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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작워커 #동래학춤 #동래무형유산한마당 🔸️동래학춤은 동래지방에서 전승되어오는 학춤이다. 주로 정월대보름날 동래야류나 줄다리기를 할 때 추던 춤으로, 어떤 춤꾼이 도포에 갓을 쓰고서 덧배기 춤을 추는 모습이 “학이 춤추는 것과 같다”라고 한데서 학춤이라 이름 붙여졌다 한다. 🔸️동래학춤은 의상을 따로 갖추지 않고 일상의 옷인 도포에 갓을 쓰고 바지저고리, 버선과 미투리를 신고 즉흥적으로 춘다. 🔸️반주악기는 꽹과리와 장구, 징, 북 등의 농악편성으로 되어 있고 장단은 굿거리 장단이다. 🔸️춤사위에는 양손을 너울거리는 날아가는 사위, 한 발 들고 서 있는 발 드는 사위, 학이 날개를 폈다가 오므리는 모습의 펴는 사위와 오므리는 사위, 좌우 상하를 바라보는 보는 사위, 왼발은 무릎을 굽혀 앞으로 내밀고 오른발은 뒤로 편 상태에서 좌우로 흔들거나 상하로 가볍게 움직이는 배김새 사위 등이 있다. 🔸️ 구성을 보면, 일반 민속춤과 같이 일정한 순서로 짜여져 있지 않고, 자유분방한 즉흥성과 개인적 멋이 강조되고 있다. 🔸️동래학춤은 자연미와 예술미의 조화가 우아하고 격조높은 춤사위로 표현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춤이다. 예능보유자 유금선(구음), 예능보유자후보 이성훈(무수) 등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동래학춤의 형성 배경으로 동래마을의 지형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동래마을은 예부터 지형이 학의 형상과 같다 하여 학에 관련한 지명들이 많이 있었다. 학의 동체는 마안령馬鞍領, 왼쪽 날개는 동장대東將臺, 오른쪽 날개는 서장대西將臺, 칠산동 일대를 학소대鶴巢臺, 연산4동을 학암마을(황새바위)이라 부르고, 현 거제동(교육대학 앞)을 학란(황새알)마을이라 불렀다. 이 황새바위 일대는 작은 저수지들이 많이 있어 수많은 학이 떼를 지어 서식하였다. 이로 인하여 옛날부터 동래 지역 사람들은 학의 모습과 동태를 많이 볼 수 있었으므로, 동래 특유의 덧배기춤이 청초하고 우아하게 학춤답게 자생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요건은 충분히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동래 지역은 천연온천이 유명하여 이로 인해 자연히 놀이를 좋아하는 풍류객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색향으로도 널리 알려져 놀이문화가 풍성한 곳이었다. 그러므로 동래 사람들은 가무를 좋아하면서 풍류를 즐기는 놀이에 능숙하였다. 그래서 춤꾼들이 놀이판 또는 사랑방에서 동래 기녀들과 더불어 흥을 고조시켰으며, 춤의 고장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놀이로서 동래지신밟기, 동래줄다리기, 동래야류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동래야류는 길놀이 행렬이 어느 지역 보다 그 규모나 화려함이 굉장하였는데, 이 길놀이가 끝나면 연희 마당에서 춤의 명수들이 한바탕 질탕하게 춤을 추었다고 한다. 여기서 학춤, 곱추춤, 요동춤, 두꺼비춤 등의 갖가지 장끼춤들의 춤판이 벌어졌으며, 또한 동서 양편의 줄다리기가 끝나면 명무수들이 학춤을 추어서 이긴 편의 승리를 축하하였다고 한다. 🔸️동래에는 동래 유지들의 모임인 기영회와 망순계가 있었다. 기영회는 춘추 2회의 총회가 있었다. 이때 회원의 자제들이 효성을 기리는 ‘밥상놀음’을 하였는데, 그곳에 초청된 기녀들의 춤인 검무, 고무 및 초빙된 광대들의 기예가 푸짐하였다. 이때 동래의 명무들이 학춤을 추었으며, 명무수로 이주서李周瑞가 있었다고 하였다. 한편 망순계는 매년 4월 모임에는 불상초놀음을 했으며 10월에는 단풍놀이를 했었는데, 거기서 기녀들의 가무로 푸짐하게 하루를 즐기면서 반드시 이 학춤을 추었다고 한다. 🔸️동래학춤은 1900년 초 당시 김귀조金貴祚, 1886~1956, 김문수1898~1955, 김필상金弼相, 이주서 등이 추었다고 한다. 1950년 초 학춤의 명수 김귀조의 아들 김희영金熙英, 1923~1972이 동래학춤의 유일한 전승자였다. 이후 김희영의 생질녀 이현경李賢卿이 전수받아 맥을 잇기도 하였는데, 개인 사정으로 중단하였다. 🔸️그 후 1972년 동래학춤이 부산시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1985년 김문수의 아들 김동원金東源, 1926~2001이 예능보유자 인정을 받아 동래학춤 보유자 1세대가 되었다. 2016년 현재는 이성훈李惺薰이 동래학춤 2세대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동래학춤보존회에서 전승하고 있다. 🔸️이 춤은 홀춤으로도 출 수 있으나 1972년 직후 동래의 지형을 상징하여 5인무로 구성하여 춤을 추기도 하였고, 1980년 이후부터 군무로 행하여지고 있다. 춤의 구성은 4번의 배김사위와 등장과 퇴장을 합하여 6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악사들이 자진모리장단을 치면서 마당을 한 바퀴 돌아 한곳에 정지한 후 느린굿거리장단을 치면 구음이 시작된다. 이때 무수들이 날음새(활갯짓뜀사위)로 춤판을 날아 들어와 춤판을 돈 후, 다섯 장단에 즉흥춤(덧배기춤)을 춘다. ✔️2장에서 모이어룸사위와 앉음모이어룸사위를 행하고 똑바로 선 자세에서 외발서기를 행한 후 좌측과 우측으로 옆걸음사위를 행한다. 다섯 장단 즉흥춤을 춘 다음 1차 배김사위를 행한다. 이때 모두 중앙을 향하여 배김사위를 한 후 반드시 풀이 사위를 행한다. ✔️3장에서는 다섯 장단 즉흥춤을 춘 후 소쿠리춤사위를 하는데 일제히 시계 반대 방향으로 4장단 행한 후 다시 즉흥춤을 춘 다음 2차 배김사위를 행한다. 이때 배김사위는 왼쪽배김사위를 취하는데 원심 바깥쪽으로 배긴다. ✔️4장에서는 즉흥춤을 춘 후에 모두가 시계 방향으로 4장단 소쿠리춤사위를 행한 다음 즉흥춤을 추다가 3차 배김사위를 행한다. (즉흥춤은 다섯장단을 기본으로 한다.) 이때 배김사위는 2~3인의 무수가 서로 마주보면서 추는 쌍배김사위를 행한다. 이 3차 배김사위에서 뒷배김사위, 소매걷움사위 등을 춘다. ✔️5장에서는 즉흥춤을 춘 후 일제히 활갯짓뜀사위로 춤판을 한 바퀴 돈다. 다시 즉흥춤을 춘 후 모이줍는사위를 좌우로 행한 후 모둠뛰기를 하면서 한 바퀴 자전한다. 다시 즉흥춤을 춘 후 끝배김사위를 행하는데, 각자 자유로운 방향을 취하며 행한다. ✔️6장에서는 즉흥춤을 춘 후 좌우배김사위를 행하고 다시 즉흥춤을 춘 후 날음사위로 일제히 춤판을 돌아 퇴장한다. 🔸️동래학춤의 중요한 춤사위는 활갯짓뜀사위(날음새), 일자사위, 모이어룸사위, 외발서기, 옆걸음사위, 좌우활개사위, 배김사위(겹배김새, 뒷배김새, 좌우배김새), 좌우풀이사위, 소쿠리춤사위, 소매걷움사위, 모이줍는사위, 모둠뛰기사위 등이다. 복식은 흰 바지저고리에 소매폭이 유난히 긴 흰 도포를 입고 가슴에 흰 술띠를 맨다. 머리에는 검정 갓을 쓰며, 미투리(짚신)를 신는다. 🔸️장단은 느린굿거리장단을 사용하며, 악사가 등퇴장을 할 때는 자진모리장단을 친다. 그리고 동래 지역 특유의 구음으로 흥을 고조시킨다. 악기는 사물악기로 꽹과리, 징, 장구, 북을 사용하는데, 악사의 수는 때에 따라 가감되기도 한다. 그리고 여자 소리꾼의 구음이 강조되어 있다. 🔸️춤사위에는 양손을 너울거리는 날아가는 사위, 한 발 들고 서 있는 발 드는 사위, 학이 날개를 폈다가 오므리는 모습의 펴는 사위와 오므리는 사위, 좌우 상하를 바라보는 보는 사위, 왼발은 무릎을 굽혀 앞으로 내밀고 오른발은 뒤로 편 상태에서 좌우로 흔들거나 상하로 가볍게 움직이는 배김새 사위 등이 있다. 🔸️ 구성을 보면, 일반 민속춤과 같이 일정한 순서로 짜여져 있지 않고, 자유분방한 즉흥성과 개인적 멋이 강조되고 있다. 🔸️동래학춤은 자연미와 예술미의 조화가 우아하고 격조높은 춤사위로 표현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춤이다. 예능보유자 유금선(구음), 예능보유자후보 이성훈(무수) 등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