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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성령운동의 사상적 모체가 되는 것은 성령의 사역을 자신의 신학의 중심부에 올려 놓은 종교개혁자 칼빈의 성령에 대한 이해이다. 필자는 종교개혁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복음적 성령운동의 저변에는 최소한 칼빈이 제시해 놓은 ‘성령의 내적 증거’, ‘그리스도와의 연합’, ‘성화시키는 능력’으로서의 모티브(motive)가 짙게 내재되어있다고 본다. 칼빈 사상에 있어서의 성령은 마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인 것과 같이, 그리스도와 인간 사이에 있어서 필수적인 중보자 역할을 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을 위한 필요 수단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은 칭의와 중생을 통하여 그러한 구속을 얻기 위한 필요 수단이 된다.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향하도록 하고 그분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며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다. 칼빈은 성령의 내적 증거(inner witness of Holy Spirit)에 대하여 논하는데, 여기서 ‘내적’(內的)이란 기록된 말씀 그리고 이 기록된 말씀에 기초한 설교 말씀을 외적인 것으로 볼 때 이와는 상대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칼빈이 ‘하나님이 친히 이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신다’고 할 때, 성령의 사역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이 전혀 이해될 수 없다고 한다. 성령의 증거는 모든 이성보다 탁월하다. 하나님만이 그의 말씀 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적 합한 증거자이신 한, 이 말씀은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해서 각인 되지 않고는 인간의 마음속 에 수용될 수 없다.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던 동일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까지 뚫고 들어와 이 예언자들이 과연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명하신 바를 충실하게 선포하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신시킨다. Institutes, I 7:4. 이처럼 칼빈에게 있어서 성령의 내적 증거는 로만 카톨릭의 교황무오설(敎皇無誤說)이나 교황권에 의한 교리 전승 및 그 어떤 교회의 규범이나 권위보다도 힘이 있으며, 이성의 증거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칼빈이 성령의 내적 증거를 참 신앙의 기반과 보증으로서 크게 강조한 일은 이후 청교도들과 존 웨슬리를 포함한 전체 개신교 성령운동사에 크게 각인 되는 ‘성령의 내적 증거’의 모티브를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은 신자가 영적인 생활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 조건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의 생명과 성령에의 참여자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연합 자체는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이 말은 인간의 본성이 이 연합을 위하여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말과도 같다. 주 예수께서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사를 전하여 주심으로써 우리가 그분, 즉 그 분의 몸과 영혼과 하나가 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몸에 참여하는 것이 실제로 필요한 것 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의 띠는 성령이시다. 성령이 우리를 함께 결속시켜 주면, 마 치 도관과도 같이 모든 그리스도의 실재 및 그리스도가 지닌 것들을 우리에게 전하여 준다. Institutes, IV 17:12.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일으키는 움직임이 시작될 수 있는 곳은 인간으로부터가 아니며, 그러한 시작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로부터이다. 그리스도와 성만찬에 참여하는 자들 간의 연합은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으로써만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무엇인지를 우리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와 같은 칼빈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는 곧바로 청교도들에게 직결되었다. 청교도사상에 있어서의 성령론은 전적으로 칼빈주의적 기반을 지니고 있다. 즉 성화는 신자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주어지는데, 성령께서는 신자들로 하여금 성화의 길을 추구해 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이처럼 칼빈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모티브는 모든 복음적인 성령운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어온 내용이다. 이는 우리 신앙의 근본이 그리스도에게서 말미암으며 또한 우리 신앙의 목표가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일에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믿음에 의해 우리가 그리스도와 만나게 되고,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받게 되는 순간부터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또 우리는 그분의 성령에 의해 살게 된다. 이같은 중생(regeneration)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는데, 그것은 옛 사람에 대한 억제와 새로운 삶에의 참여이다. 이 두 가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부터 직접 비롯되어 중생의 최후 목적인 본래의 모습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소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과거에 죄인 되었던 상태에서 이제는 실제로 거룩한 자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점차 성화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다. 그러므로 성화(聖化)는 우리가 아직 실제적인 의와는 사실상 상당히 먼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데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중생을 통하여 죄의 굴레로부터 해방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미 완전한 자유를 지녔기 때문에 육신과 투쟁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사실이 그들을 계속적으로 시험받게 하는 영원한 전쟁터에 남아있게 하여, 그들을 단련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나약함을 깨닫게 해줄 수 있다. Institutes, III 3:10. 그러나 중생한 자의 삶이 반드시 금욕이라는 회개의 소극적 측면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신자가 이 땅에서 계속 죄인으로 머물러 있고 저 세상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성화를 완성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될 때 우리는 결국 승리의 확신을 갖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선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을 소생시키시고 의롭게 여기신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선택의 은사는 불가항력적(irresistible)인 것이며, 이 은사는 또한 그들로 하여금 죄와 효과적으로 싸우고 거룩한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견인(堅忍)의 은사를 수반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심령을 단련하시고 설득하시고 온건하게 하시며, 자신의 기업으로 주관하신다. 또한 에스겔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의 가 르침을 쫓아 행하도록 자신의 선택에 새로운 심령을 부여하시기로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그 가르침 안에서 행하도록 약속하신다. Institutes, III 3:10. 이처럼 칼빈의 ‘성화시키는 능력’(sanctifying power) 모티브는 청교도들의 성령론에서 구체화되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지는 웨슬리 성령론의 기본 골격을 이루게 된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죄와 성화의 교리에 있어서 칼빈이 통시적으로 표현하였다면 웨슬리는 각각 이분법을 적용하였다는 점이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의 핵심이라고 본다. 웨슬리는 죄를 고범죄(willful sin)와 허물(error)로 구분하여, 고범죄는 현세에서 성령의 능력에 의해 완전히 제거될 수 있는 것으로 가르쳤다. 또 이와 연관지어 성화에 대해서도 칼빈과는 달리 순간적 체험의 단계를 구분하였다. 그러므로 만일 웨슬리에게서 나타나는 이분법을 일렬 배치할 수 있다면, 필경 칼빈 또는 청교도들의 성령론과 유사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