혼란스러운 대학가에서 ‘열정으로서의 사랑’을 주제로 강의를 펼친 루만의 사례는 흥미롭다. 당시 프랑크푸르트 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학생운동과 격렬한 사회 비판이 이어졌고, 사회학자 아도르노(Adorno) 역시 예기치 못한 학생들의 항의로 강의를 포기한 상황이었다. 루만은 이 혼돈 속에서 “사회학적으로 사랑을 분석할 수 있다”는 대담한 취지로 강단에 섰다. 젊은 학생들이 주로 국가나 자본주의 체제 비판에 몰두하던 시기였는데, 그는 전혀 다른 주제인 “친밀함, 열정, 그리고 사랑의 코드”를 들고 나왔다. 이 행보는 그의 연구가 얼마나 ‘일상의 감정’조차도 사회적 시스템의 작동 원리로 풀어내고자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루만은 특정한 ‘개인’이나 ‘인간의 본성’보다는,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만들어 내는 사회적 시스템에 주목했다. 그는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에 깊이 관여하기보다는, “사회란 커뮤니케이션의 네트워크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감정 또한 특정 개인의 내면이나 유전자에 근거하기보다, 서로 주고받는 기대와 약속, 그리고 상징적 표현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이 루만 이론의 뼈대다. 그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코드”는 간단히 말해 “내가 상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증하고, 상대 역시 나를 사랑한다고 믿게 되는가?”라는 기대 교환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랑은 단순한 호감이나 감정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 어린 관심과 배려,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을 ‘사회적으로’ 승인받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루만이 보기에 현대사회에서 ‘사랑’은 개인에게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제도나 조직 중심으로 나뉜 현대사회에서, 한 개인은 여러 역할(가령 직장에서의 역할, 가정에서의 역할, 여가 공동체 등)에 분산되어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다. 루만은 여기서 사랑이 “상대방의 관점에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고 본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과 행동을 통해, 나는 내 진심과 존재 가치를 남에게 인정받고, 동시에 스스로도 ‘특별한 무엇’임을 재발견하게 된다. 한편, 이것이 사랑의 전부일까? 루만의 해석은 사랑을 하나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정의하기에, 여러 비판이 뒤따른다. 인간이 지닌 본능적 감정이나 섹슈얼리티, 혹은 뇌의 호르몬 작용이 배제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뇌 과학이나 생물학 연구를 보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뇌에서 옥시토신이나 바소프레신 같은 호르몬 분비가 증가한다는 사실이 관찰된다. 옥시토신은 소위 ‘결속을 다지는 호르몬’으로도 불리는데, 북미 대초원 들쥐 실험에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쥐는 이 옥시토신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 그리고 이 호르몬을 차단하면 곧장 문란한 교접으로 돌아간다는 결과가 보고되었다. 인간에게도 옥시토신은 출산과 수유 과정에서 어머니와 아이 간의 강한 유대를 형성하고, 연인이 성적 친밀감을 나눌 때에도 분비되어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높인다. 더 나아가 ‘사랑에 빠졌을 때의 감정적 황홀감’은 도파민이나 노르아드레날린, 페닐에틸아민 등의 분비가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호르몬들은 강렬한 쾌감과 중독에 가까운 몰입 상태를 유발해,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표현할 만큼 이성적 판단력이 약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 이러한 ‘호르몬 폭발 상태’는 몇 달에서 몇 년을 넘기지 못하며, 결국 어느 순간 평정을 되찾게 된다. 그때부터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호르몬적 흥분이 잦아든 뒤에야 진정한 관계의 구축이 시작된다는 시각도 있다. 결국 뇌 과학적 관점에서 사랑은 ‘화학물질의 작용’이라 단순화될 수도 있지만, 루만 식으로 말하자면 그것이야말로 사회가 기대하는 ‘사랑’이라는 코드와 뒤섞여 한층 복잡해진다. 단순한 욕망과 감정보다도, “상대의 안위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약속, “내 감정이 진짜라는 것을 서로 믿을 수 있다”는 보증, “이 관계를 지속해서 사회적 지지 속에 유지하겠다”는 쌍방의 결심이 겹쳐지면서, 우리는 한층 안정되고도 깊은 관계를 맺는다. 루만은 이처럼 사랑이 서로의 기대를 주고받는 방식에서 일종의 ‘안정성’을 찾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기대가 깨질 위험이 상존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사랑이 코드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인 만큼, 오해가 생기거나 배신이 일어나면 시스템은 곧바로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구조적 해석에는 한계가 따른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 ‘아이돌 스타에 대한 맹목적 사랑’, ‘성적 끌림과 결합되는 타오르는 정열’ 같은 것들은, 누군가의 관점에서 나를 확인받고자 하는 행동이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안정적 반복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인간이 아닌 동물 세계에서도 부성애나 모성애, 짝짓기 후 한쪽이 일생을 헌신하는 사례 등이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이 현상들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는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인간만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이들은 “동물에게도 인간 사랑과 유사한 감정적·행동적 패턴이 존재한다”고 받아들인다. 게다가 사랑은 단지 연인이나 가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독교나 여타 종교에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칠 때, 과연 그 사랑은 본능적·로맨틱 맥락과 동일한가? 본회퍼가 “사랑은 상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실천적 측면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이상처럼 보이지만, 막상 심층을 들여다보면 인간이 타인에게 바라는 것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자처하는 순간에도, 사실은 “상대가 나를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는 넓은 개념’이면서, 동시에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복합적 구조’를 갖춘다고 할 수 있다. 뇌 과학의 시선으로 보면, 사랑은 호르몬의 작용을 빼놓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호르몬이 인간 사회 안에서 어떻게 의미화되고, 어떻게 신뢰와 약속이 오가는 관계로 발전하는지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이다. 루만의 말처럼 그것이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나를 표현하고 확인받으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우리는 사랑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의를 새롭게 ‘사회화’하는 셈이다. 반면 이 모든 과정을 설명하고도 여전히 남는 것은, 사랑이 언제나 불확실성과 신비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불확실성을 때로 두려워하고, 때로는 열광적으로 매달린다. 사랑이 마음껏 풀어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문학과 예술은 끊임없이 사랑을 노래하고, 연구자들은 새로운 가설과 자료로 사랑을 분석한다. 그러나 결론은 명확하지 않다. 사랑은 루만의 표현대로 하나의 ‘사회적 코드’이자,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옥시토신과 도파민이 만들어 내는 ‘화학 작용’이기도 하며, 그 둘 중 어느 것도 아닌, 혹은 둘 다 넘어서는 예측 불가능한 기적 같은 순간이기도 하다. 결국 “사랑이란 정확히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러 층위에서 답변할 수밖에 없다. 뇌 과학적으로는 특정 호르몬들의 합주이자, 사회학적으로는 서로의 기대를 형성·재생산하는 커뮤니케이션이며, 윤리·종교적으로는 ‘무언가를 희생하면서까지 상대에게 헌신하는 숭고한 행동’으로도 해석된다. 분명한 것은, 사랑에 관한 정의들이 서로 다르고 때로 충돌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삶에서 ‘사랑’이 갖는 영향력과 매력을 조금도 훼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렇게 다양한 시선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랑은 시대와 학문을 넘나들며 새롭게 조명되고, 사람들은 그 불확실성과 비밀스러움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어쩌면 그 불확실성과 다면성 자체가 사랑의 정체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생화학적 욕망과 사회적 코드, 헌신이라는 윤리, 혹은 미학적·감정적 흥분이 서로 겹쳐 있는 거대한 퍼즐이다. 다 채우기 힘든 조각들이 남아서 때때로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그 퍼즐을 맞춰 보려는 시도가 있기에 인류는 계속 사랑을 갈망한다. 그리고 바로 그 ‘갈망’이야말로, 사랑이라는 개념을 결코 하나로 환원할 수 없는 핵심이 아닐까. 사랑은 결론지어지지 않는 질문, 혹은 감히 결론지어질 수 없는 신비에 가까운 어떤 것. 그러나 그 신비를 마주하려는 시도 자체가 우리를 인간답게, 또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