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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다해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 내려놓음과 봉헌의 차이 법정 스님의 유명한 수필집 『무소유』에는 스님이 가장 아끼던 난초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님은 지인에게 귀한 난초 두 분을 선물 받아 정성껏 길렀습니다. 그런데 이 난초가 어느새 기쁨이 아니라 스님의 '상전'이 되어버렸습니다. 한번은 스님이 외출했다가 햇볕이 뜨거워지자, 난초가 말라 죽을까 봐 허둥지둥 절로 돌아왔습니다. 여행을 가서도 난초 걱정에 잠을 설쳤습니다. '무소유'를 수행한다는 수행자가 고작 풀포기 하나에 매여 안절부절못하게 된 것입니다. 깊은 고민 끝에 스님은 결단을 내립니다. "이 난초가 내 수행을 방해하는구나." 스님은 난초를 쓰레기통에 버렸을까요? 아닙니다. 난초를 정말로 아끼고 잘 기를 수 있는 친구에게 '주어버렸습니다'. 친구에게 난초를 건네주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 스님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그때 비로소 날아갈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이 일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내 방에 난초를 두고 "신경 쓰지 말자, 마음을 비우자"라고 다짐하는 것은 고문일 뿐입니다. 하지만 친구에게 주어버리면, 그때부터는 그 난초의 주인이 내가 아닌 친구가 되기에 더 이상 내 마음을 졸이게 하지 않습니다. 소유권이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흔히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상을 내 품에 둔 채 마음만 내려놓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눈앞에 보이면 다시 잡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어설픈 내려놓음으로 파멸한 두 가지 슬픈 사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무엘기 상권에 나오는 엘리 사제입니다. 그에게는 홉니와 피네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느님의 제물을 가로채고 성전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망나니였습니다. 엘리는 그들을 단호하게 하느님의 법대로 치리하거나 봉헌(심판)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로서의 정에 매여, 그저 "얘들아, 왜 그러느냐"라며 나약하게 타이를 뿐이었습니다. 그는 자식을 하느님보다 더 소중히 여겨 꽉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는 어찌하여 나보다 네 자식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느냐?"(1사무 2,29)라고 꾸짖으셨습니다. 결국 전쟁터에서 두 아들은 한 날 한 시에 죽었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도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하느님께 맡기지 않고 내 손에 쥐고 있으려 했던 집착의 대가는 가문의 몰락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롯의 아내입니다. 소돔이 멸망할 때 천사는 "뒤를 돌아보지 마라"고 했습니다. 몸은 소돔을 떠났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곳에 두고 온 재물과 안락함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녀는 미련을 버리지 못해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마비를 상징합니다. 손에 쥔 것을 완전히 놓지 못하면, 우리는 과거에 갇혀 한 발자국도 미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질긴 집착을 끊을 수 있을까요? 답은 '비움'이 아니라 '봉헌'입니다. 봉헌이란 소유권을 하느님께 완전히 이전하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어야 쳐다보지 않게 되고, 그래야 집착이 끊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렙톤 두 닢을 헌금함에 넣는 가난한 과부를 보시고 "저 과부가 가장 많이 넣었다"고 칭찬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과부의 행동은 '상실'입니다. "저 돈이 없으면 당장 굶을 텐데..." 하며 걱정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위대한 '봉헌'으로 보셨습니다. 과부는 돈을 길바닥에 버린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돈은 영원한 가치로 변합니다. 또 한 번 봉헌한 것은 다시는 손을 넣어 꺼낼 수 없습니다. 봉헌함은 돈이 들어갈 만한 구멍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법정 스님이 난초를 친구에게 주어버림으로써 해방되었듯, 우리도 우리를 짓누르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하느님께 주어버려야 합니다. 자녀 문제로 속을 썩이고 계십니까? 그 아이를 내가 조종하려 하지 말고 하느님께 봉헌하십시오. "주님, 이 아이는 제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의 자녀입니다. 당신이 키우십시오."라고 소유권을 넘겨드리십시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십니까? 그 걱정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으십시오. "주님, 제 앞날을 당신께 드립니다. 이제 제 걱정이 아니라 당신의 계획입니다." 우리가 쥐고 있으면 썩어버리거나 무거운 짐이 되지만, 하느님께 드리면 그것은 기적이 되고 은총이 됩니다. '내려놓음'이라는 막연한 비움이 아니라, '봉헌'이라는 확실한 드림을 선택하십시오. 오늘 이 미사 중에 예물과 함께 여러분의 가장 큰 집착을 봉헌하십시오. 빈손이 되어 돌아가는 여러분의 발걸음은,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하느님의 자유로 가득 찰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