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무등산 타잔 박흥숙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Если кнопки скачивания не
загрузились
НАЖМИТЕ ЗДЕСЬ или обновите страницу
Если возникают проблемы со скачиванием видео, пожалуйста напишите в поддержку по адресу внизу
страницы.
Спасибо з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ервиса ClipSaver.ru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2005.5.15.] 무등산 타잔 박흥숙 무등산의 비극 “무등산 타잔 박흥숙” “광주 무등산 무당 마을서 마을청년이 망치로 때려 4명 사망” “집 헐리자 차례로 묶고 구덩이에 쳐 박아 쇠망치질” 당시 기사 中 - 1977년 4월20일, 광주 무등산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자신의 무허가 집이 철거되는 것에 격분한 21살의 청년 박흥숙이 철거반원 4명을 살해한 사건이었다. 사건 후 그는 “무등산 타잔”이라 불리며 평소 엽기적인 행각으로 살아온 인물로 보도된다. 구명회원들이 말하는 “인간 박흥숙” “무등산 타잔 박흥숙”여동생 박정자 인터뷰 박흥숙이 독학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 녹음했던 육성 녹음 테잎 사건 현장을 목격한 오모씨의 생생한 목격담 도시빈민의 진정한 아픔은 무엇인가 박흥숙 자필로 쓴 최후 진술서 최초 공개! 생존철거반원 김모씨의 공권력의 개입에 대한 최초 철거 상황 고백 도시빈민 운동가였던 “김혜경, 이철용, 손학규”바라본 도시 빈민 실상 *「망치부대, 일용직 철거반원」과 유가족 인터뷰. 계속되는 강제철거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오 갈 곳 없었던 도시빈민 살인자 박흥숙. 망치부대 일용직 철거반 원 사망자들. 도시빈민에게 정부는 대책 없는 철거정책을 시행했 고, 당시 강제 철거를 도맡았던 철거반원들은 일당을 받고 정부를 대표했다. 무허가 움막집의 주인 박흥숙은 살인자가 됐다. 도시빈민 박흥숙과 철거반원 4명의 사망자들 중 어느 쪽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1977년 4월20일의 살인 사건은 가해자인 박흥숙도 패(敗)하고, 피 해자 철거반원들도 패(敗)하고만 결국 진정한 승(勝)은 정부가 거 머쥔 것은 아니였을까? 2005년 지금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계속되는 강제철거가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