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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일본은 이미 1세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도 일본인의 정신적 좌표는 ‘메이지의 영광’에 있다. 그리고 오늘의 일본을 만든 선택, 러일전쟁. 제국주의 열강의 시장쟁탈전 속에서 일본은 어떻게 반식민지 상태에서 탈출하여 제국이 되었을까? (2005년 9월25일 방송) 1. 흑선을 끌고 온 피스메이커 2005년 7월 16일. 요코스카시 쿠리야마에서는 쿠리야마 페리축제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 축제는 검은 흑선을 끌고 왔던 페리함대에 의해 이뤄진 일본의 개국을 기리는 축제였다. 페리는 스스로를 ‘피스메이커(평화의 중재자)’로 일컬으며 일본의 개항을 요구했다. 시꺼먼 연기를 내뿜는 군함을 끌고 왔던 피스메이커를 은인으로 여기는 나라 일본. 여기에 오늘날 일본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열쇠가 있다. 2. 660일간의 세계일주 - 이와쿠라 사절단 미국에 뒤이어 일본은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세계열강과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된다. 외세의 압력에 나약했던 막부정권을 뒤집고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신정부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조약개정과 신문물의 습득을 목표로 한 대규모 사절단을 구미와 유럽에 파견하기로 한 것이다. 국내의 안정보다 신문물 배우기를 선택했던 일본. 신열강 미국과 유럽의 관문 영국에서 이와쿠라 사절단의 흔적을 되짚어봄으로써 1년 10개월에 이르는 메이지 신정부의 ‘빅딜’, 그 시작과 끝을 조명한다. 3. 문명개화로 탈아입구를!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와 이와쿠라 사절단의 귀국으로 메이지정부의 문명개화 노력에 더욱 박차가 가해지게 되었다. 열강의 선진문물을 체험하고 조급해진 일본의 지도자들은 급기야 일본의 장관과 같은 수준의 급여를 주며 ‘오야토이(御雇:정부가 고용한 외국인 기술자)’를 초빙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재계의 유착, 정부주도의 주입식 교육, 그리고 일본의 급성장에 밑거름이 되었던 수많은 이름 모를 공녀(工女)들… 일본의 탈아입구는 마침내 성공한 것인가. 4. 2005년, 메이지의 유산 1974년 신문에 연재된 이래로 일본의 경영리더들에게 매년 필독서의 첫 순위로 꼽히는 작품이 있다. 바로 시바 료타로의 『언덕위의 구름』이다. 러일전쟁을 승리를 이끌었던 두 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이것은 일본인들에게 메이지와 러일전쟁의 성공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마쓰야마 시의 한 마을. 이 마을은 현재 메이지 시대를 보여주는 일종의 박물관으로 대대적인 개조가 진행중이다. 그 테마는 바로 『언덕위의 구름』. 마을조성을 위한 공채에는 12억 엔에 가까운 돈이 모집됐다. 일본인들에게 메이지는 어떤 의미인지, 오늘날 일본인에게 남아있는 메이지의 유산은 과연 무엇인지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