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전남 보성군 안규홍ㆍ박제현 집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Если кнопки скачивания не
загрузились
НАЖМИТЕ ЗДЕСЬ или обновите страницу
Если возникают проблемы со скачиванием видео, пожалуйста напишите в поддержку по адресу внизу
страницы.
Спасибо з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ервиса ClipSaver.ru
안규홍(879~1911)은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호구지책을 마련하기 위해 어머니 정씨와 함께 친척이던 박제현의 집에 의탁하게됐다. 그는 10여 세 나이에 머슴살이를 시작하였고, 이후 약 20여 년 동안 박제현의 집에서 머슴 노릇을 하였다. 안규홍은 1907년 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머슴살이 동지들을 규합해 창의한 이래 파청(巴靑)·진산(眞山)·원봉(圓峰)대첩 등 의병 사상 기념비적 승리를 구가했던 보성 의진(義陣)을 이끌었다. 당시 의병들이 대부분 유생 출신이란 점으로 보면 머슴 출신 의병장은 매우 특이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안규홍 의병부대는 1908년 4월부터 1909년 10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보성·순천을 중심으로 한 전남 중동부 지역에서 모두 26회의 전투를 치렀다. 안규홍 의병부대가 올린 3대 대첩으로는 파청(巴靑)대첩과 진산(眞山)대첩(1908년 8월), 원봉(圓峰)대첩(1909년 3월) 등 이 꼽힌다. 안규홍 의병부대는 일본 순사와 군인, 일진회원 등 20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안규홍은 1909년 일본군의 남한대토벌작전이 시작되자 부대 해산 후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1910년 순국했다. 박제현은 자신의 머슴이던 안규홍 의병진의 군량장 및 군수장 되어 재정적인 지원을 했으며 여러 전투에도 참가하였다. 당시 유교문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이다. 박제현은 그후 전남 순천에서 적과 교전 끝에 일본군에게 붙잡혔는데 이때 손발을 절단당하여 불구의 몸이 되었다고 한다. 주인 박제현과 머슴살이를 했던 안규홍이 살았던 집은 현재 잘 보존되어 있으며,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 202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