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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사 * * 00:00 도입부 03:35 르네상스에 대한 관념은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창조물 05:02 에라스무스, 볼테르, 괴테 10:00 메디치 가문에 대한 숱한 음모, 체사레 보르자의 학살극 11:37 왜 하필 이탈리아인가? 11:51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들 12:55 그리스 로마 고전에 대한 재발견 16:48 저자의 끝모를 탐구심과 놀라운 상상력 19:57 무려 1,167개에 달하는 방대한 주석 * * 르네상스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드디어 이해했는가? 이해하기를 원하는가? ······ 위대한 싸움은 이제껏 바로 이것밖에 없었다. 르네상스의 문제 제기보다 더 결정적인 문제 제기는 이제껏 없었다. 니체, 『안티 크리스트』 중에서 * * 어떤 분야에서든 그 분야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가 한 권쯤 있기 마련인데, 르네상스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대작이 바로 야콥 부르크하르트가 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입니다, 이 책의 저자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의 대사제(大司祭)』라는 영광스러운 칭호가 뒤따를 만큼 르네상스에 관한 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인데, 특히 철학자 니체와 각별한 인연을 지닌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개신교 성직자 집안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신학 공부가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이내 역사학 분야로 눈길을 돌렸고, 주로 역사학, 예술사, 문헌학, 고전학 연구에 몰두했으며, 마치 '원 클럽 맨'처럼 학자로서의 경력 대부분을 오로지 바젤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데 바쳤습니다. 1858년에 바젤대학교 역사학 정교수로 부임한 그는 10년 후 그곳에서 니체를 만납니다. 새파란 청년이었던 니체가 고전문헌학 교수로 처음 그 대학에 부임했기 때문이지요. 부르크하르트보다 무려 스물여섯 살이나 어렸던 니체는 까마득한 선배 교수인 저자로부터 크나큰 영향을 받습니다. 아쉽게도 니체는 교수 생활 10년 만에 오로지 철학에 전념하기 위해 바젤 대학을 미련없이 떠나지만, 저자는 니체가 떠난 후로도 무려 36년 동안이나 그 대학에 남아 역사 강의에만 몰두했습니다. 저자는 훗날 니체로부터 '야콥 부르크하르트 때문에 인문학이 발전했다'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기게 됩니다. "정말 진귀한 그 예외 중의 한 명이 바로 바젤 대학에 있는 나의 경외하는 지기인 야콥 부르크하르트이다 : 바젤 대학이 인문학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그의 덕택이다." - 니체, 『우상의 황혼』 이 책은 발표 즉시 기념비적 대작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이미 책의 제목에 명백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그렇습니다. 시기는 바로 르네상스 시대이며, 장소는 이탈리아, 다루는 핵심 주제는 문화사입니다. 르네상스가 도대체 무엇이며, 그 문예부흥 운동이 왜 하필이면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났는지, 또한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의 문화, 더 나아가 유럽 전체와 근대 세계를 어떻게 광범위하게 변화시켰는지가 이 책이 다루는 핵심 주제입니다. 이 책과 저자에 대한 명성은 굳이 니체의 몇몇 철학책 후미진 구석에서 그의 이름을 찾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널리 인정받아 왔는데, "르네상스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창조물이다."(독일에서 편찬된 『세계사 대계』)라는 문장만 보더라도 금세 이해할 만합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펼쳐놓은 르네상스 연구는 학계에서 하나의 정설로 통념화된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대한 최초의 생각'을 떠올린 건 1847년에 로마를 방문하였을 때였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폐허의 도시 로마'는 숱한 시인들과 역사가들에게 '특별한 명상'에 잠기게 만든 도시였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인물인 페트라르카와 단테는 물론, 훗날『로마제국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이나 니부어에 이를 때까지도 '폐허의 도시 로마'를 휘감던 공기와 저녁 노을은 '불현듯' 천재들로 하여금 웅편거작들을 쓸 결심들을 계속 불러일으켰던 셈입니다. 단테의 말대로 로마는 그만큼 특별했으니까요. "로마 성벽의 돌들은 당연히 경외심을 품고 대해야 하고, 이 도시를 떠받치고 있는 대지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 이상으로 귀중하다." 사실 부르크하르트 이전에도 르네상스라는 용어와 개념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이 개념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들은 마키아벨리, 에라스무스, 클로드 졸리, 볼테르, 괴테 등이 꼽힙니다. 이들 가운데 볼테르와 괴테는 거의 '르네상스의 역사'를 쓸 뻔했을 정도로 '르네상스 개념'에 정통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훗날 『중세의 가을』, 『호모 루덴스』 등의 작품을 쓴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역사가 요한 호위징아는 볼테르가 『르네상스의 시대』또는 그와 유사한 제목의 역사서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볼테르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결정적으로 '이탈리아'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오늘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는 부르크하르트야말로 르네상스 개념을 가장 먼저 학술용어로, 또 일반적인 교양언어로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애초에 부르크하르트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사와 문화사를 결합하고자 하는 웅대한 구상을 품고 방대한 연구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토록 야심찬 연구 작업이 끝내 완결에 이르지 못찬 채 교착 상태에 머물던 중, 그는 결국 예술사 부문(회화,건축,조각)을 따로 떼어내고 문화사를 다룬 책으로 체계를 바꿔 이 책을 출간하는데, 그 과정이 어찌나 지난했던지 저자 스스로 이 작품을 두고 '역경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별칭으로 부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 작품에 특별히 시론(試論)이라는 부제를 붙였는데, 그 이유는 그가 언제나 스스로 비전문가임을 자처하면서 전체에 대한 조망 능력을 지닌 '딜레탕티즘'을 강조하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가 이 작품 초판본을 두고 고교 은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표현한 대로, '기존의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은, 마치 거친 들에 피어난 야생화와도 같으며, 저자가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를 가졌고 사료의 기록을 멋지게 활용하고 있다고 믿을 만큼'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은 지녔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역사서로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르크하르트가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은 자신의 사후 출간된 작품인『세계사적 고찰』에서 제시한 포텐츠론(Potenzenlehre)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즉 역사는 국가 · 종교 · 문화라는 세 개의 잠재력들(Potenzen) 사이의 규제 · 견제 · 대립 · 포괄 · 보완 등 변증법적 상호작용 속에서 하나의 통일적인 상을 형성해간다는 역사이론입니다. 이 책은 크게 6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당시의 정치 상황은 '제1부 '인공물로서의 국가'에서 다루고, 문화 상황은 제2부에서 제5부에 이르는 '개인의 발전' '고대의 부활' '세계와 인간의 발견' '시교와 축제'에서 다룹니다. 마지막 제6부 '관습과 종교'에서는 당시의 사회 풍습과 종교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들은 주로 '문화'를 다루는 장들에 담겨 있습니다. 고전과 고대의 부흥을 통한 인간의 자아와 세계의 발견, 그에 따른 개성의 성장, 자유주의와 인문주의의 발전 등은 우리가 흔히 르네상스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 개념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부르크하르트의 서술이 특히 빛나는 대목은 '르네상스의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당시의 정치 상황과 도덕적 풍조와 윤리 관념을 포함한 '관습과 종교'를 함께 고려하여 입체적으로 세세히 조명한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교황과 황제가 끊임없이 반목과 견제를 주고 받으며 대립하는 당시 이탈리아의 특수한 정치 상황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연구와 묘사는 독자들을 단번에 르네상스 시대의 궁전과 교황청 안으로 바싹 끌어당길 만큼 아주 생생하면서도 자세합니다. 굳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단테의 『신곡』가운데 유명한 대목들을 따로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당시 이탈리아의 극도로 혼란스럽고 드라마틱한 정치적 격변 상황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메디치 가문에 대한 숱한 암살 음모, 교황의 사생아였던 체사레 보르자의 상상을 초월하는 잔악무도한 학살극, 온갖 잔혹한 군소국가 폭군들의 횡포와 만행, 용병대장들의 천인공노할 배반과 찬탈 등은 셰익스피어의 역사극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르네상스의 문화가 봄을 맞은 자연처럼 사방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던 시대에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의 정신적인 풍토와 사회적인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도 중요하게 다룹니다. 언어와 관습, 사교와 축제, 가족과 결혼, 음식과 질병 등 아주 디테일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사회상을 그대로 들여다 보는 듯한 저자의 설명은 '관습과 종교'에 더없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배우자의 부정에 대한 복수극, 수도사와 참회 설교사들의 타락, 점성술과 마법이 만연하던 풍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확산, 갈수록 타락하는 종교에 대한 불신과 세속화 등은 숱한 풍속화와 전기(傳記) 또는 문학 작품 속 묘사 등에 대한 설명과 전거 자료를 통해 탄탄하게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