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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비실록 #북벌 #역모 #인선왕후_장씨 #인조 #병자호란 #소현세자 #조귀인 #강빈 #강화도 #장유 #김상용 #김경징 #심양 #인질 #명나라 #산해관전투 #김자점 #이경석 #신성군 #효종 #숙휘공주 #정재륜 조선시대에는 난세를 맞아 현명한 처신으로 그 자리를 잘 지킨 왕비지만 난세라 다른 유명한 인사들에 밀려 별로 주목받지못한 왕비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로 특별히 인조, 소현세자, 조귀인, 세자빈 강씨 등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효종의 부인 인선왕후 장씨 이야기입니다. 효종의 왕비 인선왕후 장씨는 존귀한 신분이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 파란을 겪은 여인이기도 한데 대군의 부인이었을 때는 강화도에서 병자호란을 맞이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볼모로 심양으로 끌려가 8년 동안이나 타국 생활을 하면서 남편 봉림대군과 소현세자의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그리고 소현세자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었을 때는 조소용의 모함을 견디면서 불안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인선왕후 장씨는 광해 10년인 1618년 12월에 이정구, 신흠, 이식 등과 더불어 조선의 4대 문장가로 불리는 문신 장유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외조부는 척화파 대신으로 유명한 김상용으로 외가와 친가가 모두 당대의 명문이었기 때문에 장씨는 좋은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장씨가 6세가 되었을 때 부모의 품을 떠나 작은 아버지의 집에서 할머니의 손에 의해 길러졌는데 부모를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평범한 소녀였지만 명문의 규수답게 자라면서 품행이 조신하고 단정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