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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윤상원 (윤개원), 박기순 야학교사 / 1950.8.19 생, 1980.5.27 졸 사망장소 : 도청 민원실 2층 회의실, 사망원인: 자상, 화상 묘비명: 윤상원은 전남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5·18항쟁 지도부 대변인으로 활동 중 전남도청에서 장렬히 산화 윤상원 열사는 전남대학교 정치학과 출신으로 항쟁 지도부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항쟁을 이끌어나가신 열사입니다.열사는 전남대학교에 입학한 후,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학내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은행 취업 후, 6개월만에 다시 광주로 내려와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광천 공단 내 한남 플라스틱에 위장 취업하며 들불야학에서 노동자들에게 일반사회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1979년 10월, 박정희 암살 이후, 여러 청년활동가들을 만나면서 노동운동 단체를 만들고자 노력하며, 5월 17일 전국적으로 계엄령이 확대되며 항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열사는 계엄군이 물러난 5월 21일에서 26일 사이,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시작했고 23일 부터 26일 궐기 대회까지 총 지휘를 맡았습니다. 윤상원 열사는 26일 저녁 공수부대가 들어올 것을 미리 알고 후대에서 광주항쟁을 잊지 말고 정신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며 "너희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제 너희들은 집으로 돌아가라 우리들이 지금까지 한 항쟁을 잊지 말고 후세에도 이어가길 바란다.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박기순 열사는 전남대학교 역사교육과에 입학해 '민주교육지표사건' 관련으로 무기정학을 당했습니다. 이후 여대생 최초로 공장에 위장 취업하여 들불야학을 창립해 노동자 야학운동을 주도하다가 12월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졌습니다. 열사가 창립한 들불야학은 광주의 학생운동, 노동운동, 주민운동을 연결시켰습니다.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열사의 삶을 기리며, 슬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영혼결혼식을 올리고 합장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을 위한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