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충장공 정운장군을 그리며 해남이크누스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Если кнопки скачивания не
загрузились
НАЖМИТЕ ЗДЕСЬ или обновите страницу
Если возникают проблемы со скачиванием видео, пожалуйста напишите в поддержку по адресу внизу
страницы.
Спасибо з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ервиса ClipSaver.ru
오늘은 해남의 자랑이자 대한민국의 자랑이며, 해남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충장공 정운(鄭運) 장군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그는 이순신 장군에게 최고의 돌격장이자 동지였으며,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형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정운 장군이 전사 이후 이순신 장군이 올린 장계의 내용을 보면 “녹도만호 정운(鄭運)은 맡은 직책에 정성을 다하였고, 담략이 있어서 서로 의논할만한 사람이다. 사변이 일어난 이래 의기를 격발하여 나라를 위해서 제 몸을 잊고 조금도 마음을 놓지 않고 변방을 지키는 일에 힘쓰기를 오히려 전보다 더욱 더 하므로 믿을 사람은 오직 정운(鄭運) 등 두세 사람이다. 세 번 승첩을 했을 때 언제나 선봉에 섰고, 이번에 부산포해전에서도 몸을 던져 죽음을 잊고 먼저 적의 소굴에 돌입하였으며, 하루 종일 교전하면서도 어찌나 힘을 다하여 쏘았던지 적들이 감히 움직이지 못하였는바 이는 정운(鄭運)의 힘이 컸다. 그런데, 그날 돌아올 무렵에 철환을 맞아 죽었지만, 그 늠늠한 기운과 맑은 혼령이 쓸쓸히 아주 없어져서 뒷 세상에 아주 알려지지 못할까 애통하다.”라고 할 정도로 안타까워 했던 것이죠. 그는 1543년 해남 옥천면 대산리에서 훈련참군 정응정의 아들로 태어나서, 1570년(선조 3년) 28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걸치시다가 1591년(선조 24년) 녹도 만호로 부임하게 됩니다. 이후 옥포해전, 사천해전, 한산도해전 등에서 큰 공을 세우시고, 1592년 부산포 해전에서 50세의 나이로 전사를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