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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의 염불(白木之念佛, しろきのねんぶつ) - 정전스님 법문(2020.04.26) 증공상인證空上人 일어 지음 혜정법사慧淨法師 중문 번역 정전 스님 한글 번역 自力之人者,色彩之念佛也:或以大乘之悟彩色,或以甚深領解彩色,或以戒彩色,或以調靜身心彩色。有定散色彩之念佛,則往生無疑而歡喜;無色彩之念佛,則不得往生而悲歎:此之悲喜,皆自力之迷也。 자력의 (마음이 있는) 사람이 하는 염불은 색채가 있는 염불이다. 혹은 대승의 깨달음으로써 색칠하기도 하고, 혹은 (정토법문의 교리에 대한) 깊은 이해로써 색칠하기도 하고, 혹은 계로써 색칠하기도 하고, 혹은 심신을 고요하게 하는 것으로써 색칠하기도 한다. 정산定散(정선과 산선)의 색채가 있는 염불은 틀림없이 왕생한다고 기뻐하고, 색채가 없는 염불은 왕생할 수 없다고 슬퍼하며 탄식한다. 이러한 슬픔과 기쁨은 모두 자력에 대한 미혹에서 비롯된 것이다. 《大經》所言法滅百歲之念佛,《觀經》所言下三品之念佛,皆是毫無彩色之“白木之念佛”也。善導大師釋本願文之“至心信樂”謂之“稱我名號”,亦是成爲白木之心也。 『대경』에서 말하는 불법이 멸한 뒤 백 년의 염불과 『관경』에서 말하는 하삼품의 염불은 모두 색채가 전혀 없는 “백목의 염불”이다. 선도대사께서 본원문의 “지심신락至心信樂”을 해석하여 “칭아명호稱我名號”라 하신 것 역시 백목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觀經》下品下生之機者,佛法、世俗二種善根皆無之無善凡夫故,毫無彩色也。何況死苦所逼,已成茫然,三業皆無正體也。一生皆是惡人故,平生之行皆無可憑;臨終死苦所逼故,止惡修善之心,大小權實之悟,不能措心;起立塔像之善,此儀不契;舍家棄欲之心,此時難起:實是“極重惡人,無他方便”也。 『관경』 하품하생의 근기는 불법과 세속의 두 가지 선근이 모두 없는 선이 없는 범부인 까닭에 전혀 색채가 없다. 더구나 죽음의 고통에 시달려 이미 망연茫然해진 탓에 삼업 모두에 정체正體가 없다. 평생 악인이었던 까닭에 평생의 행을 모두 의지할 수 없고, 임종 시 죽음의 고통에 시달리는 까닭에 악을 그치고 선을 닦으려는 마음도, 대승·소승·권교·실교大小權實의 깨달음도 마음에 두지 못했으며, 탑을 세우고 불상을 조성하는 선도 이런 근기에게는 계합하지 못하고, 가정과 욕망을 버리려는 마음도 이때는 일으키기 어려우니, 진실로 “극중한 악인에게 다른 방편이 없음”이다. 雖然教其領解他力,念名號之不思議,然而被苦所逼,次第失念之故,轉教口稱而言:“汝若不能念者,應稱無量壽佛。” 비록 그에게 타력을 이해하고 명호의 불가사의함을 생각하라고 가르쳤으나, 고통에 시달려 차례로 억념의 능력을 잃게 된 까닭에 바꾸어 입으로 칭념하라고 가르치며 “그대가 만약 억념할 수 없다면 마땅히 무량수불을 불러야 하느니라.”라고 말한 것이다. 此時雖然意業茫然,然而十聲稱佛,聲聲消滅八十億劫生死之罪,蒙“見金蓮花猶如日輪”之益。 이때 비록 의업이 망연해졌으나, 십성十聲의 칭명염불을 하면 소리소리聲聲마다 80억겁의 생사중죄를 소멸하고 “태양과 같은 금색 연꽃을 보는” 이익을 얻게 된다. 此義者:就機而論,毫無道心,亦無定散之彩色;只隨善知識之教,別無賢能,是白木之念佛而往生也。 이 뜻은 다음과 같다: 근기의 측면에서 논한다면, 도심이 전혀 없고 또 정산의 색채도 없으며, 단지 선지식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재능이 없었기에 백목의 염불로 왕생한 것이다. 譬如牽幼兒之手而書寫文字,豈小兒之高明耶!下下品之念佛,亦復如是:只隨善知識及彌陀之意,但以口稱而得往生也。 예컨대 (어른이)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글을 쓰는 것이 어찌 어린아이가 뛰어나서겠는가! 하하품의 염불도 마찬가지로, 오로지 선지식 및 아미타불의 뜻에 따라 단지 입으로 칭념하여 왕생한 것이다. 彌陀之本願特殊,苦行難行之願行,皆爲五逆深重之人故,五劫兆載之願行,縮於失念位之白木之念佛,無窮之生死縮於一念,僧祇之苦行成於一聲也。 아미타불의 본원의 특수함과 난행고행難行苦行의 원행願行은 모두 오역죄가 극중한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오겁의 사유와 조재영겁의 원행이 실념위(失念位: 억념의 기능을 상실한 위치)의 백목염불로 압축되고, 끝없는 생사가 일념으로 압축되며, 삼아승지겁의 고행이 일성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又,《大經》所言三寶滅盡時之念佛,亦是白木之念佛也。其故者:大小乘之經律論,皆隱於龍宮,三寶悉滅,閻浮提之冥冥眾生,唯惡之外,無善之名,教導戒行之律藏先滅故,依何而有止惡修善之心乎!說明菩提心之經卷亦滅故,依何經而發菩提心乎!世上無知此理之人,亦無習知之道。故唯有定散色彩皆失之白木之念佛、六字之名號住於世上也。善導大師言:“爾時聞一念,皆當得生彼。”此機之一念十念而往生者,佛法外之人,只以白木念佛之力而往生也。 또한, 『대경』에서 말하는 삼보가 멸진할 때의 염불 역시 백목의 염불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소승의 경율론은 모두 용궁에 감춰지고 삼보는 다 멸하게 되며, 염부제의 수많은 중생은 오로지 악 외에는 선이라는 이름조차 들을 수 없는데, 계행을 가르치는 율장이 먼저 사라진 까닭에 무엇을 의지하여 악을 그치고 선을 닦는 마음이 있을 수 있겠는가! 보리심을 설명하는 경전도 다 사라진 까닭에 어떤 경을 의지하여 보리심을 발할 수 있겠는가! 세상엔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도 없고 배워서 알 수 있는 이치(경전의 가르침)도 없다. 따라서 오직 정산定散의 색채를 모두 잃은 백목의 염불인 육자명호만 세상에 머물 뿐이다. 선도대사께서 말씀하시길, “그때 (명호를) 듣고 한 번만 불러도 모두 저 나라에 왕생하게 되느니라”라고 하셨다. 이런 근기가 일념십념一念十念으로 왕생한다는 것은, 불법 밖에 있는 사람이 단지 백목염불의 힘으로 왕생한다는 뜻이다. 由當時大小經論興盛故,彼時眾生,雖有上根利器之人,然而下根之我等,與三寶滅盡時之人無異;世猶佛法流布之世,而身獨三學無分之機也。雖有大小經論,無勤學之志。如斯無道心之機者,雖遇佛法,亦無其益。雖生佛法流布之世,然而既不能持戒,亦難修定慧,正顯示機之愚劣無道心也。 당시 대소승의 경론이 흥성했기 때문에 그때 중생들은 비록 상근기 사람들도 있겠으나 하근기인 우리들은 삼보가 멸진滅盡할 때의 사람과 다르지 않고, 세상은 여전히 불법이 유포되고 있는 세상이지만 이 몸은 홀로 삼학을 닦을 자격이 없는 근기이다. 비록 대소승의 경론이 있다지만 부지런히 배울 뜻은 없다. 이와 같은 도심이 없는 근기는 설사 불법을 만나더라도 이익이 없다. 비록 불법이 유포되고 있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계율을 지킬 수 없다면 선정과 지혜도 닦기 어려우니, 마침 어리석고 졸렬하며 도심이 없는 근기임을 나타내고 있다. 雖如是愚身,稱念南無阿彌陀佛者,佛之願力悉皆圓滿故,此即白木念佛之益也。就機而論,安心起行誠然甚少,前念後念皆愚也。妄想顛倒之迷,隨日而深,日夜皆被惡業煩惱所吞縛之身中所出之念佛者,雖煩惱不滅,亦毫無定散色彩之稱名;然前念之名號中,攝盡諸佛萬德故,能生不受心水泥濁所染之無上功德也。 비록 이처럼 어리석은 몸이지만 나무아미타불을 칭념하는 자는 부처님의 원력이 원만한 까닭에, 이것이 곧 백목염불의 이익이다. 근기에 대해 논한다면, 안심기행安心起行이 너무 적고 전념후념前念後念은 모두 어리석다. 전도망상의 미혹은 날로 깊어가고 주야로 항상 악업 번뇌에 삼켜지고 계박받는 몸에서 나오는 염불은, 비록 번뇌가 멸하지 않았고 또 정산의 색채가 전혀 없는 칭명일지라도 전념의 명호 가운데 제불의 만덕을 모조리 포함하는 까닭에 마음의 물과 진흙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위없는 공덕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不顧此心,信稱念必生,而常稱念南無阿彌陀佛者,即是本願之念佛也,此名“白木之念佛”。 이 마음을 돌보지 않고 칭명하면 반드시 왕생함을 믿고 늘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곧 본원의 염불이며, 이를 “백목의 염불”이라 부른다. 念佛之行,不論機之淨穢,不論罪之輕重。貴賤、智愚,但稱念者,皆得往生之行;而自力根性之人,以定散之彩色爲指南,無彩色之念佛則以爲不得往生而視爲徒然。莫作此想,應舍自力根性,而向他力門。 염불의 행은 근기의 청정함과 더러움을 논하지 않고,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는다. 부귀하든 비천하든 지혜롭든 어리석든 간에 단지 칭념만 하면 모두 왕생의 행이 된다. 그런데 자력근성을 가진 사람들은 정산의 색채를 지침으로 삼으며, 색채가 없는 염불은 왕생할 수 없기에 소용없다고 여긴다. 이런 생각 하지 말고 마땅히 자력근성을 버리고 타력문으로 향해야 한다. 若能如是,則證悟大乘之人、深入經藏之人、淨持戒律之人等,其所念佛,皆不違於本願。此之分別,應善加明辨。 만약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대승을 깨달아 증득한 사람이든, 경장經藏속으로 깊숙이 들어간(교리를 통달한) 사람이든, 계율을 청정하게 잘 지키는 사람이든, 그들의 염불은 모두 본원을 어기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를 명백히 잘 구별해야 한다. ( 《敕修禦傳》第四七卷 『칙수어전』 제47권) 역주: 증공證空상인은 14세에 법연상인의 제자가 되어 항상 상인의 곁을 따라다니며 시봉하였다. 정토법문의 교리를 통달한 상인은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늘 “백목의 염불”이라는 비유로 본원염불의 뜻을 설명하였다. 백목: 전혀 색칠하지 않은 원목을 뜻한다. 다음카페 순정시대 http://cafe.daum.net/sunsujeongto/