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이숭인(李崇仁)의 한시 감상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Если кнопки скачивания не
загрузились
НАЖМИТЕ ЗДЕСЬ или обновите страницу
Если возникают проблемы со скачиванием видео, пожалуйста напишите в поддержку по адресу внизу
страницы.
Спасибо з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ервиса ClipSaver.ru
이숭인(李崇仁, 1347년~1392년 9월 10일(음력 8월 23일))은 고려 숙옹부승 직책을 지낸 고려 말의 시인, 대학자이다. 호는 도은(陶隱), 자는 자안(子安), 본관은 성주이며, 길재 대신 삼은으로 꼽히기도 한다.[1] 포은 정몽주의 문하생이었다. 권신 이인임의 7촌 조카였다. 생애 고려 공민왕 때였던 1360년에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였고, 1362년에 예위시(禮闈試) 병과(丙科) 제2인에 급제하였다.[2] 과거에 급제한 후 숙옹부승에 제수된 후 장흥고사(長興庫使)가 되어 진덕박사(進德博士)를 겸하였고, 나중에는 예의 산랑(禮儀散郞)·예문 응교(藝文應敎)·문하사인(門下舍人) 등을 역임했다.[3] 공민왕이 성균관을 개창(改創)한 뒤 정몽주 등과 함께 학관(學館)을 겸했다. 고려 문사(文士)를 뽑아 명나라에 보낼 때 1등으로 뽑혔으나 나이가 어려 가지 못했다. 정도전 등과 함께 원나라의 사신을 돌려보낼 것을 청하다가 유배된 적이 있다. 그 후 정몽주와 함께 실록을 편수하고, 1386년(우왕 12)에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이인임의 인족(姻族)이라 하여 유배되기도 하였다. 1389년 창왕 때에도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후에도 혼란기를 맞아 유배·감금되었고, 1392년(공양왕 4) 이방원에게 정몽주가 처형되자 그의 일당으로 몰려 유배되었다. 조선이 건국되자 유배 도중 정도전의 사주를 받은 황거정에게 고의적 장형으로 처형되었다.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