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풍수지리 도인 37강) 그 명당(明堂)은 도선대사(道詵大師)께서 점지한 자리야...!! (교수)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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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門無입니다 오늘은 그 명당은 道詵大師 께서 점혈(點穴)해 놓은 자리야...!! 라는 제목으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때는 2014년 여름 강원도동해( 東海 )에서 작은 배 두 척을 가지고 물 고기를 잡는 어부가 구산(求山) 을 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는 明堂 의 실체를 꽤나 아는 듯 몇 번 통화 후 활어회를 떠가지고 불이나케 서울로 상경한 것입니다 이 후 그는 각종 어류의 생선을 제철마다 보내기도 하기에 그 정성에 소액의 감정료 (勘定料) 만 받고 동해 바다와 설악산도 볼 겸 東海로 향했습니다 한 여름 장마가 끝날 무렵인데에도 비는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사실 빈도(貧道) 는 비를 맞으며 일 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山 일을 할 때나 천하제(天下祭0 를 뫼실 때나 비가 오면 하늘의 풍운신장(風雲神將)께 기도를 하여 비를 몇 시간 멈추기도 하고 안개로 바꾸어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일정을 잡고나면 혹시나 비가 올까봐 상주님네나 제주들 께서는 늘 좌불안석 (坐不安席 )이지요 그 점은 어느 누구나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그 때마다 빈도(貧道) 는 여러번 경험한 점으로 볼 때 비를 맞고 일하는 일은 없다고 안정을 시켜도 그것은 저의 얘기일 뿐 막상 일윤지 대사를 앞둔 입장에서는 날을 정한 날부터 두 세달은 잠이 안 오고 밥 맛이 다 없다고 합니다 그 점은 저도 가정사( 家庭事) 를 하다 보니 잘 압니다 비오는 문제는 하늘의 풍운신장께 30여 년 째 인사를 매일 올리니 그 정성으로 빈도를 도와 주신것이 아닌가 합니다 허나 일을 하기 위하여 이동 중에 비가 오는 것이야 어찌하겠습니까?? 한 자리 점혈 해 주기로 마음먹고 東海 뒷 산줄기에서 옥계(玉溪) 까지 두루 살피기 시작하였습니다 산 하나를 넘으면 비가 쏟아지고 또 넘으면 멈추는 것이 강원도 산의 일기가 아니던가?? 어느덧 내리던 비도 멈추고 강원도 산 속 길을 따라 차가 달리니 공기도 상쾌하고 초 가을 같은 여름 날씨 였습니다 차는 이산 저산 줄기를 넘나들 때 산 끝 자락의 밭이 맑게 보였습니다 차를 세워요~ 차를 세워 !! 저 위 밭을 가 봅시다 !! 용맥은 1km 정도를 여러 번 힘차게 굴곡(屈曲0 하여 내려와 산 끝자락에 서너 조각의 혈장(穴場0으로 맺혀져 있었습니다 작은 밭 조각의 좌향(坐向) 이 제 각각이니 여러 명이 각자 맞는 향(向0 을 잡아 들어갈 수 있는 또 다른 明堂 으로 형성 된 것에 대하여 天地間 에 잠시 예(禮) 를 올리고 어부 김씨의 부모님과 맞는 좌(坐)의 혈처(穴處) 를찾기 위하여 패철을 두 세 곳에 놓아 보니 喪主의 부모님과 딱 맞는 자리였습니다 터는 60점 정도 되는 국회의원 장관이 몇 代 에 나고 재물은 양쪽 계곡에서 合水 가 되어 내려가 아래에는 저수지 초입으로 형성 돼 있었으니 저수지(貯水池) 의 큰 영향은 많이 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合水가 되니 없는 것 보다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 자리가 좋겠소!! 土主 에게 잘 말씀드려서 땅 값은 절대로 깍지 말고 구산(求山) 하도록 하시오!! 한 달이 가고 두달이 될 무렵 연락이 왔습니다 대사님?? 도저히 안 됩니다 90세가 다 된 노인장께서 말하기를 젊을 때부터 風水地理學을 공부하고 20여 년 만에 자리를 득(得)하여 50여 년 간직해 온 신의지지(身衣之地0 즉 자신이 죽어서 들어갈 신후지지(身後之地0라고 말하며 손을 절래 절래 내두르면서 다른 곳을 찾아 보라고 한다는 것이엇습니다 허 허~~~!! 그 선생이 하는 말에 의하면 도대체 누가 그런 자리를 가르쳐 주었단 말이오?? 예~~~!! 도선대사보다 열 배 百 배는 전국을 더 주유(周遊) 한 風水道人이 있지요... 하기야 전에는 산에서 修道 할 때 누구나 土窟 에서 유숙을 한다고 하지만 그 옛 날 무학(舞鶴)이나 道詵大師께서는관산(觀山)을 다닐 때 말을 타고 하루에 一百 里 이상을 다니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때로는 산속 풀 더미 속에서 밤이슬 맞으며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빈도는 복(福0 많게도 깨끗한 도시에서 유숙을 하며 하루에 일곱 여덟 시간 차를 몰고 7~8백리를 27년 여를 다녔으니 그 말도 일리는 있다고 봅니다 어떻든 그 자리는 신선(神仙0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선인회의형(仙人會議形) 또는 신선들과 학이 노니는 선인방학형9仙人放鶴形) 이었다는 말씀을 드리며 삼공봉 (三公峯)은 없었지만 사신팔장 중(四神八將 中0 어느 곳도 비어있는 곳 없이 꽉 찬 국세(局勢)였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끝으로 한가지 더 팁을드리자면 자신의 조부모에서의 좌청룡(左靑龍0이 짧으면 그 명당은 기(氣0가 다했으니 절대로 代를 더 이을 수가 없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조금이나마 유익하셨다면 좋아요 구독 부탁드립니다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