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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 1417~1475) 선생은 본관이 고령(高靈)이며, 벼슬은 영의정을 지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참여하였다. 계유정난에 협조해 ‘수충협책정난공신 2등’에 책훈되고, 세조가 즉위하자 ‘동덕좌익공신 고령군(高靈君)’에 봉해졌다. 예종이 즉위하자 ‘원상(院相)’이 되었으며, 남이(南怡)의 옥사(獄事)를 처리해 ‘수충보사병기정난익대공신’이 되었다. 또한 성종이 즉위하자 ‘순성명량경제홍화좌리공신’에 책훈되었다. 선생의 묘소는 부인 무송 윤씨(茂松尹氏)와 쌍분(雙墳)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조선 초기 묘제(墓制)를 잘 유지하고 있다. 각 봉분 앞에는 장명등, 문인석, 무인석이 배치되어 있는데, 8각의 장명등은 사대부묘에서 찾아보기 힘든 형태이며, 문인석과 무인석을 함께 건립하는 경우도 드물어서 선생의 지위에 따른 특수한 사례임을 알 수 있다. 묘표는 1897년에 건립되었으며, 석상과 향로석은 현대에 제작되었다. 묘역 하단에는 1477년 선생의 아들 고천군(高川君) 신정(申瀞)이 건립한 신도비가 있다. 이 신도비는 4면의 폭이 동일한 사면비(四面碑)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비문은 남쪽면에서 시작되는데 개석에 ‘초면(初面)’이라고 새겨져 있다. 비문은 이승소(李承召)가 지었으며, 비신의 상단에 줄을 긋고 해서(楷書)로 비제(碑題)를 썼다. [출처]문화재청 #의정부 #숙주나물 #신숙주 #신숙주선생 #한글창제 #세종 #훈민정음 #신숙주선생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