У нас вы можете посмотреть бесплатно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휴머니즘적 사회주의를 꿈꿨던 사람들 - 아인슈타인, 헬렌켈러, 러셀, 사르트르,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조지 오웰, 피카소, 조지 웰스 или скачать в максимальном доступном качестве, видео которое было загружено на ютуб. Для загрузки выберите вариант из формы ниже:
Если кнопки скачивания не
загрузились
НАЖМИТЕ ЗДЕСЬ или обновите страницу
Если возникают проблемы со скачиванием видео, пожалуйста напишите в поддержку по адресу внизу
страницы.
Спасибо за использование сервиса ClipSaver.ru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라우스는 아르카디아(Arcadia)라는 완벽한 사회를 꿈꿨다. 그곳은 폭력이나 질병이 존재하지 않는 낭만적인 시골로 씨만 뿌리면 곡물이 잘 자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고 주로 자연, 음악과 시를 감상하며 산다. 아르카디아 주민들은 오전에 잠깐 일을 하고 농사를 지은 후 성대한 점심식사를 하고 긴 낮잠을 잔다. 저녁에는 노래 부르고 춤추고 술을 마시며 보낸다. 다음날 새벽이 되면 절대로 숙취에 시달리지 않고 잠에서 깨어나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매일의 기적을 바라보면서 감사 기도를 올린다. 그곳에는 왕자나 부자가 없고,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왕자나 부자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르카디아(Arcadia)를 꿈꿨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말했다. “휴머니즘적 사회주의는 최대 이윤의 욕구를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장과 자본의 비인간적 힘의 법칙에 따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스스로 계획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생산하는 사회 체제이다.” 그와 같이 본래 사회주의는 자유주의의 임계치를 넘어서는 급진적 민주주의였고, 바로 그러한 취지에서 자유주의의 현실적 조건인 ‘자본’주의, 즉 자본이 주도하는 세상을 ‘사회’주의, 즉 다수 국민이 주도하는 세상으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용기 있게 이 희망의 대열에 동참했고 대안을 꿈꾸었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천재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온갖 장애를 딛고 세계적 사회사업가로 우뚝 선 헬렌 켈러, 탐미주의의 대표 작가 오스카 와일드, 20세기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 윌리엄 모리스, 프랑스를 대표하는 기수이자 영화배우 이브 몽탕, 20세기 대중문화의 신화 존 레넌, 공상과학소설의 선구자 조지 웰스, 서정시보다 진한 사랑으로 싸운 시인 파블로 네루다, 미국 노동자 계급의 영원한 벗 존 스타인벡, 인종ㆍ경제적 평등 꿈꾼 민주적 사회주의자 마틴 루터 킹, 선(禪)-마르크스주의를 꿈꾼 20세기의 아이콘 존 레넌, 노동자에게 사랑받은 낭만주의 문학의 거장 빅토르 위고 등등 누군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 100명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을 이름들이다. 그 밖에도 ‘사회주의의 목표는 인간적 형제애’ 라고 주장한 조지 오웰이나 ‘우리를 혹사하는 체제를 전복하자’고 외쳤던 미셸 푸코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사회주의자’의 명부에 제 이름을 기입해 넣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타고난 재능과 스스로의 노력에 힘입어 자기 분야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우리 사회가 은폐해 온 ‘사회주의자’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무정부 상태가 악의 진정한 근원이다. (….) 이런 악을 제거하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것은 사회적 목표를 추가하는 교육 체계를 동반한 이른바 사회주의 경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현대 물리학의 거장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쓴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이 글의 제목은 아예 ‘왜 사회주의인가’이다. 이 글은 1949년 5월 미국의 좌파 월간지 먼슬리 리뷰 창간호에 실렸다.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천재 과학자로만 알려져 있는 아인슈타인이 사회주의를 지지했으며 매카시즘 이전부터 미국 정보 당국의 표적이 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인슈타인은 순수 과학자로서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병역 거부, 핵무기 개발 중지를 주장한 전투적 평화주의자로, 자본주의 체제의 위험성을 경고한 실천적 지식인으로 자신의 신념을 공공연히 밝히며 살았다. 아인슈타인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라고 규정하지 않았지만 그의 정치적 발언 가운데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우호적 태도가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그는 러시아 공산당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는 유보적이었지만 1917년 10월 혁명의 목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레닌에 대해 “사회 정의의 구현을 위해 온 정열을 바치고 자신을 희생한 사람으로서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는 1950년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공산주의자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내가 공산주의자라 해도 나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아인슈타인의 이와 같은 태도는 매카시즘의 표적이 됐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미 하원의 극우파들은 “이 세상 최고의 사기꾼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수년 전부터 공산주의자로 활약해 왔다”며 “지금 그가 퍼뜨리고 있는 허튼 소리는 공산당 노선의 이행일 뿐”이라는 악선동을 퍼부었다. 그는 숨을 거두기 며칠 전인 1955년 4월 11일 마치 유언을 남기듯 버트란트 러셀과 함께 작성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통해 “인류라는 생물의 씨앗을 근절시켜 버릴 사태를 불러일으킬 핵무기를 만드는 행위는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중단돼야 한다”고 호소하고 생을 마감했다. 헬렌 켈러가 사회 운동을 접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 시절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헬렌은 여성의 권리, 특히 참정권 쟁취를 위한 운동을 펼쳤다. 당시는 미국, 영국 등 민주주의의 선진국에서조차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을 때였다(영국은 1919년, 미국은 1920년에 이르러서야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다). 헬렌은 1909년 사회당에 가입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1912년 사회주의 신문에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는가’라는 글을 기고했다. “몇 달 동안 내 이름과 사회주의가 신문에 같이 올라왔다. 한 친구는 내가 야구, 루스벨트 대통령, 뉴욕 경찰 스캔들 기사와 함께 1면을 장식했다고 말해 줬다. (...) 악평도 이익이 될 수 있다. 내 활동을 기록하는 신문이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기사에 자주 쓴다면 난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 글에서 헬렌은 설리번의 추천으로 웰스의 『신세계』를 읽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